[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연구비 공황과 보통과학자의 위기

2019.12.12 20:13
과학자가 되려는 이들이 반드시 인식해야 하는 건,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연구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좋은 연구는 연구비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픽사베이 제공
과학자가 되려는 이들이 반드시 인식해야 하는 건,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연구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좋은 연구는 연구비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픽사베이 제공

현대 과학계에서 과학적 자유, 공정, 효율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학계에 나타난 병목현상의 원인은 내부의 시스템적 문제 때문에 나타나는 것일지 모른다. 실제로 연구를 관리하는 과학정책은 과학 연구의 자유를 제한하고, 연구자의 동기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동 중이다. 게다가 부적절한 정책은 연구분야를 제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타날 기회마저 강탈하고 있다. 적절한 과학정책은 과학자의 자유와 연구의 질, 그리고 만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적인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더 많은 과학자가 자유로운 동기를 가지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지식과 데이터와 혁신을 사회에 제공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혁신은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다.

-《과학정책에 대한 급진적 변화를 옹호하며 》중에서 

 

기초과학 연구자의 딜레마

 

이제 막 대학원에 진입한 젊은 의생명과학자에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진입장벽들이 기다린다. 중년의 교수들은 실험실에서 열심히 연구하는 것 외엔 별다르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 막 대학원생이 된 연구자가 헤쳐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과학자가 된다는 건, 더이상 멋지고 즐거운 인생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경제적 여유와 안정을 포기하는 도박에 가까운 일이 됐다. 과학이 좋아서 과학자가 되어도, 좋아하는 과학을 하려면 경제적인 안정과 저녁이 있는 삶을 포기해야 한다. 젊은 기초과학 연구자들은 대부분 이런 딜레마를 마주하게 된다.

 

요즘 세계 과학계는 연구비 공황상태(funding crisis)를 경험하고 있다. 위기의 징후는 2000년대 초반부터 감지됐지만,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과학 연구비의 대부분을 지원하는 국가가 연구비를 꾸준히 증가시켜줄 것이라고 순진하게 낙관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국민의 생활만이 아니라, 과학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금융위기로 국민의 생활을 위해 필요한 예산을 집행하려면,  연구비를 증액하는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증가하던 연구비 덕분에 안심했던 과학자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1980년대만 해도 연구비 수주율, 즉 연구비를 신청한 연구자들 중에서 몇 퍼센트의 연구자가 연구비를 성공적으로 받았는지를 나터낸 비율은 50%에 가까웠다. 연구비를 두 번 신청하면, 평균 한 번 정도는 연구비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연구비 수주율은 2000년을 기점으로 계속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고, 지금은 미국과 영국 등이 20% 안팍을 가까스로 유지하는 중이다. 이제 연구비는 못 받는 것이 기본이고, 받는 일이 드문 경우가 됐다. 연구비가 없어 연구실을 닫는 과학자의 숫자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 대부분이 젊은 연구자라는 사실이다.

 

과학계는 이런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학위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 많은 박사학위자들이 연구비 공황의 원인 중 하나이지만, 이미 학계에 안착한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국가에 더 많은 대학원생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해왔다. 그렇게 학계에 배출된 대학원생 중 겨우 8%도 안되는 이들만이 교수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수들은 대학원생들에게 교수가 될 수 있는 방법만을 가르쳐 왔다. 과학자의 꿈을 안고 대학원에 들어온 예비연구자는 학계와 정부, 그리고 사회가 함께 망쳐놓은 과학계의 현실을 곧 마주하게 된다. 그 중 가장 심각하게 과학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바로 연구비다. 현대의 과학연구는 연구비가 없으면 작동조차 하지 않는다.

 

과학연구비를 둘러싼 냉혹한 현실

의생명과학과 같은 과학연구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현대 과학계에서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의생명과학은 비싼 장비와 재료비가 필요하며, 노동집약적인 연구관행 때문에 인건비에 큰 돈이 들어간다. 연구비가 동이난 연구실은 멈추고 곧 해체된다. 따라서 과학연구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얼마나 창의적인 연구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연구비를 조달할 것이냐의 문제다.

 

이미 위에서 설명했듯이, 이제 대부분의 국가에서 연구에 대한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연구비는 항상 부족하다. 특히 국가가 연구비를 집행하는 가장 큰 조직인 현대사회에서, 연구비는 국가가 원하는 방향의 연구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분야가 바로 기초과학이다. 기초과학은 학문의 특성상 장기간에 걸친 연구가 필요하거나,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기초과학의 연구주제는 국가가 추진하는 정책과 방향이 다를 수 있다. 정부의 연구비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미래보다 현재에 더 큰 가치를 둔다. 또한 위험보다는 눈에 보이는 수익을 선호한다. 

 

연구비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정치인의 영향력 아래 있다. 정치인은 국민의 눈치를 본다. 왜냐하면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빠르고 가시적인 변화를 원한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란 단기간에 빠른 성과를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향들이 전세계적으로 과학연구에 큰 영향을 미쳐왔고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것은, 인류가 지니고 있는 본능과 정치제도의 구조적 결함 때문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과학자들은 연구비를 정부 혹은 민간재단으로부터 받는다. 연구비를 받으려면 연구제안서를 제출해야 하고, 그 연구계획서는 익명의 동료심사를 통해 평가된다.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과정과, 연구비 심사 과정은 동일하다. 모두 동료심사라는 과정에 의해 평가되기 때문이다. 연구제안서를 쓰는데에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연구제안서는 논문과 다르다. 논문은 이미 연구한 결과에 대한 보고서이지만, 연구제안서는 앞으로 해나갈 연구에 대한 일종의 투자제안과 비슷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연구비 심사에는 몇 달이 소요된다. 이렇게 제출된 제안서가 승인되면 연구비를 받고, 거절되면 연구비를 받지 못한다. 

 

이미 위에서 설명했듯이, 최근 경향은 대부분의 연구제안서가 거절되는 상황이다. 이건 중국 정도를 제외한 전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영국은 20~23% 정도의 연구비 수주율을 보여주는데, 최근엔 10% 근처에 머물고 있다. 일년에 몇 개의 연구비를 쓰는건 흔한 일이고, 대부분의 경우 두 번의 시도 중 한 번이 떨어지면 위험한 상황을 맞게 된다. 문제는 이런 피해의 대부분이 젊은 연구자에게 몰려 있다는 점이다. 젊은 과학자들은 연구비 경쟁에서 심각할 정도로 불리해졌고, 이제 학계를 떠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과학연구비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과학자에게 안정적인 연구비란 마치 한국에서 내집마련의 꿈을 꾸는 것과 같다. 게티이미미지뱅크 제공
대부분의 국가가 과학연구비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과학자에게 안정적인 연구비란 마치 한국에서 내집마련의 꿈을 꾸는 것과 같다. 게티이미미지뱅크 제공

현실 개혁의 꿈을 꾸지 않는 무능한 과학자 사회

 

더욱 놀라운 점은, 대부분의 과학자사회의 구성원이 이 냉혹한 현실을 그저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자사회엔 노조가 드물고, 혹여 과학자협회가 있더라도 정치인과 국민을 상대로 연구비를 위한 투쟁을 벌이는 일은 거의 없다. 과학자 사회는 연구비 공황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사적인 자리를 넘어 공적인 자리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걸 두려워 한다. 그건 과학계가 지난 100년간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며 학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자신이 연구비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을 결코 공론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연구비 수주 실패에 대한 공론화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조롱으로 이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연구비를 타지 못하는 과학자가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연구비 지원의 구조적 문제를 공론화하면 스스로 무능함을 인정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 세기 상아탑에 갇혀 정부가 주는 연구비에 의존하던 과학자사회는, 과학계를 둘러싼 현실인식 능력을 상실했고, 국가와 타협하고 투쟁하는 방법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은 바로 그 무능력한 100년의 결과일 뿐이다.

 

연구비 공황이 심각해질 수록, 피해를 보는건 젊은 연구자들이다. 무한경쟁 체제의 과학계에서 이미 지위를 점유한 과학자들은 마태효과에 의해 신참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그건 선배 과학자들이 더 뛰어난 과학적 업적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신참보다 먼저 과학계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누리는 효과다. 이 마태효과는 다양한 방식으로 젊은 과학자들을 힘들게 만든다. 이미 안정된 실험실을 갖춘 선배 연구자들은 연구제안서를 써주는 조수가 있을 수도 있고, 연구제안서 작성에 필수적인 미출판 데이터도 신참 연구자보다 훨씬 많다. 게다가 신참 연구자들이 도전적으로 내놓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은, 기존 연구자들에게는 친숙하지 않게 마련이고, 바로 그런 이유로 연구비 심사에서 탈락하기 쉽다. 

 

연구비 경쟁이 심각해지면서 여러가지 담합과 부정도 속출한다. 연구비 집행기관의 관료에게 뇌물을 주거나 친밀하게 지내면서 연구비를 타내는 과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과도한 경쟁은 과학계에 파벌을 만들어 내부자들만을 밀어주는 행태를 만들고 있다. 이런 불공정한 경쟁은 과학계에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공정한 평가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마치 마피아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나마 공정하게 연구비를 심사하는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은 논문 실적인데, 논문 실적 자체가 마태효과에 의해 신참들에게 불리한 구조인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체계적인 불평등으로 인해, 과학 연구의 자유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연구주제가 연구비 집행기관에 종속되다보니 과학을 진보시킬 새로운 아이디어는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과학 연구비 지원정책은 시스템의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과학연구비를 지나치게 많이 받는 재벌과학자들을 시스템의 영웅으로 추대하기도 한다. 과학계 스스로 자초한 이 불공정한 경쟁에서, 젊은 과학자들은 시스템 밖으로 쫓겨나며, 그들보다 무능하지만 단지 먼저 시스템에 들어왔을 뿐인 선배과학자들에게 도태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런 경쟁시스템이 과학계 전체를 진보시킬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사장시킨다는데 있다. 이런 결과는 사회나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과학정책 연구자들과 뜻있는 과학자들은 여러 대안을 제시해왔다. 그런 대안들이 정치인과 국민에게 닿아 정책을 바꾸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건 과학자사회가 이 구조적 불평등에 대해 깨닫는 일이다. 앞으로 이어지는 글들은 바로 그런 대안들을 소개하고, 과학을 연구비 공황으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현대 과학자의 대부분은 보통과학자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과학계는 그런 보통과학자가 살아갈 공간을 지우는 중이다. 연구비 공황 문제는, 보통과학자에겐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생존의 문제가, 과학의 진보를 좌우할 시스템의 문제가 된다. 보통과학자가 생존하는 문제는, 과학의 생존을 결정하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합리성을 지탱하는 과학을 우리가 어떻게 살려낼 것이냐의 문제로 이어진다.

 

참고자료

-Ballabeni, A., & Danovi, D. (2018). Advocating a radical change in policies and new models to secure freedom and efficiency in funding of science and 1 communication. The freedom of scientific research: Bridging the gap between science and society.

-과학계엔 여러 다른 학문이 존재하지만, 현대과학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는 의생명과학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된 딜레마를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는 분야도 의생명과학이다. 따라서 이 글은 의생명과학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중심으로 현대 과학연구비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Daniels, R.J. (2015), ‘A generation at risk: young investigators and the future of the biomedical workforc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112.2: 313–18. 

-Nicholson, J.M., and Ioannidis, J.P. (2010), ‘Research grants: conform and be funded’, Nature, 492.7427: 34–6. 

-Fang, F.C., and Casadevall, A. (2009), ‘NIH peer review reform – change we need, or lipstick on a pig?’, Infection and Immunity, 77.3: 929–32.

-Kirwan Institute (2014), State of the Science: Implicit Bias Reviewhttp://kirwaninstitute.osu.edu/wp-content/uploads/2014/03/2014-implicit-bias.pdf (last accessed 27 October 2017).

-Ballabeni, A., & Danovi, D. (2018). Advocating a radical change in policies and new models to secure freedom and efficiency in funding of science and 1 communication. The freedom of scientific research: Bridging the gap between science and society.

-미국 국립보건원의 연구비 추세는,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한다. 연구비 경쟁은 지속적으로 증가중이며, 연구비 성공률도 감소중이다. 이런 상태는 현재의 정책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https://www.vox.com/2016/7/14/12016710/science-challeges-research-funding-peer-review-process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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