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는 과연 한국 기초과학 발전의 훼방꾼인가

2019.11.24 17:04

[김두철 전 IBS원장 특별기고]

상징과 실제를 혼동하는 오류를 보며 

 

김두철 IBS 원장

김두철 IBS 원장

《김우재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는 최근 동아사이언스 연재 칼럼 '김우재의 보통과학자'에서 세 차례에 걸쳐 기초과학연구원(IBS) 탄생과 운영 과정에서 문제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김 교수는 IBS가 집단연구 만능주의와 엘리트 주의를 바탕으로 탄생했고 지금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며 날선 비판을 했습니다. 최근 IBS를 둘러싼 감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넣었습니다. 하지만 과학계 한편에서는 IBS에 대한 감사 진행 과정과 이후 결과 처리 방식을 지켜보며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정치권에서 정략적인 판단으로 IBS를 축소하려는 움직임까지 감지되면서 연구자들의 불안감과 걱정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달 25일 늦은 퇴임식을 앞둔 김두철 전 IBS 원장이 최근 IBS를 둘러싼 여러가지 오해와 논란에 대해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기고문 형태로 밝혔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과학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으려는 취지에서 김우재 교수의 글을 소개했듯 이번에는 김 전 원장의 기고문을 싣습니다. 두 분의 글이 과학계가 개인기초와 집단기초 연구가 상생할 방안을 찾는 데 필요한 열린 이정표가 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노벨상’과 ‘100억원’은 기초과학연구원(IBS)에 대해 비판하거나 비난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키워드입니다. IBS가 노벨상을 목표로 만들어진 기관이며, 스타 과학자 연구단장에게 1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연구비를 지원하여 연구생태계를 교란한다는 것이 주요논리입니다.  


최근 동아사이언스에 실린 ‘김우재의 보통과학자’칼럼도 이런 논리에 근거하여 긴 내용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김우재 박사는 최근 ‘한국 기초과학 발전의 기구한 역사’라는 글에서 기초과학연구원 탄생 배경을 담은 ‘사회 속의 기초과학’에 대해 논하면서 “노벨상을 거론하는 기초과학정책은 모두 폐기해야 한다. 바로 그 노벨상 때문에, IBS라는 연구소의 첫 단추가 왜곡되었고,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노벨상이라는 ‘상징’   

 

저는 IBS의 미션이 노벨상을 타기 위한 것이라는 대단히 비상식적인 오해는 없어졌으면 합니다. IBS는 ‘노벨상’을 미션으로 내세운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저도 IBS가 노벨상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고 그래서 연구단장들이 곧 노벨상을 탈 업적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습니다. IBS를 설립할 때, 과학자들이 정부와 정치권에 호소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해야 노벨상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야기를 비공식적으로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의 기초과학 저변이 확대되고 수준이 높아지면 저절로 큰 업적이 나오게 된다는 뜻이지 상을 목표로 기초과학 연구를 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노벨상은 새로운 지식을 개척하고 인류 삶을 진보시킨 과학자에 대한 경의의 표시입니다. 그러한 연구를 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한 일이며, 또 그 정도 수준의 연구를 하겠다는(수상이 목표가 아닙니다) 과학자들의 꿈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사실 노벨상 담론은 우리나라든 선진국이든 기초과학을 하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다양한 형태로 관찰됩니다. 세계적 연구소나 대학들은 소속 연구자나 동문의 노벨상 수상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널리 홍보합니다. 또한 노벨상을 받을만한 연구를 하겠다거나, 노벨상을 받은 연구업적을 명예롭게 여기는 연구소와 연구자들이 조롱받지는 않습니다.   

 

노벨상이 기초과학계에서 차지하는 ‘상징’은 큽니다. 하지만 상징적 비전과 실제적 목표는 당연히 구분합니다. 김 박사의 말대로 기초과학 연구의 목적이 노벨상일 수는 없습니다. IBS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징과 실제를 혼동하여 비판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회 속의 기초과학’은 IBS라는 기관역사 수준을 넘어 한국에서 기초과학이 어떻게 논의되고 제도화되었는지 살펴본 의미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과 본인의 주장을 섞어 무엇이 사실인지, 인용인지, 주장인지 불분명하게 한 것도 아쉽습니다. 
 
기초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가 큰 영향을 끼치고 그것이 널리 전승되어 인류 지식의 거대한 바다에 조금씩 기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를 합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거나, 시장에서 팔리지 않아도, 작가가 소설을 쓰고 화가가 작품을 그리는 마음과 같습니다. 

 

지금은 모든 자료가 컴퓨터 속에 들어 있어서 실감은 나지 않습니다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쓸 만한 연구논문은 유명학술지에 게재되어 제본된 후 전 세계의 도서관 서가에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 안에 나와 제자들의 논문이 포함되어 있다는 뿌듯한 자부심이 기초과학 연구자를 살아있게 하는 동인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업적이 인정되어 권위 있는 상을 타면 좋은 일이지만 상 자체가 목적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응용 가능성 있는 분야 특히 화학, 생명과학에서의 기초연구에서도 연구 결과가 특허와 기술이전으로 이어지면 좋은 일이지만, 그 자체를 목표로 연구하지는 않습니다. 


100억원 연구비의 실상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대학교수 중심의 '연구실'에서 기초과학 연구가 이루어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기초과학 연구에도 대규모 인프라가 필요하고 대형집단연구의 형태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국제적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형태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IBS가 설립되었습니다. 


IBS는 연구실이 아닌 '연구단(Center)'이 연구의 주체입니다. 애초 계획은 우리나라 국력을 고려하여 50개 연구단이 연간 100억원 규모 연구비를 집행하는 것이었지만 설립 8년이 된 현재 29개 센터가 평균 55억원(2020년도 출연금 기준, 인건비, 장비비 포함) 사용하고 있습니다. 센터 운영은 개인 연구실과 다릅니다. 연구단은 개개가 하나의 ‘연구소’입니다. 단장은 연구단이라는 조직의 운영을 총괄하고, 평균 60여명의 연구진의 생계와 미래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습니다. 연구단에는 많은 ‘보통 과학자'들이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단의 리더를 보통을 넘어서는 석학급 과학자들이 맡을 뿐이며, 이는 세계 어느 연구집단을 보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수십억원의 연구비를 ”혼자 쓴다“고 하면 단장들로서는 억울할 것입니다. 

 

IBS연구단 규모는 집단연구 형태의 유사한 해외의 연구센터들과 비교할 때 턱없이 작습니다. 그런데도 IBS는 세계적 석학연구자를 단장으로 엄선하여 연구단 구성과 연구 주제에 파격적인 자율성을 보장하며 우리나라 연구 풍토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IBS가 출범할 때, 연구비 100억원이 강조된 것은 규모 있는 기초과학 지원에 대한 정책적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책의지라는 게 초기에는 다소 의욕적이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진다는 것은 여러 경험이 말해줍니다. IBS도 마찬가지여서 평균으로 치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현실이 그런데도 스타 연구자에 대한 과도한 연구비 지원을 비판하는 수단으로 여전히 ‘100억원’이 활용되는 것도 아이러니라 할 수 있습니다. 

 

암흑물질과 중성미자를 연구하는 김영덕 지하실험연구단장과 같은 본원 단장은 물론, 인류 조상의 이동과 기후변화의 인과관계를 연구하는 악셀 팀머만 기후물리연구단장 등 외국인 단장들은 과학의 발전이라는 꿈을 펼치기 위해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IBS에 합류하였습니다. 또 교수와 단장을 겸직하는 캠퍼스 및 외부연구단 단장들도 단순하게 예전의 연구실 규모를 키운 것을 넘어서서 개인 연구실에서는 불가능한, IBS 연구단이기에 할 수 있는 연구를 개척해 나가고 있고 성과도 차츰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구단이 50억원을 쓰니 10억원을 쓰는 연구실보다 네이처 사이언스 논문이 최소한 5배가 나와야 한다는 식의 인식은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고가의 특정 장비가 필요한 분야를 생각해 봅시다. 외국에서는 대학 차원에서 장비센터에 여러 대의 해당 장비를 갖추어 놓습니다. 그 대학교수는 별로 크지 않은 연구비를 받아 이 인프라를 활용해 연구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인프라가 없습니다. IBS에서는 단장이 연구단 예산으로 그 장비를 도입하고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해가며 외국 교수와 경쟁합니다. 여기서 같은 성과가 나왔을 때 IBS 단장이 더 큰 예산을 썼다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거대 지하시설이 필요한 분야도 있습니다. 이런 지하시설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국가연구소가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과 비교하면 초라한 규모이지만 그나마 IBS 연구단의 시설로 당당히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설의 중복성이나 네이처 사이언스 논문 편수를 따지기는 어렵습니다. 


IBS 연구단에 많은 예산이 들어 가다 보니 연구비와 연구인력 블랙홀 현상이 생겨 기초과학 생태계가 교란되었으며, 이런 식의 투자는 틀렸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적 경쟁을 위하여 많은 예산이 필요한 분야도 있습니다. 정부는 기초연구사업이라는 연구사업을 계속, 그리고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므로 IBS 때문에 다른 연구비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예산이 내년에는 올해보다 3000억원 증가한 2조원을 넘어서는 것은 매우 환영할 일입니다.  

 

IBS가 태어났을 때 기초연구비가 1조원 수준이었고, 더구나 2016년까지 기초연구비 예산이 정체되면서 IBS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대로, 그 이후 기초연구사업 규모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난 반면 IBS 예산은 같은 기간 제자리 수준입니다. 기초연구사업과 IBS는 분명 한국 기초과학을 끌고 나갈 양 날개입니다. 한쪽 날개를 묶고서는 날 수 없음을 우리 과학자들이 공감하고,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연구단장을 위한 변명 

 

IBS 연구단은 기존 대학 연구실 체제로는 수행하기 어려운 연구를 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체제를 통한 시도입니다. 정부출연연구소 체제에 끼워 맞추어지지도 않습니다. IBS 연구단장은 모든 행위 하나하나에서 기댈 전례가 없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연구보다 연구단 운영에 더 시간을 빼앗기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또한 큰 예산을 다루다 보니 그에 걸맞은 엄정한 평가와 엄격한 연구윤리 준수를 요구받습니다. 간혹 연구인력 운영이나 연구비 집행의 부적정성이 표출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행정적으로 옳고 그름이 불분명한 회색지대를 제거해 나감으로써 연구단 운영이 더 투명해지고, 자정작용을 거쳐 점차 해결될 문제입니다.

 

IBS의 단장들은 과학계가 기대하는 그 막중한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많은 비판과 오해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해쳐가면서도 기초과학 발전을 위해, 그리고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묵묵히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연구단장들의 순수한 열정이 꽃 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특히 과학자 사회에서 좀 더 기다려주고 지켜보아 주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IBS는 분명 한국 기초과학 발전의 당당한 역사가 될 것입니다.  

 

김두철 전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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