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의학계 "중국전통의학 효능 입증 안돼" 한의학도 공동 운명되나

2019.12.06 09:00
지난 달 유럽의학아카데미연맹(FEAM)과 유럽과학한림원연합회(EASAC) 등 유럽의 대표적인 의학계가 세계보건기구(WHO)에 중국전통의학을 강력하게 규제해 달라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달 유럽의학아카데미연맹(FEAM)과 유럽과학한림원연합회(EASAC) 등 유럽의 대표적인 의학계가 세계보건기구(WHO)에 중국전통의학을 강력하게 규제해 달라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대부분의 전통의학 처방이 현대 의학과 달리 과학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게티이미지뱅크

유럽의학아카데미연맹(FEAM)과 유럽과학한림원연합회(EASAC) 등 유럽의 대표적인 의학계가 지난 달 세계보건기구(WHO)에 중국전통의학(TCM)을 강력하게 규제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지난 7월 WHO가 국제질병분류체계(ICD-11)에 중국전통의학을 추가한 것에 대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유럽의 의학단체들은 공동성명서에서 "중국전통의학이 과학적으로 치료 효과가 검증됐거나 임상시험을 거친 것이 일부인 데에 반해 이미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며 ICD-11에 포함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주장했다. 

 

유럽 의학계가 중국전통의학 중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는 말라리아 치료제로 쓰이는 아르테미시닌이다. 개똥쑥이라는 약재에서 추출한 성분이다. 유럽 의학계는 아르테미신의 경우 의학과 약학 분야에서 오랜 연구와 임상시험을 거쳐 말라리아 치료 효과가 검증됐다고 설명했다. 개똥쑥에 든 화합물들의 특성을 정확하게 분석한 것도 이유로 들었다. 이 연구 공로로 투유유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는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유럽 의학계는 전통의학에서 쓰이는 수많은 약재들이 대부분 어떤 성분을 지녔는지, 각 성분들이 어떤 효능과 부작용을 나타내는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런 만큼 ICD-11 개정안에 포함해 현대 의학으로 인정하는 일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WHO가 인정한 일을 계기로 무분별하게 중국전통의학을 사용해 피해자가 생길 수 있음을 우려했다. 

 

스페인 침술 환자 사망사건 이후 유럽 내 반발 분위기 생긴 듯

 

유럽의학아카데미연맹(FEAM)과 유럽과학한림원연합회(EASAC) 등 유럽의 대표적인 의학계가 세계보건기구(WHO)에 중국전통의학을 강력하게 규제해 달라는 내용으로 발표한 공동성명서. 제공
유럽의학아카데미연맹(FEAM)과 유럽과학한림원연합회(EASAC) 등 유럽의 대표적인 의학계가 세계보건기구(WHO)에 중국전통의학을 강력하게 규제해 달라는 내용으로 발표한 공동성명서의 첫 장. EASAC 제공

유럽 의학계가 중국전통의학에 대해 강력히 반발한 일을 단순히 남의 나라 얘기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 동북아 국가들은 중의학과 한의학, 일본의학을 다르게 구별하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세 가지를 모두 '중국전통의학(TCM)'으로 묶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문석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2013년 세계 각국 전통의학자 대표들이 남아공에서 열린 국제표준화기구(ISO) 위원회의에 모여 이전까지 TC249로 불리던 동북아 전통의학을 어떻게 정식으로 지칭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며 "이때 투표를 통해 중국전통의학으로 통칭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전통의학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국전통의학을 바탕으로 자격을 얻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전통의학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한국보다 발빠르게 나섰다. 한의학계는 중국의학이 성급하게 세계화하려다가 오히려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을 다수 배출했다고 짚는다.  최 부회장은 "국내만 해도 한의대를 졸업한 한의사만이 한약을 처방할 수 있지만, 중국에서는 중의사나 침술사에 대한 자격을 남발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미국을 비롯해 다른 국가 의학계에서는 WHO가 중국전통의학을 ICD-11에 포함한 것에 대해 이렇다 할 반발이 없다. 이전까지 전통의학에 대해 별다른 반발이 없던 유럽 의학계가 전통의학을 강력하게 규제하자고 주장하게 된 배경에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스페인에서 한 백혈병 환자가 현대 의학적 치료를 중단하고 봉독(벌침) 치료를 받다가 결국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그 해 11월, 스페인 정부는 침술이나 동종요법 등 대체의학 시술을 전면 금지시키고, 대학 내 관련 교육과정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최 부회장은 "이 사건 역시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환자를 치료하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아쉬워 했다. 

 

현대 의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적인 검증은 필요 

 

유럽 의학계를 비롯해 전 세계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중국전통의학자 투유유. 위키미디어 제공
유럽 의학계를 비롯해 전 세계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중국전통의학자 투유유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오른쪽) 투유유 교수는 개똥쑥이라는 약재에서 추출한 성분인 아르테미시닌으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한 공로로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유럽 의학계는 아르테미신의 경우 의학과 약학 분야에서 오랜 연구와 임상시험을 거쳐 말라리아 치료 효과가 검증됐다고 설명했다. 개똥쑥에 든 화합물들의 특성을 정확하게 분석한 것도 이유로 들었다. . 위키미디어 제공

중국전통의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치료효과를 검증하려는 노력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중국전통의학에서 쓰이는 약초 등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하다"고 말했다. 

 

미국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5명 중 1명이 중국전통의학 기반 약초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NIH 산하 대체통합의학센터(NCCIH)는 중국전통의학을 포함한 대체보완 의학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NCCIH는 홈페이지(https://nccih.nih.gov/health/herbsataglance.htm)를 통해 중국전통의학이 대표적으로 섬유근육통이나 관절통 등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내 여러 연구자들이 밝혀낸 연구결과와, 현재 지원하고 있는 연구도 안내하고 있다.

 

미국 연구자들이 주로 연구한 것은 뇌졸중이나 심장질환, 정신질환, 기관지염과 감기 등 호흡기질환 등에서 효과가 있는 약초들이다. 아직까지는 현대 의약품에 비교해 연구결과가 많지 않은 편이다. NCCIH는 의약업계에서 인증된 식물성약재료의 리스트와, 각 재료의 치료 효능과 부작용 등도 공개했다. 은행이나 콩, 마늘, 계피, 라벤다, 티트리오일, 인삼, 강황 등이 여기 포함된다. 

 

다만 공개된 재료 외에는 치료 효과나 부작용에 대해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거나 관련 연구결과가 없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일부 중국 약초제품에는 독성화합물이나 중금속, 살충제가 포함됐거나 미생물에 오염됐을 위험이 있으며, 비슷하게 생긴 약초를 오인할 위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특히 임산부와 수유부, 어린이는 반드시 전통의학 전문의와 상의해 처방받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또한 중국 약초제품과 관련해 수많은 연구와 규제 법률, 인증제도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말은 한의학을 비롯해 중국전통의학으로 불리는 동북아 전통의학이 세계시장에서 인정 받으려면 현대 의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검증받아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의학계에서는 한약에 들어가는 성분이 다양하고 복합적인 효능으로 치료하는 만큼 과학적인 검증이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현대 의학은 이미 효능이 밝혀진 천연물 또는 화합물을 이용해 약제를 만들지만, 한의학은 대대로 전해오는 경험을 토대로 치료효과가 알려진 약물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학과 전통의학 간에 끊임없이 의견 다툼이 일어나는 만큼 최근에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현대 의학 관점에서 전통의학을 검증하기 위해 여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경희대와 동국대 등 한의대와 의대가 공존하는 일부 대학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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