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마, 북한 거쳐 시베리아까지 달린다…'동북아 공동화차' 첫 시연

2019.12.05 21:12
이달 5일 충북 청주 오송 철도종합시험선로에서 열린 동북아 공동화차 시연회가 열렸다. 시연회에서 공동화차는 바뀐 궤도 폭에도 멈춤 없이 달리는 ′궤간가변대차′ 기술을 선보였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이달 5일 충북 청주 오송 철도종합시험선로에서 열린 동북아 공동화차 시연회가 열렸다. 시연회에서 공동화차는 바뀐 궤도 폭에도 멈춤 없이 달리는 '궤간가변대차' 기술을 선보였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이달 5일 오후 충북 오송 철도종합시험선로에 파란색 철도 차량이 트랙터에 떠밀려 선로에 들어섰다. 철도 차량 위로 ‘동북아 공동화차’라는 플래카드가 매달렸다. 이 차량은 ‘표준 구간’ 이라 쓰인 푯말 앞을 지나 ‘변환 구간’이라고 쓰인 푯말로 향했다. 국내 철도 표준 궤도 폭(궤간)은 1435㎜로 북한의 철도 궤도 폭과 같다. 하지만 러시아 철도 궤도폭은 1520㎜로 남북한 철도 궤도보다 넓다.  광궤로 바뀌는 지점에 들어온 것이다. 변환 구간은 러시아 철도 궤도 폭과 같게 설계된 선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이달 5일 충북 청주 오송 철도종합시험선로에서 개발 중인 동북아 공동화차 기술을 공개하는 시연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과 나희승 철도연 원장,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들 약 50여 명이 참석했다.

 

철도연이 이날 공개한 동북아 공동화차는 컨테이너를 싣고 궤도 폭이 다른 한국과 러시아 선로를 모두 달릴 수 있는 화물 운송용 철도 차량이다.  열차 바퀴의 폭을 바꿀 수 있는 궤간가변대차 기술을 비롯해 가변형 연결기, 장대편성 열차 제동장치 기술이 적용됐다.  2020년까지 기술개발 및 시험에 약 168억 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문형석 철도연 대륙철도연구팀장은 차량이 변환구간을 지나가며 굉음을 내자 “한국을 지나 러시아로 들어간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차량은 조금 속도를 줄이더니 다시 ‘광궤 구간’이라 쓰인 지점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차량에 달려있는 모니터링 장치에는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 쓰인 ‘표준궤’라는 글자가 빙글 돌더니 붉은 바탕의 ‘광궤’라는 글자로 바뀌었다.
 

궤간가변대차 기술은 한국이 쓰는 표준궤에서 러시아가 쓰는 광궤로 열차 교환 없이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이다. 시연 열차에 달린 모니터링 기기는 아래 철도의 폭에 따라 철도가 표준궤인지 광궤인지를 표시힌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궤간가변대차 기술은 한국이 쓰는 표준궤에서 러시아가 쓰는 광궤로 열차 교환 없이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이다. 시연 열차에 달린 모니터링 기기는 아래 철도의 폭에 따라 철도가 표준궤인지 광궤인지를 표시힌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차량에 적용된 궤간가변기술은 열차가 바퀴의 폭을 스스로 조절해 철도 궤도의 폭인 궤간이 달라져도 중간에 서지 않고 달리게 하는 기술이다. 바퀴에 달린 스프링이 길이를 바꾸며 바퀴 사이 폭을 조절한다. 궤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에서도 궤간을 따라 폭을 바꾸며 멈추지 않고 시속 10~30㎞를 유지하며 운행할 수 있다. 나희승 철도연 원장이 주도해 2014년 개발됐다. 올해 국제기준인 반복시험 500회를 마쳤고 철도 관련 국제공인기관인 ‘TUV 라인란드’ 인증을 받았다.

 

이 기술은 나라마다 철도 선로 폭이 달라 환적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개발됐다. 한국과 북한, 중국, 유럽 철도는 궤간이 1435㎜인 표준궤를 사용한다. 반면 러시아와 몽골을 비롯한 옛소련의 영향을 받은 나라는 궤간이 1520㎜인 광궤를 쓴다. 러시아는 19세기에 서유럽의 침략을 막기 위해 광궤를 택했고, 한국은 19세기 말 열강이 철도권을 놓고 다투다 일본이 승리하며 표준궤가 깔렸다. 나라별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제각기 다른 궤도가 깔려있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 등에서 궤간가변열차를 운행중이다.

 

동북아 공동화차에는 러시아 열차와 한국 열차를 이을 가변형 연결기도 들어간다. 열차를 연결하는 연결기도 나라별로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북한, 중국, 미국은 AAR로 불리는 연결기를 쓰는 반면 러시아와 몽골은 CA-3 연결기를 쓰고 있다. 모양이 달라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서유럽과 러시아는 둘을 연결하는 가변연결기를 개발해 쓰고 있으나 동북아는 가변연결기가 없다. 지금도 북한과 중국에서 러시아로 화물열차가 이동할 때는 열차를 아예 바꾸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가변연결기는 올해 8월 개발됐다. 러시아의 추위에 대비해 영하 50도에서도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한국은 통상 화물열차 25칸을 연결해 운행하지만 러시아는 최대 140칸까지 연결해 운행하는 일이 많다. 이를 감안해 50칸을 이은 긴 열차에도 견딜 수 있도록 몰리브덴과 바나듐, 니켈 금속 비율을 조절한 재질로 개발했다. 공동화차에는 여기에 긴 열차를 뜻하는 장대편성열차를 멈추는 제동기술도 들어갔다. 열차 대수가 많을수록 무게가 늘어 열차를 멈추는 데 더 많은 힘이 소모되기 때문에 기존 열차와 다른 제동기술이 필요하다.

 

궤간가변대차 기술은 열차 바퀴 축에 달린 스프링이 궤간에 따라 늘었다 줄며 바퀴 폭과 궤간을 맞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궤간가변대차 기술은 열차 바퀴 축에 달린 스프링이 궤간에 따라 늘었다 줄며 바퀴 폭과 궤간을 맞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이날 시험은 오송 철도종합시험선로에 추가로 설치된 표준궤와 광궤, 가변궤가 섞인 시험선로 270m에서 실시됐다. 오송 철도종합시험선로는 충북 청주와 세종 전동면을 잇는 길이 13㎞의 철도시험 전용선으로 10년간 2406억 원을 들여 올해 4월 개통됐다. 차량의 가속도, 비상제동 등 시험과 레일과 교량의 성능시험 등 198개 항목 447종 시험이 가능하다. 이날 시연회에서는 이밖에도 철도종합시험선로에서 시험 중인 무가선 트램과 차세대 고속열차 ‘해무’의 시승식도 열렸다.

 

나 원장은 “지난해 북한에서도 궤간가변열차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협력을 약속한 지 1주년 만에 이런 자리를 가져 뜻깊다”고 말했다. 다만 기술은 궤도 위에 올랐으나 한국에서 출발하는 동북아 공동화차가 유럽까지 닿는 광경을 보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축사에서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했으나 대북제재와 북미관계 경색 등 북한과의 협력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철도연은 러시아와 협력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달 18일에는 러시아철도연구원과 기술협력 세미나를 열고 궤간가변대차 등 동북아 공동화차 시스템 개발을 위한 관련 부품의 러시아 인증 진행계획과 함께 해외 판로 개척을 위한 공동연구 및 기술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러시아에는 관련 기술이 특허출원됐다. 나 원장은 “러시아에서는 궤간가변대차를 들여오는 방안까지 논의하는 등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이 기술이 러시아와 중국 등과 협력을 강화하는 현 정부의 정책인 신북방정책의 초석이 되리란 기대도 밝혔다. 나 원장은 “오늘 북방경제협력위원회에서 열린 포럼에서 러시아와 중국 등 전문가들이 모여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에 관해 논의했다”며 “지역 협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인적 교류와 물적 교류인데 첫 출발은 철도라는 이야기와 함께 철도공동체의 미래에 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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