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적 토벌 최고의 계책"조선의 지연식 박격포탄 '진천뢰'구조 첫 규명

2019.11.19 13:14
세종 때 개발된 총통완구를 복원한 모습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세종 때 개발된 총통완구를 복원한 모습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왜적을 토벌하는 계책으로 진천뢰(震天雷)보다 더 나은 것이 없었다.”(향병일기, 계사년(1593년) 2월 9일)

 

“진천뢰는 효과가 있어 왜적의 간담을 벌써 서늘케 하니 지극히 기쁘지만, 안동의 진영에는 3개뿐인 데다 화약이 바닥나 수송할 수가 없다”(향병일기, 계사년(1593년) 1월 16일)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육지에서 왜군의 조총에 밀려 패전을 거듭했지만 화포에서는 첨단 과학기술로 적을 압도했다.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초빙교수(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는 임진왜란 때 왜적을 토벌하는 데 쓰인 지름 33㎝, 무게 72㎏의 대형 시한폭탄 ‘진천뢰’의 구조를 밝혀냈다고 19일 밝혔다. 

 

진천뢰는 폭탄의 점화장치인 주격철을 포탄에 넣어 목표 지점에서 터지도록 설계된 시한폭탄이다. 1635년 편찬된 화포 무기 설명서인 ‘화포식언해’에 따르면 진천뢰는 철로 주조해 무게가 113근(67.8㎏)인 둥근 몸통을 만든다. 속에는 화약 5근(3㎏)과 인마살상용 능철(마름쇠) 30개가 들어간다. 진천뢰가 적진에서 터지면 화약의 폭발과 함께 수류탄이 터지듯 마름쇠가 튀어나가며 적을 공격한다.

 

진천뢰에는 폭발을 지연시키는 주격철통이 들어간다. 주격철통은 폭탄의 약선(도화선)으로 밖에서 불을 붙인 후 도화선이 화약에 도달할 때까지 타는 시간을 벌어줘 포탄이 바로 터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해 준다. 무게가 1근 8냥(0.9㎏)으로 중간에 화약으로 도화선이 나가는 4개 구멍이 있다. 주격철통을 10냥(375g)의 뚜껑으로 덮으면 완전히 동그란 모양의 포탄이 된다.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초빙교수(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가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회관에서 임진왜란 때 쓰인 대형 시한폭탄 ′진천뢰′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초빙교수(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가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회관에서 임진왜란 때 쓰인 대형 시한폭탄 '진천뢰'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진천뢰의 정확한 크기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진천뢰가 ‘대완구’에서 발사됐다는 화포식언해 속 기록은 남아 있다. 채 교수는 이를 토대로 진천뢰의 크기를 추정했다. 대완구는 대형 포탄을 발사할 때 쓴 조선 시대 대포 중 하나다. 실물은 남아있지 않으나 세종 때 개발된 총통완구와 제원이 같다. 총통완구에는 33㎝의 포탄이 쓰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이를 토대로 진천뢰의 크기를 33㎝로 특정했다.

 

진천뢰는 조선 선조 때 화포장 이장손이 만든 ‘비격진천뢰’의 대형판이다. 무게는 5.7배 무겁고, 화약은 5배 더 많이 넣었다. 채 교수는 “마름쇠 30개를 넣어 폭발력과 살상력은 (비격진천뢰)보다 5배 이상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진천뢰는 대완구에 30냥(1.125㎏)의 화약을 넣어 발사하는데 사거리는 234보(1보=1.2m, 약 280m)로 짧은 편이다. 비격진천뢰는 중완구로 발사하는데 사거리는 770보(924m)로 3배 남짓 길다.

 

진천뢰는 보물 860호이기도 한 비격진천뢰와 달리 지금까지 출토된 바가 없다. 비격진천뢰가 지난해 11월 전북 고창에서 상태가 좋은 11점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과 대조적이다. 다만 1694년 편찬된 강화도 지리지 ‘강도지’에 비(격)진천뢰 62좌, 원(元)진천뢰 91좌 등 2종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영조부터 왕의 동정을 기록한 ‘일성록’의 정조 21년(1797년) 8월 18일 기록에도 수원에서 수철진천뢰 5좌, 비진천뢰 100좌를 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비격진천뢰와 다른 포탄인 진천뢰가 있었다는 증거인 셈이다.

 

지난해 11월 전북 고창에서 출토된 비격진천뢰. 비격진천뢰와 달리 진천뢰는 출토된 적이 없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해 11월 전북 고창에서 출토된 비격진천뢰. 비격진천뢰와 달리 진천뢰는 출토된 적이 없다. 문화재청 제공

채 교수는 고문서에만 의존해 진천뢰의 구조를 파악했으나 고문서도 흔치 않다. 화약과 무기에 관한 자료는 전쟁 중에 적에게 뺏기면 정보를 줄 수 있어 최우선 소각 대상이 된다. 채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도 화약 무기에 관한 책은 거의 남아있는게 없다”며 “한국은 화포식언해와 같은 중요한 책이 몇 가지 남아있는데 화포식언해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약 40년 뒤 만든 책이라 당시 무기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는 거북선과 판옥선의 대형함포를 이용해 왜선을 격침해 승리했고 육전에서는 진천뢰와 비격진천뢰의 엄청난 폭발력과 살상력을 이용해 왜적을 토벌해 승리할 수 있었음을 알게 됐다”며 “특히 진천뢰는 지름 33㎝, 무게 72㎏ 대형 폭탄으로 엄청난 폭발력과 살상력을 지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화약무기”라고 말했다.

 

채 교수는 공학자 중 거의 유일한 고(古)화기 전문가로 신기전과 화포, 거북선 등을 연구한 학자다. 채 교수는 “전투가 가능한 거북선 복원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 “거북선에 대한 공학적 해석을 찾아 구조를 밝히는 연구를 내년 쯤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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