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하는 가짜 의학정보] "글루텐이 뇌 염증, ADHD 유발한다?"

2019.11.29 13:41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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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텐이 혈류에서 독소인 조눌린으로 바뀐다. 혈류를 타고 뼈로 가면 관절이 손상되고 가슴으로 가면 혹이 생기고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등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한다.", "글루텐은 혈류를 타고 뇌에서 염증을 일으켜 주의력 결핍, 파킨슨병, 자폐증, 발달장애를 유발한다."

 

글루텐은 밀이나 귀리, 호밀, 보리 등 곡류에 들어 있는 불용성단백질(물에 녹지 않는 단백질)이다. 글루텐의 함량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식감이 달라지는데, 밀가루 반죽 시 글루텐이 많을수록 쫄깃쫄깃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빵이나 국수를 만들 때에는 무엇보다 반죽을 열심히 치대 글루텐을 잘 형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글루텐이 소화불량을 일으킨다는 얘기가 떠돌더니, 소화를 돕고 다이어트에 좋다는 '글루텐 프리' 밀가루가 나왔다. 최근에는 글루텐이 소화기능 뿐 아니라 각종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등장했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글루텐, 건강 또는 위험을 검색해보면 글루텐이 각종 장 질환과 자가면역질환, 뇌질환을 일으킨다는 정보가 수없이 올라와 있다. 

 

지금까지 보고된 한국인 셀리악병 환자는 한 명

 

가장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이야기는 글루텐이 '셀리악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한 유튜버는 영상에서 "글루텐을 이루고 있는 주성분인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은 둘 다 독성물질"이라며 "이런 물질이 소장 점막에 난 미세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셀리악병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셀리악병은 소장에서 일어나는 알레르기 질환이다. 대개 생후 1년 이하의 유아가 글루텐을 먹었을 때, 글루텐이 소장 내 돋아 있는 융모에 염증을 일으켜 손상시킨다. 그 결과 음식물로부터 영양분이 잘 흡수되지 않아 소화불량과 궤양, 복통, 설사, 체중 변화 등이 발생한다. 증상이 심각한 환자는 스테로이드 등 약물 치료를 받는다. 셀리악병을 치료,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루텐을 끊는 것'이다. 

 

하지만 셀리악병은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는 병이 아니다. 국내에서 지금까지 보고된 셀리악병 환자는 2013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연구팀이 최초로 보고한 36세 여성환자 1명이다. 밀가루를 주식으로 하는 서양에서도 전체 인구의 약 1%만이 셀리악병을 겪고 있을 정도로 흔치 않다. 

 

셀리악병 환자가 아니라도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글루텐 프리 밀가루를 먹으면 소화가 잘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글루텐뿐만 아니라 탄수화물도 소화장애나 장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글루텐 때문에 이런 질환들이 발생한다고만 보는 것은 어렵다.

 

일부 전문가는 글루텐 민감성이 신경질환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리오스 핫지바실루 영국 로열할람셔병원 신경과 교수는 "셀리악병 환자를 제외하고, 글루텐 민감성을 겪는 사람 중에는 소화기능과 관련 없이 신경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를 2010년 3월 국제학술지 '랜싯 신경학'에 발표했다. 
 

뇌 질환, 정신질환을 발생시키는지에 대한 뚜렷한 근거 없어

 

유튜브 캡처
유튜브 캡처

한 유튜버는 "장이 안좋은 사람은 장 누수 현상이 일어나, 장 밖으로 나간 글루텐이 뇌에서 염증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장 누수 현상이란 장벽 기능이 떨어져 영양분이나 병원균이 장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이다. 또 다른 유튜버는 "글루텐에 의해 만들어지는 조눌린 단백질이 뇌 혈관 장벽을 뚫고 들어가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나 틱 장애, 발달 장애, 자폐증 등 뇌 기능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조눌린은 장벽을 헐겁게 만드는 물질이다. 하지만 글루텐이 조눌린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2006년 미국 메릴랜드대 의대 소아위장질환영양학센터 연구팀은 글루텐의 성분 중 글리아딘이 조눌린을 활성화시켜 염증을 유발하고 평소 장벽을 통과하기 어려운 큰 입자들이 장 밖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스칸디나비아 위장질환학지'에 실었다. 연구팀은 2013년에는 이런 현상 때문에 제1형 당뇨병이나 알레르기, 자가면역질환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뉴욕학술원 연보학회지'에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뇌 질환이나 정신질환까지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연구결과가 없다. 김영보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 혈관 장벽은 세포와 세포간 통로(갭 결합)가 매우 조밀해 큰 분자는 막고 작은 분자만 통과시켜 뇌를 보호한다"며 "글루텐이 얼마나 염증을 일으키고 이로 인한 누수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알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 학계에서는 뇌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글루텐을 강조하지는 않고 있다"며 "특수한 연구 그룹에서는 관심분야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글루텐과 뇌 질환에 대한 논문을 찾아보면 일부 대체의학 분야에서는 연구결과가 소수 나와 있다. 하지만 소화기내과 등 의학 분야에서는 '비정상적인 조눌린 활성화가 장벽을 약하게 할 수 있다'거나 '조눌린 과다 활성화가 소화를 방해할 수 있다', '장내미생물 군에 영향을 미쳐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정도다. 조눌린 과다 활성이 만성 염증을 일으켜 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한 유튜버는 빵이나 국수를 끊기 힘든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글루텐이 아편과 비슷한 중독효과를 내는 엑소르핀을 만들어내 뇌를 마비시키고 중독시킨다"며 "이 때문에 밀가루 음식에 중독되고, 밀가루 음식을 끊어도 금단현상이 일어난다"는 주장이다.  

 

글루텐을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실제로 엑소루핀이라는 중독성 물질이 생성된다. 하지만 이 물질은 글루텐뿐만 아니라 콩이나 시금치, 유제품을 소화할 때도 생성된다. 엑소루빈 때문에 밀가루 음식이나 콩, 시금치, 유제품 등이 중독현상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는 나온 바가 없다.

 

글루텐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방해해 우울증을 일으킨다거나, 우유와 밀가루 음식을 함께 먹으면 우유 속 카제인 단백질과 글루텐이 함께 뇌에 들어가 신경계를 파괴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유튜브에서만 나오는 얘기이거나 소수 연구자의 주장일뿐 학계에서 인정받을 만큼 확실한 과학적인 근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박청 한양대병원 영양팀 영양사는 "셀리악병 환자를 제외한 일반 사람들도 건강상 글루텐을 피해야 한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며 "글루텐 프리 식품만 고수하다 보면 오히려 섬유소와 비타민D, 비타민B12, 엽산, 철분, 아연, 마그네슘, 칼슘 등 영양소가 결핍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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