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촌평]글로벌 전쟁 일어난 양자기술, 한국은 집안 싸움

2019.11.04 14:00
윤신영 기자
윤신영 기자

지난 10월 20~23일 세계 내로라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거대기업의 움직임은 숨막힐 정도로 급박했다. 20일 핀란드에서 개최된 유럽연합(EU) 퀀텀(양자)플래그십 콘퍼런스에서 SK텔레콤과 자회사 IDQ는 유럽 전역에 1400km 길이의 양자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이틀 뒤인 22일에는 삼성전자 전략혁센터가 운영하는 벤처캐피털인 삼성캐털리스트펀드가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5500만 달러(645억 원)를 미국의 양자컴퓨터 하드웨어 기술 개발 스타트업인 ‘아이온큐’에 투자한다는 소식을 전격 공개했다. 이미 삼성전자는 10월 초,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는 삼성 넥스트를 통해 양자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미국 스타트업인 ‘알리로’에 270만 달러(32억 5000만 원)를 투자한다고 밝힌 상태였다. 불과 3주 사이에 삼성은 양자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미래 기술에 대한 지분을 확보했다.


같은 날 미국 IBM은 자사 기술연구소인 IBM연구소의 블로그 양자컴퓨터 코너에 긴 기술적 설명이 담긴 문서를 올렸다. IBM은 ‘라이벌’ 구글이 최근 개발했다고 소문이 무성하지만, 당시 아직 공식적으로 정체를 드러내지는 않은 새로운 양자컴퓨터칩의 성취를 조목조목 따지며 “사실은 그렇게 뛰어난 성과를 낸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구글이 달성한 지표가 양자컴퓨터 개발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는 ‘물타기’도 했다. 


하지만 IBM의 각고의 노력은 바로 다음날인 23일, ‘네이처’에 구글의 새 양자컴퓨터 칩 ‘시커모어’가 공개되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논문은 시커모어가 현존 최고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걸리는 과제를 시커모어로 3분 20초 만에 풀어, 특정 과제에서 슈퍼컴퓨터의 연산속도를 능가하는 ‘양자우월성’에 도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눈이 휙휙 돌아가는 뉴스 사이에서, 흥미로운 점이 보인다. 며칠 사이에 벌어진 양자 기술 분야의 뉴스는 모두 글로벌 대기업이 주도했다. 양자컴퓨터 분야가, 다른 많은 공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대기업이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강력한 경쟁 체계에 생각보다 빠르게 편입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로도 읽힌다. 대학, 연구소에서 소소하게 원천기술 몇 가지 연구해서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무한 경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구글의 발표를 앞두고 라이벌 IBM이 다급하게 구글의 시험 결과를 평가절하하며 신경전을 벌인 데에서 이런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분야 ‘빅2’를 이루는 IBM조차 구글의 성취를 빠르게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라고 느꼈다는 것이다. IBM은 구글 시커모어와 비슷한 수의 큐비트로 구동하는 양자컴퓨터 칩을 이미 개발해 9월 공개까지 한 상태였지만, 구글의 이번 결과에는 미치지 못했다. 개발 상태가 훨씬 더딘 다른 후발 기업이나 일개 대학 연구실에서는 ‘판세 뒤집기’를 꿈꾸기 쉽지 않을 것이고, 이런 격차는 점점 커질 것이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 중 하나지만 양자컴퓨터 분야에서는 특별한 행보를 보이지 않던 삼성이 22일 갑자기 아이온큐 투자를 전격 추진한 것도 이런 ‘판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아이온큐는 구글이나 IBM이 개발 중인 양자컴퓨터 구현 방식인 ‘초전도체’가 아닌, 경쟁 방식인 ‘이온덫(이온트랩)’이라는 방식을 쓴다. 수없이 등장했다 사라진 양자컴퓨터 구현 기술 후보 중 최근까지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두 방식 가운데, 삼성은 구글과 IBM의 주력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택한 것이다.


구글의 양자우월성 달성과 다른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확대로 양자 기술 연구의 주도권 경쟁은 더 격해질 것이다. 당장 절치부심한 IBM, 기존 강자 인텔, 새롭게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삼성의 다음 행보에 시선이 쏠린다. 여기에 각국 정부의 통 큰 양자기술 투자가 더해져 기술 격차는 거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2018년 10월 시작된 대규모 투자 계획 퀀텀 플래그십으로 10년간 10억 유로(1조 3000억 원)를 양자기술 개발에 투자한다. 미국 역시 2018년 말 ‘국가 퀀텀 이니셔티브’를 통과시키며 5년간 최대 12억 달러(1조 4000억 원)을 양자기술에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은 2018년 세계 최대 규모의 양자정보과학국가연구소를 설립해 원거리 양자통신망과 양자컴퓨터를 개발할 계획을 발표했다. 2018년부터 건설 중인 이 연구소의 건설 투자 예산은 5년간 1000억 위안(16조 5000억 원)에 이른다.


한국은 초라하다. 올해 1월 5년간 445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양자컴퓨팅 기술개발사업이 전부다. 1년에 100억 원이 채 안 된다.  물론 한국의 전문가나 부처가 혜안이 부족해서 이것밖에 추진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445억 원이라는 애매한 금액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예비타당성조사를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2016년 5000억 원 규모의 양자산업 육성계획을 세웠지만,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지 못해 무산됐다. 


일각에서는 예타가 이 분야 기초연구를 담당하는 일부 학계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주장한다. ‘양자컴퓨터는 먼 미래에나 가능한 기술, 밑 빠진 독 같이 성과를 보기 어려운 기술, 한국이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운 기술’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공격적인 양자 기술 투자를 막았다는 것이다. 반대 의견을 지닌 쪽에서는 공학계나 기업이 주도하는 양자컴퓨터 논의에 불편함을 표하기도 했다. 이런 인식과 분위기 때문인지, 실제로 한두 해 전까지 양자컴퓨터 관련 학회에 가 보면 일부 학자들이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예타 통과를 반대한 전문가들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투자를 반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두 해 전까지 대기업의 양자컴퓨터 기술은 실제로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IBM처럼 성과를 잘 홍보하는 기업도 있었지만, 기술 세부가 논문으로 공개되지 않다 보니 반신반의하는 연구자도 많았다. 기존에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고 홍보하고 다녔지만, 실제로는 특정 목적의 문제만 해결할 수 있는 양자 시뮬레이터였던 캐나다 기업 디웨이브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전례도 이런 의구심을 키웠다. 이런 상황에서 선뜻 대규모 투자계획을 지지하기는 힘든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글로벌 경쟁에 뒤쳐져 '우물 안 개구리'였던 한국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이 분야의 현주소가 정확히 드러났다. 누가 기술의 주도관을 지닌 '선수'인지, 선진국들이 어느 분야에 얼마나 투자를 늘리는지도 분명해졌다. 한국도 내부 의견을 조율해 경쟁에 나설 때다. 다행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양자 분야의 종합계획을 수립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양자 산업 육성과 지원을 위한 특별법도 발의된 상태다. 기업의 행보도 가시화됐다. 다시 한번 실기하지 않으려면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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