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질병]운동의 진화 

2019.11.02 06:00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건강을 위해서라면 운동의 중요성을 경시할 수 없다. 운동 부족은 수많은 만성 질환의 원인이다. 암 발병률도 높아지고 우울증도 생긴다. 식단에 대해서는 이게 좋다, 저게 나쁘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운동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가 이뤄져 있다. 운동은 무조건 좋다. 


여기서 궁금증을 제기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왜 운동은 좋은 형질인데, 선택되지 않았냐는 의문이다. 운동이 자연선택 상의 이득을 준다면 당연히 운동을 좋아하는 심리적 모듈도 진화할 것이고, 그렇다면 애써 이를 악물고 트레드밀에서 허덕거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인류에게 운동이 사치였을 것이다. 안 그래도 먹고 살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 사냥하느라 채집하느라 지쳤는데, 다시 테니스 라켓을 들 이유가 없다. 생존을 위한 활동과 신체적 활동이 유리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운동의 적응적 이득이 발생했을 것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심리적 모듈이 진화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래서 다른 재미있는 요소(경쟁, 유희 등)가 없는 운동은 대개의 사람에게 즐거움보다는 고통으로 느껴진다. 아무튼, 이번 이야기 주제는 신체 활동의 진화다. 


에너지 소모와 신체적 활동


신체적 활동, 즉 운동은 에너지 소모와 관련된다. 그런데 신체적 활동은 주로 근육의 운동을 통한 몸의 움직임인데 에너지 소모는 호흡이나 소화를 통해서도 달성된다. 신체적 활동은 에너지 소모의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체온을 유지하고 기본적인 생명 유지 활동은 온종일 잠만 자도 일어난다. 음식을 먹으면 소화를 해야 하는데, 소화하는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러 수렵채집 사회를 비교해보면 각 집단의 신체적 활동량은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주로 식량 획득에 필요한 신체적 활동과 관련된다. 즉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최적 운동량’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들 각각의 생태적 여건에 맞춰 필요한 활동량을 보일 뿐이다. 


운동의 진화

 

 

원시적인 인류가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스트랄로피테신 무렵부터 인류는 두 발로 걷기 시작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매달릴 나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밀림이 점차 초원으로 바뀌면서 먹을 것도 부족해졌다. 거대한 영역을 돌아다니면서 식량을 찾아야 했다. 두발걷기의 진화는 장거리 이동을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드자족은 하루에 대략 9~15km를 돌아다니는데, 침팬지는 고작 2~5km를 돌아다닐 뿐이다.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하면서 장거리 이동에 적합하도록 적응하기 시작했다. 체형이 바뀌고 생리적 적응도 일어났다. 점차 효율적으로 걷게 되면서 이동에 따른 비용이 감소했다. 물론 뛰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인간의 몸에는 지방도 늘어났다. 단지 잘 돌아다니기 위해서라면 근육만 발달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큰 뇌를 지탱하기 위해서 충분한 에너지를 저장해야 했다. 단 일주일만 신체적 활동을 줄여도 우리 몸은 근육으로 가는 에너지를 지방 축적으로 재할당한다. 움직일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감지하면 즉시 더 중요한 기능, 즉 인지적 기능을 위해서 자원을 저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체지방은 약 14~26%에 달하지만 침팬지는 3~10%에 불과하다. 


다른 영장류는 그렇지 않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라고 해서 금세 비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항상 일정 수준의 근육량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와 달리 인간은 근육으로 가는 에너지를 얼른 지방으로 돌리기 때문에, 몇 년간 헬스클럽을 다니며 멋진 근육을 만든 사람도 방심해서는 곤란하다. 인간의 근육은 만드는 것보다 사라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근육보다 지방


'절약 유전자 가설'에 따르면 우리 몸은 주기적인 기아에 대비하기 위해서 ‘과도한’ 지방을 축적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인슐린 저항성도 마찬가지다. 날씬한 몸을 가진 사람은 맵시는 있겠지만, 먹을 것이 부족하면 먼저 죽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절약 유전자 가설은 이해하기는 쉽지만, 최근 크게 위협받고 있다. 몇몇 후보 유전자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비만이나 당뇨병의 아주 일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구석기 시대의 조상이 주기적인 기아에 시달렸다는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은, 분명 마트가 곳곳에 있는 현대 사회보다는 굶주렸겠지만, 그렇게 기아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렵채집인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이동이다. 정해진 거처가 없이 언제든지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하면 억지로 참고 견딜 이유가 없다. 먹을 것이 많은 곳으로 떠나면 그만이다. 실제로 수렵채집인의 건강 상태는 상당히 양호하다. 기아는 오히려 농업 혁명이 일어난 후 더 심각해졌다. 정주 생활을 하는 집단에서 흉년이 오면 큰일이다. 인구가 너무 많아져서 산이나 들에 따먹을 것도 없고, 사냥할 것도 없다. 그래서 몸에 지방을 저장하는 경향은 비교적 최근에 진화했다는 주장도 있다. 


게다가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비만은 나이가 들수록, 갓난아기를 제외하면, 더 흔하다는 것이다. 기아를 이겨내는 것이 절약유전자의 역할이라면 가급적 생애 초반에 가동되는 편이 유리하다. 소아기를 버텨야 성인이 되고 자식도 낳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모두 자신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시피 십대는 생애에서 가장 날씬한 시기다. 소아 비만이 보건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런데도 어린이는 어른보다 날씬하다. 운동장에서 실컷 뛰어놀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상들의 운동

 

지방을 근육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진화적 경향은 좀 실망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갓난아기의 체지방량은 아주 높다. 토실토실한 아기살은 사실 온통 지방이다. 빠른 뇌 성장을 돕기 위해서 지방을 충분히 저장하는 것이다. 체온 조절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뇌다. 뇌와 근육을 맞바꿀 것이 아니라면 현실을 받아들이자. 


우리 조상은 주로 어떤 운동을 했을까? 물론 체중 조절이나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아무튼 선조들은 주로 더운 곳에서 먼 거리를 뛰거나 걷고, 무거운 것을 들어 옮기고, 사물을 던지는 운동을 주로 했을 것이다. 육상 경기에서 흔히 보는 운동, 마라톤, 역도, 투창, 투포환 등이다. 돌아다니다 보면 높은 언덕도 올라야 한다. 그래서 등산과 암벽타기도 많이 했을 것을 보인다. 


침팬지는 인간보다 훨씬 강력한 근력을 가지고 있지만, 지구력은 떨어진다. 짧은 거리만 이동해도 곧 지친다. 침팬지의 사지 근육은 열 방출에 적합하지 않아 오래달리기도 잘 하지 못한다. 오르는 것도 생각보다는 오래 하지 못한다. 등산을 좋아하는 침팬지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알맞은 최적 운동량은 없다. 아마 수렵채집인은 건강을 희생하면서까지 식량 획득에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니 구석기 다이어트가 현대인에게 무조건 알맞은 것이 아닌 것처럼, 수렵채집인 것처럼 운동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현대인이 운동을 너무 적게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서 말한 대로 운동이 체중 조절에 ‘기대만큼’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운동은 여전히 옳다. 미국 기준으로 성인의 단 5%만이 일주일에 150분 이상 일상적인 신체 활동을 한다. 가장 좋은 운동은 유산소 운동이다. 숨을 헐떡거릴 정도의 운동을 반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시의 조상처럼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종일 사냥감을 쫓는 일은 어렵지만 말이다. 너무 강한 수준의 운동은 현실적으로 하기 어렵다. 피트니스 센터에 가려면 신경 쓸 일이 많다. 맵시 좋은 옷도 사야 하고, 왠지 이어폰도 꽂아야 할 것 같고, 근육남의 올록볼록한 몸도 부담스럽다. 그러다가 내야할 돈이 얼마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중등도 수준의 운동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 가까운 거리를 걷거나 뛰고 계단을 오르고 무거운 것을 들어 옮기고 공을 던지고 받고 하는 것이다. 원래 수백만 년 동안 하던 운동이다. 일상적인 현대인의 삶에서도 여전히 할 수 있는 ‘구석기 운동’이 많다. 

다음 편 미리 보기┃근시

 

브라이언홀든안과연구소 제공
브라이언홀든안과연구소 제공

주변을 돌아보면 온통 안경을 쓴 사람이다. 안경을 쓰지 않은 사람도 콘택트렌즈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부분은 근시다. 현대 사회의 당연한 현상 같지만, 진화적으로 보면 이상야릇한 일이다. 수렵채집사회라면 멀리 있는 먹잇감을 찾고, 무서운 포식자를 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수 킬로미터 밖의 딸기 나무를 찾아내고, 멀리 있는 매력적인 이성을 남보다 먼저 발견하는 것도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근시를 앓고 있다니, 도대체 안경점 외에는 무엇이 좋은 것일까? 


어린 시절에 혼나 본 경험이 있다면, ‘근시는 책이나 텔레비전을 너무 들여다봐서 생긴 것’이라고 믿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과 담을 쌓고 산 영희도, 커다란 텔레비전을 멀리서 시청하는 철수도 모두 근시다. 왜 현대인은 먼 곳을 잘 보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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