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으로 바뀌는 미래 정말 행복할까

2013.12.15 18:00

 

UPI코리아,CJ엔터테인먼트 제공
UPI코리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H.G 웰즈가 1888년에 선보인 SF소설 ‘타임머신’이후 시간여행을 소재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선을 보였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대박’은 아니더라도 ‘쪽박’을 차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가 한 평생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장담할 수 없어, 그 실수를 만회하면 내 삶이 더 좋게 바뀌지 않았을까라는 낙관론적 삶의 방식이 사람들의 머릿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을 앞두고 최근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 두 편이 개봉해 주목 받고 있다.

 

  아버지쪽으로부터 유전적으로 시간여행 능력을 물려받은 주인공의 로맨틱한 이야기인 ‘어바웃 타임’과 미래를 알게 된 인간들의 공포 때문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우리나라 영화 ‘열한시’다.


  극중 인물들이 시간여행을 하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느 인간들과 다르지 않다. 바로 후회스러운 선택과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그런데 두 영화는 로맨티코미디와 스릴러란 장르의 차이 외에 다른 점이 있다.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 팀은 사소한 실수라 해도 과거를 고치며 미래를 바꾸지만, ‘열한시’ 속 등장인물들에게 있어서 미래는 단단한 무언가로 고정된 것처럼 어떤 노력으로도 미래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 행복을 위한 열린 미래 VS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간여행을 통해 이상적인 삶을 살고, 가족의 인생까지 책임지게 된다는 ‘어바웃 타임’이 해피엔딩을 바라는 사람들의 대리만족을 충족시켜주는 한 편의 '현대판' 동화라고 한다면, ‘열한시’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몸부림쳐봐야 소용없다는 어찌보면 종말론적인 비극이다.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우스 이야기나, 북유럽 신화 속 여신 프리그의 아들 발드르가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어떤 노력으로도 미래를 바꾸지 못하고 신탁을 막지 못한다. 열한시에서도 미래를 보고 온 우석(정재영 분)이 미래를 바꾸기 위해 하는 모든 노력이 예정된 미래와 연관된다는 줄거리는 '고전'부터 내려오는 비극과 다름 아니다.

 

  ‘백투더퓨처’나 ‘나비효과’ 등으로 이미 익숙해진 시간여행이란 소재를 고전의 비극과 연결해 풀어내는 ‘열한시’를 보다보면 SF판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이란 느낌까지 받게 된다. 극중 인물이 아무리 용을 써도 종국에는 우석이 미래에서 가져온 CCTV 영상처럼 죽기 때문에 지켜보는 관객은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충분히 탄탄하고 정교한 시나리오가 이런 방향성 때문에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듯해 아쉽다.

 

  그럼에도 ‘열한시’는 과학적으로 충분히 흥미롭다. 영화 속 비극은 모두 미래를 보았기에 시작됐다는 것인데, 현재의 인물들이 미래를 보았기 때문에 미래가 결정된다는 설정은 감독이 의도했든 아니든, 양자역학에서 ‘측정과정’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 ‘측정’이 죽음을 확정한다

  우석과 영은(김옥빈 분)이 인류 최초의 타임머신 ‘트로츠키’를 타고 성공적으로 출발한 시점만 해도 연구소는 축제 분위기다. 비극은 우석이 폭발한 연구소를 목격하고, 사고순간이 담긴 CCTV영상을 들고 현재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불안감과 패닉에 휩싸인 인물들이 연구소를 점검하면서 도리어 폭발사고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불확실하던 미래가 미래를 봄으로써 확정되는 과정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CCTV 영상파일을 복구해 확인하는 장면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우석이 가져온 영상파일은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었기 때문에 당장 알 수 있던 사실은 연구소에 화재가 발생한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치료하고 CCTV 파일을 열어 연구원들이 죽는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그 광경은 예고된 미래가 아닌 실제가 됐다.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필두로 한 코펜하겐 학파는 여러 가능성이 중첩된 상태의 파동함수가 측정을 통해 하나의 상태로 붕괴한다고 설명했다.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은 상태인 상자 속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뚜껑을 열어 상태를 확인할 때 비로소 산 상태 혹은 죽은 상태 둘 중 하나로 결정된다는 말이다.

 

   즉, 바이러스 때문에 영상파일을 열람 할 수 없어 불확실했던 미래가 바이러스를 치료하고 CCTV 화면을 직접 볼 때마다(측정) 하나의 미래(상태)로 확정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파동함수가 붕괴했다).

 

 ● 반복되는 평행세계에 나비효과는 없다

   ‘어바웃 타임’과 ‘열한시’에서 또 하나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나비효과’. 흔히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개짓이 미국 뉴욕에서 허리케인을 불러일으킨다는 예로 대표되는 나비효과는 아주 근소한 차이의 초기상태 변화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어바웃 타임'에서 팀은 여동생을 위해 수 년 전의 과거를 바꾼 후 현재로 돌아왔는데, 어린 자식의 성별이 바뀐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팀의 아버지(빌 나이 분)는 그 까닭을 나비효과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조건을 비슷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수 억 마리의 정자 중 똑같은 정자가 수정돼 똑같은 아이를 얻게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열한시’에서는 나비효과는 찾아볼 수 없다. 우석이 트로츠키를 타고 오고간 세계는 평행세계로 해석할 수 있다. 두 개, 혹은 무한개의 평행세계에서 인물들은 똑같은 동선을 따라 움직이고, 매번 똑같은 일을 벌이며,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죽는다. 인과관계에 얽혀있을 수는 있지만 매번 똑같은 일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나비효과가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어바웃 타임’을 보면서 떠오른 영화는 ‘사랑의 블랙홀’과 ‘나비효과’였다. 사랑의 블랙홀에 가족의 소중함을 더하고, ‘나비효과’의 비극을 해피엔딩으로 바꾸면 ‘어바웃 타임’이 태어난다. 이 때문에 어바웃 타임은 연인과 가족, 특히 부자(父子)가 함께 보기 좋은 영화다.
 

  ‘열한시’는 결정된 미래 때문에 관객이 느끼는 무기력감을 조금만 더 줄였다면 빼어난 수작이 됐을 뻔한 아쉬운 영화다. 5년여에 걸쳐 다듬어진 시나리오인 만큼 예고된 미래가 퍼즐조각처럼 맞아 들어가는 트릭은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

 

 영화를 보다 ‘매트릭스’의 오라클이 한 말이 떠올랐다. 꽃병을 깨트리고 어쩔 줄 몰라하는 네오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꽃병을 조심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꽃병을 깨트리는 일도 없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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