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 사전 경고 많았지만 무시. 파국 키웠다"(종합)

2019.11.15 16:56
김광희 부산대 교수가 이달 15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힐튼 서울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김광희 부산대 교수가 이달 15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힐튼 서울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2017년 11월 15일 발생했던 규모 5.5의 지진(포항지진)이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피할 수 있던 지진이었다는 국내외 전문가의 지적이 나왔다. 부지 선정단계부터 건설 과정까지 10여 개에 이르는 명확한 지진의 ‘징조’가 있었지만, 지열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주체들이 지질학 조사나 분석을 등한시해 파국을 키웠다는 것이다. 이들이 건설 과정에서 문제가 된 단층면의 존재를 발견하고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 증거도 제시됐다. 현재 포항지진을 두고 진행되는 소송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달 15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서 열린 ‘2019 포항지진 2주년 국제 심포지엄’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포항 지열발전 건설 주체들은 지열공학에만 신경을 썼을 뿐, 사전 조사와 건설 과정에서 지질학이나 지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안전을 등한시해 결국 대형 지진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수많은 징조...하지만 지열공학에만 몰두한 개발팀은 지진 가능성을 조사하지 않았다


김광희 부산대 교수는 이날 오후 주제 발표에서 부지선정부터 건설 과정에 지진의 발생을 예측할 수 있던 다양한 징조가 있었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김 교수는 “부지 선정 단계에는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은 채 오직 지하 5.5km 지점의 온도가 다른 지역보다 높다는 사실만 고려했다”며 사전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사전에 땅에 균열이 있는 파쇄대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단층일 가능성을 무시하고 정밀한 단층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오히려 물 순환이 잘 이뤄질 조건으로 보고 건설을 강행했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김 교수는 포항이 큰 지진이 잘 일어나는 지질학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그는 “지진학에서 가장 먼저 공부하는 개념 중 하나에 ‘b값(밸류)’라는 게 있다”며 “이 값이 작으면 큰 지진이 많이 발생하며 전세계 평균은 약 1인데, 포항은 수리자극이 이뤄질 때 발생한 지진 기준으로는 0.73, 여진 기준으로는 0.79로 매우 작다. 이 지역이 지진 발생 횟수가 적더라도 큰 지진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포항이라는, 인구밀도가 1km2에 450명이나 되는 대도시 부근에서 지열발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런 지질학적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건설 과정에서도 단층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개발자들이 이를 무시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 교수는 “지하 3800m 지점에서 물(이수. 흙이 포함된 물)이 상당히 많이 사라지는 현상이 발견됐다”며 “땅이 푸석푸석했다는 뜻인데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물을 잃는 현상과 미소지진이 여럿 발생한다는 데 의구심을 갖고 조사를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15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서 열린 포항지진 2주년 국제 심포지엄에서 국내외 학자들이 지진 발생과 관련한 최근 성과를 발표했다. 윤신영 기자
15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서 열린 포항지진 2주년 국제 심포지엄에서 국내외 학자들이 지진 발생과 관련한 최근 성과를 발표했다. 윤신영 기자

3800m 깊이 지점에서 발견된 돌 역시 이런 의구심을 키운다. 김 교수는 “많이 갈려 있는 단층암이 많이 나왔다”며 “단층 활동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시마모토 도시히코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 역시 “100번 이상 확인했는데, 단층 지역에서 발견되는 돌은 단층암이 47% 이상이었다”며 “이는 지하를 시추하는 과정에 발생하는 암편과는 전혀 다른 형태와 입자를 가진 돌로, 단층이 이 지역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시마모토 교수는 “이 지역에서는 나무조각이나 조개껍질 같은 이물질도 나왔다”며 “이수가 유출되자 이를 막기 위해 아무 것이나 마구잡이로 넣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3800m 지점 단층면 지점, 몰랐나 알고 무시했나

 

시마모토 교수는 나아가 개발자들이 단층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개발자 측의 시추기록을 보면 3800m 지점과 4200m 지점에 단층면의 존재를 기술하고 있다. 존재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조사를 철저히 하지 않았고 위치 분석도 완전히 틀렸다”고 말했다. 시마모토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는 실제로 3800m와 4200m 지점 부근에 단층면을 의미하는 'F1', 'F2' 표시가 보인다. 그는 “지열정 PX-1 주입정이 이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기로 물을 부으면 사실상 단층면에 액체를 주입하는 셈이 돼 지진의 위험성을 크게 증대시켰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 역시 개발팀이 파쇄대의 존재는 알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단층면에 대해서는 유보적 표현을 했다. 그는 "정말 개발팀이 존재를 알았다고 믿고 싶지 않다"며 "하지만 '포항은 절대 지진이 나지 않는다'는 (근거 부족한) 믿음만 믿고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은 채 개발을 진행한 것은 맞고, 그게 모든 일의 근본 원인이었 것이라고는 본다"고 말했다.

 

특정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추가적인 지진 위험을 막기 위해 지열 개발 중단하는 안전 시스템인 ‘신호등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지적됐다. 포항이라는 대도시가 가까이에 있는데, 인구밀도가 절반에 불과한 영국보다 4~5배 큰 지진이 일어나도 개발을 중단하지 않게끔 신호등 체계가 느슨하게 만들어져 있었다는 비판이다. 영국은 규모 0.5의 지진만 나도 지열발전 등을 할 수 없다 하지만 포항은 기준이 규모 2.0이었고, 그나마 나중에 2.5로 더 느슨해졌다. 김 교수는 "심지어 이 기준에 육박하거나 넘는 미소지진이 발생했는데도 결국 개발은 중단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의구심 들 때 멈추기만 했어도 지진은 나지 않았을 것"


만약 사전에 제대로 지진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고, 조사를 통해 공사를 중단시키기만 했어도 포항지진이라는 파국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분석도 나왔다. 오전 발표를 진행한 세르게이 샤피로 독일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포항지진의 상황을 분석해보니 물 주입을 미리 멈췄다면 규모 5.5의 지진을 1% 미만 확률로 줄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텐베르크-리히터 법칙’을 소개했다. 이 법칙은 지진학 법칙 중 하나로, 지진의 규모와 횟수 사이 관계를 설명한다. 특정 규모의 지진보다 큰 지진이 일어날 확률을 보여준다. 지진지수(SI)와 b값으로 정의해 지진의 특성을 밝힌다. SI는 지역 특성을 고려한 상수로 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높으면 큰 값을 가진다. b는 큰 규모의 지진이 b의 10배수로 나타날지를 정의한다. 규모 3보다 2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10배 높다면 b는 1이다. b가 낮으면 더 큰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세르지 사피로 베를린자유대 교수가 이달 15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힐튼 서울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세르지 사피로 베를린자유대 교수가 이달 15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힐튼 서울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샤피로 교수에 따르면, 포항의 SI값은 물을 5차례 주입하는 과정에서 점차 늘어났다. 그는 “처음에 주입했을 때는 SI값이 –2였으나 3번째 물을 주입한 2017년 4월 이후 규모 3.3의 유발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1 가까이 늘어났다”며 “SI가 높아지는걸 보면 활동을 중단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 포항은 b값이 큰 만큼 지질학적으로 큰 지진이 날 확률이 높으므로 이에 대비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포항 지층에 5841㎥의 물을 주입했을 때 포항지진의 규모인 5.5 이상 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15%였다. 지진이 언제 나도 이상하지 않은 높은 확률이다. 그는 "하지만 포항지진 발생 7개월 전 규모 3.3의 유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중단했다면 이 확률은 3%, 1년 전 2.3 규모 지진이 발생했을 때 중단했다면 1% 미만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현재 관련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아 국제공동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데 큰 불만을 표했다. 시마모토 교수는 “정부 연구개발비를 받아 진행된 프로젝트인데 관련 데이터를 얻을 수 없었다”며 “포항지진 사례는 이 분야의 표본이 될 사례인 만큼 중요한 연구자료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한 고려대 교수 역시 “연구를 위해 데이터가 반드시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