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학계 vs 통신업계 5G 주파수 전쟁

2019.11.24 17:48
5G 신호가 위성이 대기 중 습도를 관측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같은 간섭을 제한하는 국제 기준이 마련됐다. 게티이미지뱅크
5G 신호가 위성이 대기 중 습도를 관측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같은 간섭을 제한하는 국제 기준이 마련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 기상학계가 5세대 이동통신(5G)이 기상예보를 위한 관측 활동을 방해하고 예보의 정확성을 크게 떨어트릴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국제 기준이 마련됐다. 하지만 이번에 결정한 기준이 기상학계가 요구하는 기준보다 느슨해 기상학계와 통신업계간의 힘겨루기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기술매체 더버지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2일까지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세계전파통신회의(WRC)에서 각국은 5G 대역인 24기가헤르츠(㎓, 10억 Hz)의 잡음 제한을 –33데시벨와트(㏈W)로 정했다고 전했다. WRC는 세계 190여 개국 정부와 민간 관계자들이 모여 전파통신 분야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자리로 3~4년마다 열린다.  잡음 제한은 전파 신호가 주파수 대역 밖 범위에 미치는 영향값으로 낮을수록 영향을 덜 미친다. WRC 회원국들은 8년 후인 2027년엔 –39㏈W로 강화하기로 했다. 

 

기상학계와 통신업계 힘겨루기는 5G 상용화가 본격화된 올해 시작됐다. 5G가 이용하는 주파수 대역 중 하나인 24㎓ 대역이 위성이 지구 대기의 습도를 측정하는 데 간섭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수증기 분자는 약 23.8㎓ 대역에서 약한 전자기파를 낸다. 위성이 이를 측정한 데이터를 토대로 많은 나라가 비나 태풍을 예보하고 기상 모델을 만든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극궤도위성 ‘JPSS’와 유럽우주국(ESA)의 기상위성 ‘메탑(MetOp)’ 등이 이를 이용해 지구 대기권의 습도를 24시간 내내 측정하고 있다.

 

5G 신호에서 주파수 범위를 벗어나며 생기는 잡음이 23.8㎓ 대역에 영향을 미치면 기상위성 센서는 5G 신호가 마치 대기 중 습기처럼 보이게 된다. 이런 이유로 5G 신호의 잡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 제기돼 왔다. 하지만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올해 12월 24.25~25.25㎓ 대역을 5G 통신 주파수로 내놓는 경매 계획을 발표하면서 잡음은 –20㏈W로 느슨하게 제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됐다.

 

기상학계는 습도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허리케인이나 태풍 같은 재난을 예측하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보고 있다. 닐 제이컵스 NOAA 청장 대행은 올해 5월  “5G 기상자료 간섭이 예보 정확성을 30% 떨어트려 예보 수준을 1980년대로 되돌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통신업계는 5G가 미치는 영향이 과장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지트 파이 FCC 위원장은 이달 6월 미국 의회에서 “5G는 ‘빔포밍’ 기술 등으로 퍼져나가는 신호를 최소화하고 24㎓ 대역은 휴대전화 이용자가 많은 도시 지역에 국한될 것”이라며 5G가 기상 관측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증언했다. 빔포밍은 전파의 빔이 한 단말기에만 집중되도록 해 간섭을 줄이는 기술이다. 하지만 기상학계는 기상위성이 넓은 면적을 한 번에 측정하기 때문에 일부 지역의 잡음이 전체 지역 정보를 왜곡하고 해안가 도시의 정보도 기상 예측에 중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해 왔다.

 

기상학계와 5G 업계는 이번 WRC에서 내려지는 결정에 대해 어느 때보다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통신기술이 발달하며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는 주파수의 질서와 관련한 결정을 WRC에서 협의를 통해 정한다. 잡음 제한이 작을수록 위성 데이터엔 영향이 적으나 5G 업계에게는 강력한 규제가 된다.

 

통신업계는 새 기준이 기상위성을 고려한 조치라며 반대로 5G에 미치는 영향을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보타 ITU 연구그롭 고문은 2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값은 기상위성 시스템에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되나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며 “5G 시스템이 구축될 때 영향을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학계는 이번 제한은 FCC의 규제보단 강한 조치지만 여전히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번 제한값도 간섭을 막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55㏈W를 권장해 왔고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NOAA는 24㎓ 대역 잡음 제한을 –52.4㏈W로 맞춰야 위성이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데시벨(㏈)은 지수 단위라 FCC의 –20dB과 세계기상기구의 –55dB는 300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에릭 알라익스 WMO 무선주파수조정그룹장은 더버지에 “이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며 “5G 신호와 대기 중 수분을 구분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5G 전파의 위성 간섭 문제는 한국에서도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3.5㎓와 28㎓ 대역의 5G 주파수를 쓴다. 하지만 추가 주파수 확보를 위해 24㎓ 대역에서도 추가 주파수 확보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24㎓ 5G 신호가 발생한다면 위성의 눈에 한국이 더 습한 지역으로 보일 우려가 발생하는 것이다.

 

통신기술이 발달과 함께 고주파를 기존에 써왔던 기상학계와 새 주파수를 차지하려는 통신업계의 전쟁은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FCC는 12월 비나 눈을 관측하는 주파수 대역인 36~37㎓와 가까운 37.6-38.6㎓ 대역의 주파수도 경매할 예정이다. 대기 온도를 측정하는 50.2~50.4㎓ 대역도 이같은 전쟁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