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 한국 기초과학 발전의 기구한 역사

2019.11.07 17:01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의 갈등 그리고 노벨상

 

1975년, 한국 엔지니어회관 개관기념 리셉션에서 기념케이크를 자르는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와 최형섭 과학기술처장관의 모습. 연합뉴스 제공
1975년, 한국 엔지니어회관 개관기념 리셉션에서 기념케이크를 자르는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와 최형섭 과학기술처장관의 모습. 연합뉴스 제공

“과학기술처 장관 5년째로 접어들어 나는 그만두기 전에 기초연구를 강화하는 방안, 특히 대학의 연구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마련해놓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재단의 설립은 이런 관점에서 계획된 것이었다. (미국 전문가들이 추천한 ‘과학기술재단’이라는 이름 대신) 과학재단이라는 명칭을 고집한 것도 이제 우리도 기초과학 육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하고 싶어서였다.” -최형섭 초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중에서⁠

 

“우리가 목적으로 하는 고도산업복지사회의 건설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필요한 첨단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고급연구두뇌의 양성확보와 기술혁신을 위한 새로운 지식창출의 능력확보에 달려 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의 활성화야말로 이러한 국가역량 확보를 위해 절박하게 필요한 기본적인 과제라 하겠습니다.” -최영환 과학기술처 차관, 기초과학진흥법 제정을 위한 국회 모두 발언 중에서⁠

 

“최근 미국인의 노벨의학상, 경제학상 수상소식을 듣고 매우 부러웠다. (중략)우리의 학문, 예술수준도 세계적인 수준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아지고 있는 만큼 우리도 노벨상을 수상하는 나라가 되도록 더욱더 노력해달라" -노태우 전 대통령

 

기초과학,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의 역학관계 


과학사가 김근배 전북대 교수의 말처럼, “한반도 과학역사의 출발점은 1945년 국가 주권을 되찾은 독립 이후부터다⁠.” 해방공간에서, 과학자들은 물론 많은 정치세력도 새로운 국가의 기틀은 과학 기반이어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1950년, 남한 최초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국방부 과학기술연구소가 탄생한다. 국가 주도의 과학기술정책은 바로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전후 복구에 정신이 없었던 이승만 정권 하에서 기초과학을 연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당시 남한엔 기초과학 연구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인력도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승만 정권 시기에는 과학기술인력양성을 위한 대학 설립이 과학기술정책의 주요 목표였다.

 

이승만 정권 이후 들어선 박정희 정권은 1965년 5월 18일 미국 존슨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방문했고, 이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을 시작으로 한국의 기술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을 설립하기 시작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과학을 기술발전을 위한 도구로 생각했고, 그에게 실제로 중요한 건 경제성장을 위한 공업의 발전이었다. 따라서 그는 대학에서 성장한 과학자들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해외의 인재들을 자신이 설립한 정부출연연구소로 모셔오는 방식과 그 곳에 연구중심 대학원을 설치하는 식으로 과학기술정책을 펼쳐나갔다⁠. 통계에 의하면, 1970년대까지 대학에 지원된 연구개발비는 정부출연연구소가 사용한 연구개발비의 10분의 1이 채 되지 않았다⁠.

 

1977년이 되어서야, 한국과학재단가 설립된다. 바로 이 시기에 정부가 지원하는 기초과학연구의 모습이 가시화된다. 이전까지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기초과학을 응용 및 개발 연구를 위한 기반 구축 정도로 설정하고 있었다. 한국과학재단이 설립되면서 대학이 기초과학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이 마련된다. 이승만-박정희 시대에, 대학의 기초과학은 열악한 연구환경과 부족한 연구비에 허덕이고 있었고, 대학 교수들의 불만은 컸다. 과학재단의 기틀을 만든 파이클럽의 주축 멤버 최형섭 박사는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 5년차에 이르러서야 기초과학 육성의 필요를 느끼고, 재단의 이름을 과학기술재단이 아닌 과학재단으로 정했다고 회고한다⁠.

 

한국과학재단이 대학에서의 기초 연구에 숨통을 틔워준 것은 사실이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출연 중심으로 짜놓은 한국과학기술정책의 패러다임은 매우 견고했다. 그 틀 속에서 1980년대 중반이 되면 한국과학재단의 기초연구 정책은 ‘순수기초연구’와 ‘목적기초연구’라는 틀로 갈라지게 된다. 목적기초연구란 응용이나 개발연구의 선행연구라는 의미로, 이는 박정희 시절 기초과학을 대하던 패러다임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대학 기초과학 연구자들의 불만은 결국 대학의 특성을 살린 기초과학연구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제기되었지만, 이 계획은 처음엔 무산되었다가 9년이나 지난 후 서울대를 중심으로 기초과학연구소 사업이 시작된다. 하지만 대학 부설로 운영되던 기초과학연구소는 연구비 관리나 하는 조직이라는 비판을 비롯해 여러 한계를 드러내고, 전두환 정부는 1986년 기초과학발전을 위한 대학 밖의 연구소를 설립하려는 계획을 발표한다.

 

당시 기존 중화학공업의 한계에 직면하던 전두환 정부는 기술드라이브를 통해 신산업을 발굴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고, 이런 흐름 속에서 기초과학이 대학 교수들의 지적 유희로 남아서는 안된다는 담론이 힘을 얻었다. 이 때부터 대부분의 기초연구 지원은 목적기초에 돌아가게 되고, 속도가 더딘 대학의 과학연구를 대체하는 정부출연 기초과학연구소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수리과학, 물리학, 기초화학, 분자생물학, 기초공학, 방사광가속기의 6개 설립위원회가 구성되었고,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조병하 교수의 주도로 정부출연목적기초연구기관의 설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가 시작된다⁠.


기초과학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노벨상 담론


과기처가 구상했던 정부출연 기초과학연구소의 역할은 단순했다. 즉, 대학은 순수과학 연구를 전담하고, 독립 연구소는 목적기초에 해당하는 연구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분으로 대학과 독립 연구소는 상호보완적인 연구가 가능하고 공동 협력체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게 과기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학의 기초과학자들은 이런 과기처의 계획에 크게 반발했다. 기초과학은 대학이 맡아서 하는 것인데, 연구비가 부족한 대학에 지원은 하지 않고, 연구소를 또 하나 짓는건 어불성설이라는게 주장의 핵심이었다. 문교부 또한 대학교수들의 편을 들어 과기처의 계획을 반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기처는 결국 과학재단 부설로 기초과학연구를 지원하는 센터를 설립하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하고, 대학이 독자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고가의 정밀기기, 특수기기 등의 공동사용을 지원하는 센터를 만들기로 합의한다. 이 센터는 훗날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된다⁠. 기초과학 담론에서 대학은 명분으로 이미 정출연 담론을 앞서고 있었다.

 

1990년대가 되면, 정부의 기초과학 연구는 집단화 대형화되기 시작한다. 과학재단은 ‘창의적 연구지원 사업’을 신설해서 우수한 개인연구자에게 장기적 지원을 하는 제도를 만들었고, 우수연구센터 사업의 일환으로 과학연구센터(SRC)사업을 만들어 기초과학연구를 대형화시켰다. 하지만 우수연구센터 사업 자금의 대부분은 목적기초에 해당하는 공학연구센터(ERC)에 투자되었고, 순수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과학기술 G7 선진국 진입과 같은 구호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다. 이 시기, 정부의 연구비는 급증했고 대학의 연구개발도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그 연구개발의 성격은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는 응용 및 개발 연구에 치우치기 시작한다. 대학은 기초연구의 중심이 아니라,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기초와 응용 사이에서 애매한 연구를 해야만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1996년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게 되면서, 노벨상에 대한 열망이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이전까지는 원천기술확보라는 목적기초연구가 기초과학 연구를 추동하는 명분이었다면,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노벨상 수상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해야 하는 명분이 되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을 위해 기초과학을 지원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는 바로 이 시기에 시작되었고, 정부는 이에 발맞춰 고등과학원(KIAS)를 설립한다. 이는 지금까지 정부의 지원에서 소외되었던 기초과학연구자들의 갈증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순수이론기초과학 연구기관으로 설립된 고등과학원은 처음엔 건립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우리나라에도 고등과학원을 만들어 노벨상에 도전해야 한다”는 말로 독려해 완공될 수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한국은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되고, 이어 2000년대 초반엔 이공계 기피현상이 사회적 신조어로 등장하며 기초과학은 국민의 관심을 받는다. 이공계 위기담론을 주도한 건 언론과 과학기술 단체들로 이들은 이공계인들의 낮은 처우를 개선하자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국가가 좀 더 과학기술에 투자해줄 것을 조직적으로 건의하게 된다. 이공계 위기의 근본적인 이유는, 돈 되는 쪽으로만 달려가는 시장 숭배적 행태라는 분석이 제기되었지만, 당시 과학기술 단체와 언론은 이공계 위기는 국가 위기라는 도식으로 여론을 장악해 나갔다⁠.

 

이미 소개했던 은하도시는, 바로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순수기초과학을 연구하던 일련의 과학자들이, 그동안 소외되었던 기초과학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노벨상 담론과 이공계 위기 담론을 통해 얻어내려던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기초과학은 노벨상이라는 유령에 압도당해 제대로 발전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한국 기초과학은 노벨상이라는 유령에 압도당해 제대로 발전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사회 속의 기초과학, IBS가 나아갈 길

 

위에서 다룬 내용은, IBS의 역사를 다룬 책 《사회 속의 기초과학》의 제1장을 필자의 주장을 섞어 요약한 것이다. 이 책은 이승만 정권에서 IBS가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는 시기까지, 기초과학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변화를 중심으로 서술된 과학사 서적이다. 저자들은 기관의 역사를 서술할 때 흔히 나타나는 특정 인물에 대한 칭송 위주의 서술을 배제하고, 역사적 해석을 배제한 채 사실만을 충실히 모으로 나열하는 백서 형태의 방법 모두를 피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위에서 다룬 1장의 요약은, 현장에서 연구하는 기초과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지난 시절 국가주도로 이루어져온 기초과학정책을 지나치게 중립적으로 기술했다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게다가 민동필 교수에 의해 주도된 은하도시 포럼을 넘어, 이명박 정부에서 표류된 과학비즈니스벨트와 이후 IBS가 설립되면서 대학의 연구자들이 갖게 된 상대적 박탈감을 기술할 때도, 과학사가인 저자들의 시선은 대체로 중립적이며 차갑기까지 하다. 그건 저자들이 마치 과학계의 역사를 인류학자가 원시부족을 관찰해 연구하듯,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거나, 혹은 서문에 써둔 기관의 역사를 다루는 책의 한계, 즉 칭송 위주의 기술의 편향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인지 모른다

 

기초과학자들에게, 기초과학을 다루는 국가정책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초과학연구가 노벨상 담론이라는 유치한 희망을 쫓아 나갔다는 문제를 다루면서, 저자들은 이 문제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상태인지 분석하지 않는다. 박정희 시대부터 과학기술자들이 애국심의 포로 혹은 노예로 다루어진 문제를, 저자들은 마치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듯 분석하고 지나친다. 일본의 이화학연구소(RIKEN) 같은 기초과학연구소를 만들자는 과학자들의 꿈이, 건설업자 출신 대통령 이명박에 의해 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변질되었고, 심지어 행정도시 이전과 정치적으로 결부되어 국가기초과학연구의 기틀이 정치에 마구 흔들렸음에도, 저자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다.

 

이일하 서울대 교수가 생물학연구정보센터(브릭)를 통해 IBS 단장이 가져가는 연구비 100억의 부당함을 알린 글의 절심함을, 저자들은 IBS를 운영하는 이들의 설명으로 오해가 풀렸다는 식으로 서술한다. 현장의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한국 기초과학의 문제는 정반대다. 현실은 객관적인 과학사가의 진단과는 동떨어져 존재한다. 현장은, 과학정책과 연구비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는 과학자들이 살아가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공간이다. 그 곳에, ‘성찰적 과학’ 같은 한가한 주장이 받아들여질 여유공간은 없다.

 

IBS라는 기관의 역사를 다루는 책의 제목을 《사회 속의 기초과학》이라고 정한건, 아마도 과학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발전해야 한다는 저자들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성찰적 과학’처럼 공허한 인문사회과학자 특유의 개인적 윤리에 대한 강조는, 한국의 기초과학 발전을 위한 대안을 만드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들이 분석했듯이, 기초과학의 현실은 생존경쟁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은하도시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도와 문화를 통해 한국형 기초과학을 도모할 수 있을지, 저자들은 바로 그 주제에 천착했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크게 아쉬운 면을 보여준다. 사진은 대전 유성구 IBS 본원 전경. 출처 IBS
IBS라는 기관의 역사를 다루는 책의 제목을 《사회 속의 기초과학》이라고 정한건, 아마도 과학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발전해야 한다는 저자들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성찰적 과학’처럼 공허한 인문사회과학자 특유의 개인적 윤리에 대한 강조는, 한국의 기초과학 발전을 위한 대안을 만드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들이 분석했듯이, 기초과학의 현실은 생존경쟁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은하도시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도와 문화를 통해 한국형 기초과학을 도모할 수 있을지, 저자들은 바로 그 주제에 천착했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크게 아쉬운 면을 보여준다. 사진은 대전 유성구 IBS 본원 전경. 출처 IBS

그건 과학자들이 성찰적으로 과학을 연구하길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과학을 연구할 수 없도록 만드는 제도적 불합리가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한국사회의 기초과학 문제를 다루면서 아래의 문제들에 대해 명확한 분석과 관점을 보여주어야 했으나 실패했다.

 

첫째, 여전히 한국의 기초과학 생태계는, 목적기초라는 이름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다. 멀게는 박정희 정권에서 출발한 기초과학에 대한 철학적 오해는, 지금은 틀린 것으로 판명된 바네바 부쉬의 선형적 발전과정, 즉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응용 및 개발로 이어지는 미국식 모델을 따라하지도 못한채,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 기초과학은 응용 및 개발을 위한 연구다. 그래서 생물학자는 반드시 질병과 건강과 관련한 연구를 해야만 연구비를 받을 수 있다.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이런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 기초연구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둘째, 기초과학연구를 지원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제시된 노벨상 담론은, 오히려 한국 기초과학계를 병들게 만들었다. 기초과학연구의 목적이 노벨상일 수는 없다. 노벨상은 그저 하나의 결과물일 뿐이다. 기초과학 강국은 노벨상이 없어도 여전히 기초과학강국이다. 한국처럼 국가적으로 노벨상을 목표로 연구비를 집행하는 국가는 없다. 이는 한국 과학기술정책을 집행하는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얼마나 후진적인 사고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지표다. 노벨상을 거론하는 기초과학정책은 모두 폐기해야 한다. 바로 그 노벨상 때문에, IBS라는 연구소의 첫 단추가 왜곡되었고,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셋째, 기초과학은 김연아와 같은 스타플레이어 한 명이 이끌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기초과학은 연구 인프라와 기초과학을 존중하는 문화적 토양이 합쳐졌을 때, 그 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발전하는 일종의 문화재다. 김연아나 박지성 한 명에게 투자한다고 해서 한국 피겨스케이팅이 발전할 수 없는 것처럼, 기초과학을 사회에 뿌리내리는 방식은 스타과학자 한 두명에게 백억의 연구비를 주는 것일 수 없다. IBS 모델은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집행방식은, 사회적 양극화와 비슷한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고, 미래의 기초과학 연구에 오히려 해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IBS는, 그리고 IBS를 넘어 한국 기초과학의 생태계는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 나가야 할까? 어쩌면 그 중심엔 보통과학자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놓여있는지 모른다. 기초과학을 한국적으로 정착시키는 방식, 그 핵심엔 노벨상도 아니고 경제발전도 아닌, 과학을 묵묵히 수행해 나가는 보통과학자들에 대한 재발견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기초과학은 보통과학자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 책은 IBS에까지 이르는 기초과학 담론의 한국적 역사를 보여준다. 하지만 현장과학자의 시선에서 보면 매우 부족하고 지나치게 중립적인 논의일 뿐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역사를 억지로 정당화하려 할 때, 제대로된 건설적 대안은 나오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논의를 하고 싶다면, 좀 더 현장의 과학자들의 목소리와 시선을 담아냈어야 한다. 이 책은 현장과 크게 괴리된 책이다.

 

이 책은 IBS에까지 이르는 기초과학 담론의 한국적 역사를 보여준다. 하지만 현장과학자의 시선에서 보면 매우 부족하고 지나치게 중립적인 논의일 뿐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역사를 억지로 정당화하려 할 때, 제대로된 건설적 대안은 나오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논의를 하고 싶다면, 좀 더 현장의 과학자들의 목소리와 시선을 담아냈어야 한다. 이 책은 현장과 크게 괴리된 책이다.
이 책은 IBS에까지 이르는 기초과학 담론의 한국적 역사를 보여준다. 하지만 현장과학자의 시선에서 보면 매우 부족하고 지나치게 중립적인 논의일 뿐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역사를 억지로 정당화하려 할 때, 제대로된 건설적 대안은 나오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논의를 하고 싶다면, 좀 더 현장의 과학자들의 목소리와 시선을 담아냈어야 한다. 이 책은 현장과 크게 괴리된 책이다.

 

참고자료
-《사회 속의 기초과학-기초과학연구원과 새로운 지식 생태계(2016)》 박범순 외, 한울아카데미 한울엠플러스
-http://hellodd.com/?md=news&mt=view&pid=31481
-http://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7813
-https://sisun.tistory.com
-이용길, & 강경희. (2018). 역대 정부별 과학기술행정체제 분석-권위주의 시기를 중심으로. 예술인문사회융합멀티미디어논문지, 8, 791-801.
-황혜란, & 윤정로. (2002). 한국의 기초연구능력 구축과정: 우수연구센터 (ERC/SRC) 제도를 중심으로. 기술혁신학회지, 6(1), 1-19.
-과학계와 한국사회의 노벨상 광풍은 여러 학술지에 실린 글에서도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이 글들을 참고할 것. Choe, S. R. (1998). 한국도 노벨상 한번 타봅시다. The Science & Technology, 31(11), 20-21. Kim, C. W. (1990). 수필-노벨상은 요원한가?. The Science & Technology, 23(10), 46-47.Jo, M. J. (1999). 학회순례-회원 4 천여명, 2000 년대 노벨상 도전. The Science & Technology, 32(12), 28-29.
-장수명, & 서혜애. (2005). 이공계 기피현상의 경제적 진단. 교육재정경제연구, 14, 25-52.
-이은경. (2006). 이공계 기피 논의를 통해 본 한국 과학기술자 사회의 특성. 과학기술학연구, 6(2), 77-102.
-장창원, & 김승연. (2002). 구조적 측면에서 접근한 이공계 기피현상의 원인분석과 정책과제. 직업교육연구, 21(2), 115-140.

-http://scienceon.hani.co.kr/119442

-[기초과학 키워야 노벨상 보인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초과학 키워야 노벨상·퍼스트무버 가능" https://www.sedaily.com/NewsVIew/1L2MMQVL7Q. 기초과학을 노벨상을 위한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은 정치과학자와 한국과학기술관료들 사이에서 여전하다

-《사회 속의 기초과학》에서 기관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특정 인물을 칭송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기술이 비판적이 되는건 아니다. 상식적으로 불합리한 역사를 다루면서 이를 중립적으로 기술하는 방식은 칭송을 한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박정희식 패러다임 하에서 정치에 종속된 과학기술의 폐해와,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자행된 기초과학 연구의 피해에 대해서조차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함으로써, 마치 그런 역사적 발전과정이 당연한 것이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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