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공학자, 월급 다 투자해서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먼저 확보해야"

2019.10.25 15:24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 2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대에서 개최된 2019 신인 여성공학자 워크숍′ 기자간담회에서 여성 공학자 교수를 늘릴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윤신영 기자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 2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대에서 개최된 2019 신인 여성공학자 워크숍' 기자간담회에서 여성 공학자 교수를 늘릴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윤신영 기자

“후배 여성 공학자, 과학자에게 할 조언이요? 월급을 다 쓰는 한이 있더라도 간병인이나 보모 등을 구해 자신이 (연구에) 쓸 시간을 확보하세요. 가족에게 '헛된 기대'를 갖지 마세요. 출산 육아 등을 가족의 일원으로 같이 해주길 바라지만, 해주지 않을 때의 불행감은 온전히 여성의 몫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일을 제안 받았을 때엔 거절하지 마세요. 여성은 남성보다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낮춰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2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대에서 국내 최초로 개최되고 있는 ‘2019 신인 여성공학자 워크숍’의 기조연설과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후배 여성 공학자, 과학자에게 해 줄 조언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신인 여성공학자 워크숍은 서울대와 일본 도쿄대, 홍콩과학기술대, 중국 칭화대, 싱가포르국립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등 아시아와 호주 지역을 대표하는 7개 대학이 개최하는 ‘아시아 학장 포럼 2019’의 일환으로 개최된 행사다. 여성 공학자들의 네트워크 구축과 실질적인 학계 진출을 위해 지난해 홍콩에서 처음 개최됐다. 


노 이사장은 “여성이 전문적인 일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반드시 주변에 ‘돕는 손’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변에 서로 격려할 동료를 만들고, 시쳇말로 ‘쪼들리더라도’ 돈을 써서 아이 기르고 집안일 하는 데 도움을 받아 스스로 ‘일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는 유리천장에는 사회가 만든 것도 있지만 우리 자신이 만든 것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며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성장할 수 있다. 여성들도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이를 여성들끼리, 가족이 지지하고 격려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로 대학 내 성 편향 밝히고 개선책 마련


노 이사장의 말에는 여성 전문가가 이 사회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직접 경험하고 알아 온 사람으로서의 안타까움이 스며 있다. 노 이사장은 서울대 최초로 본부 주요 보직(연구처장)에 오른 여성 교수이자, 국내 대학 최초로 학내에 다양성 위원회를 만들고 2016년 다양성 보고서를 발간하게 한 여성과 소수자의 대변인이다. 서울대는 보고서 속에 낱낱치 드러난 통계 속의 다양성 부족을 처음 구체적으로 통감하고 여성 교원 임용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이 보고서는 지금도 매년 발간되며 비전임 교원과 여성 등의 권익을 높이기 위한 충실한 근거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 사진 제공 한국연구재단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 사진 제공 한국연구재단

노 이사장은 이러 통계에 비친 불균형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회가 만든 유리천장을 없애는 일이 함께 이줘져야 한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그는 “오늘 아시아 대학 총장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홍콩과 대만만 해도 공대의 여성 교수 비율이 10%가 넘고 홍콩의 공대 여성 조교수 비율과 대만국립대의 여성 교수 비율은 30%가 넘더라”라며 “하지만 한국 공대 중 여성은 5%, 서울대는 겨우 4%에 불과하다. 대학이 채용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정부도 정책으로 지원해 이런 국제적 추세에 맞춰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이사장은 “좋은 여성 교수 후보자가 없어서 비율이 낮은 게 아니다. 좋은 후보는 많이 있는데, 아직 사회에 여성이 제대로 일을 못 할 것이라는 가려진 편견이 있기 때문”이라며 “다행히 교육부가 국공립대의 여성교수 비율을 25%까지 높이도록 강력히 권고하고 대학별로 노력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좋은 시작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 이사장은 “다만 (채용 수를 할당하는 등의) ‘적극적 채용정책’이 있어야 수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며 “또 학계 외에 산업계에서 활약중인 여성 공학자를 교수로 채용하는 것도 필요한데, 현재는 연봉 등을 제한하고 있어 쉽지 않다. 대만만 해도 연봉을 2배 주면서 여성 인재를 끌어들이는데, 이런 부분은 정부가 대학의 자율성을 늘려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노 이사장은 여성 교수 비율이 늘어나는 게 공학 분야 후속세대에 여성을 더 많이 진출시키는 선순환 작용을 하기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교수 수가 늘면 ‘여성들이 저런 일을 할 수 있구나, 공학을 전공해야겠구나’라고 여성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 이사장은 여성 공학자, 과학자와 관련해 최근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그 동안 여성 공학자 문제는 ‘공대에 오는 여학생은 늘어났는데 여성 교수는 여전히 부족하다. 유리천장에 따른 인력 유출이 심하다’로 요약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 2018년 서울대 다양성보고서에 따르면, 2016~2018년 공대 및 자연대 학부 여학생 비율은 3년째 정체 상태다. 공대의 경우 휴학생을 제외한 재학생 중 여학생 비율은 15%대에 불과한데, 증가세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노 이사장은 ‘직장’으로서 대학이 취할 수 있는 대책도 언급했다. 그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의 경우, 캠퍼스 안에 어린이집만 4곳이 있다”며 “서울대만 해도 관악 한 군데만 있으면 됐지 생각하는데, 이런 부분을 해결해 줘야 걱정하지 않고 여성 공학인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이사장은 연구재단에서 실시를 고려 중인 대책도 일부 공개했다. 노 이사장은 “최근 분야별 1인당 연구비 수주액을 남녀 따로 뽑아 비교해 봤는데 여성이 남성의 절반 수준이라 놀랐다”며 “현재 이유를 다각도로 파악중”이라고 밝혔다. 중견연구자 이상에 여성 연구자 비율이 적거나 여성 중견연구자가 과제에 지원을 적게 하는 등 가능한 이유는 많겠지만, 정확한 현황 파악을 위해서는 조사가 필요하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과제 평가 과정에서 편향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노 이사장은 “관련해 과제 지원서를 평가하는 평가위원의 성비를 그 분야 실제 연구자 성비와 맞추는 등 여러 대안을 고민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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