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고고학산책] 2000년전 뼈로 삼국시대 얼굴 되살린다

2019.11.16 08:00
고고학자들이 유적에서 발견한 고인골을 분류하고 있다. 259구의 인골을 분류하는 데만 1년여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고고학자들이 유적에서 발견한 고인골을 분류하고 있다. 259구의 인골을 분류하는 데만 1년 여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영남대박물관 제공

1982년 1월 신문에 ‘국보급 보물을 훔친 도굴꾼들이 일본으로 가려다 붙잡혔다’는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실렸습니다. 도굴꾼들이 보물을 훔친 곳은 바로 경북 경산시 임당동의 고분들이었습니다. 급히 임당동 유적의 조사에 착수한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도굴꾼들이 놓친 엄청난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의 뼈였습니다. 

 

2000년 전의 공동묘지
 

① 임당동 유적 고분군 전경.  ② 1980년대 임당동 고분에서 유물을 수거하는 모습. 유물은 물론 발견된 고인골도 보존하여, 후대 연구에 도움을 주었다.
① 임당동 유적 고분군 전경. ② 1980년대 임당동 고분에서 유물을 수거하는 모습. 유물은 물론 발견된 고인골도 보존해, 후대 연구에 도움을 주었다. 영남대박물관 제공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가 시작되기 이전 한반도에는 다양한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약 2000년 전 지금의 경산에는 ‘압독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압독국은 2세기 무렵에 신라에 병합됐지만, 사람들은 꾸준히 이곳에 살면서 집터, 토성 등 다양한 유적을 남겼습니다. 그중 고고학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약 1000기의 무덤이 확인된 고분군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삼국시대의 공동묘지라 할 만합니다. 


1000여 개의 무덤은 규모가 큰 것과 작은 것, 부장품이 많은 것과 적은 것 등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이 무덤들을 연구하다 보면 고대 사회의 전체적인 모습을 복원할 수 있고, 무덤의 부장품들만큼이나 뼈를 통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임당동 유적에서는 259명가량의 엄청난 인골(사람의 뼈)도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남녀노소의 다양한 뼈가 섞여 있었습니다.


사실 발굴 조사가 진행되던 1980년대에는 이렇게 발견된 인골을 화장하거나 이장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고인골을 연구하는 방법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뼈에 깃든 귀신이 화를 부를지도 모르니 예의를 갖춰 다시 묻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임당동 유적 발굴을 담당한 영남대의 고고학자들은 이후에 연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골을 잘 보존했습니다. 이후 2012년 보존했던 고인골의 분류 작업과 연구를 진행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뼈의 이야기를 들어라
 

어린이과학동아DB (자료 영남대박물관)

고고학자들은 고인골을 통해 뼈의 생김새로 골격 주인의 성별과 키, 사망 당시의 나이 등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과 남성은 골반의 형태가 다른데 여성의 골반이 남성보다 넓은 편입니다. 머리뼈도 여성의 치아와 아래턱이 상대적으로 작고, 이마가 더 둥글어서 성별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키는 넓적다리뼈의 길이를 통해 계산할 수 있습니다. 


사망 당시의 나이는 여러 증거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영구치가 났는지 아닌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른은 영구치가 얼마나 닳았는지를 통해 나이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소위 ‘성장판’이라 불리는 팔, 다리뼈 끝부분의 축이 분리돼 있는지, 합쳐졌는지를 통해서도 연령대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성장판이 닫혀 있다면 성장이 끝난 성인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 뼈에 남아있는 흔적을 보면 임당동 유적의 사람들이 생전에 어떤 병을 앓거나 다쳤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턱뼈에서는 충치, 농양 등 다양한 치아 질환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리에서는 퇴행성 관절염, 허리뼈에서는 등뼈앞굽음증 등 고된 노동의 흔적도 발견됐습니다. 즉 고대 경산에서의 삶이 상당히 힘들고 순탄치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전에는 불태워지거나 다른 곳에 옮겨져 다시 묻히던 뼈들이 지금은 고대인들의 생생한 삶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 고대인의 얼굴을 어떻게 복원했을까

 

임당5B-2호 고분에서 인골이 출토될 당시의 모습. 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함께 발견되었다.
임당5B-2호 고분에서 인골이 출토될 당시의 모습. 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함께 발견됐다. 영남대박물관 제공

머리뼈를 이용해 생전 당시의 얼굴을 복원해 실종자를 찾는 기술을 ‘법의학적 얼굴 복원’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범죄 수사는 물론, 고고학 분야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지난 9월에는 고고학자, 해부학자, 법의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임당동 유적에서 발견된 머리뼈 주인의 얼굴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어떻게 얼굴을 복원할 수 있었는지, 복원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김대욱(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 “얼굴을 복원하려면 최대한 보존 상태가 좋은 머리뼈가 필요합니다. 임당동 유적에서 발견된 인골 259개체 중 상태가 좋은 머리뼈 약 10개를 선별했습니다. 그중 5B-2호 무덤에 묻혀있던 성인 여성을 먼저 복원하기로 하고, 연구실로 머리뼈를 보냈습니다.”

 

-김이석(가톨릭대 의대 해부학교실 부교수) “받은 머리뼈를 여러 번 컴퓨터단층촬영(CT)하고 얻은 2차원 촬영 영상을 쌓아 3차원 머리뼈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머리뼈 모델에 피부 두께를 나타내는 막대인 ‘페그’를 설치했습니다. 머리의 각 부위에 따라 피부 두께가 다른데, 모델에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측정한 평균 피부 두께를 적용했습니다.”

 

-이원준(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 “저는 돌아가신 분들의 신원과 사인을 밝혀내는 일을 합니다. 이따금 고고학자들을 도와 얼굴을 복원하기도 합니다. 우선 머리뼈를 분석해서 눈, 코, 입의 위치와 모양을 예측합니다. 다음으로 머리뼈에 붙은 여러 근육 중 얼굴 생김새에 큰 영향을 주는 근육을 복원한 후 아까 예측한 눈, 코, 입을 붙인 후, 두께에 따라 피부를 얹어서 얼굴을 복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윤아영 작가(의학미술가) 이미지에 머리카락을 얹고 옷을 입히는 등의 작업을 거쳐 얼굴을 최종 완성했습니다. 당시 의복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옷이나 장신구에서 대해서는 작가가 상상으로 그렸습니다. 

 

완성된 임당동 유적 여인의 복원 초상화. 이번 복원을 시작으로,, 영남대학교박물관 측은 노인과 어린이 등 다양한 고대인의 모습을 복원할 계획이다.
완성된 임당동 유적 여인의 복원 초상화. 이번 복원을 시작으로 영남대박물관 측은 노인과 어린이 등 다양한 고대인의 모습을 복원할 계획이다. 영남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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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과학동아 22호(11월 15일 발행) [Go!Go!고고학자] 뼈로 삼국시대 사람을 되살리다

 

※필자소개

고은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다. 시흥 오이도 유적, 구리 아차산 4보루 유적, 연천 무등리 유적 등 중부 지역의 고고학 유적 발굴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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