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멧돼지 전면 포획이 능사 아니다

2019.10.25 09:45
이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이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청정 지역이던 한국도 지난 9월 17일에 처음으로 경기도 파주에서 발병이 확인됐다. 정부는 이에 대응하고자 모두 15만 마리가 넘는 사육돼지의 살처분을 통한 방역에 역량을 집중해 바이러스의 전파를 방지했다. 이와 같은 조치 덕분에 추가 발병은 이달 9일 연천을 마지막으로 잠잠한 상태이다. 

 

양돈 농가를 중심으로 지난 한달 간의 사육돼지의 감염은 소강상태에 있지만 최근 멧돼지의 폐사체에서 바이러스가 잇달아 검출이 되면서 또다시 방역 대상이 확장됐다. 멧돼지의 경우 지난 3일 연천군 비무장지대에서 최초로 감염 사례를 확인했으며 이달 17일을 기준으로 총 9마리의 멧돼지에서 바이러스가 검출이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멧돼지에 대한 선제적 조치의 필요성을 느끼고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달 15일부로 48시간 동안 남방한계선과 민통선 구간 내 지역을 대상으로 멧돼지에 대해 전면 포획 조치를 시범 실시했다. 이후 안정성, 효과성, 임무수행의 적절성 등을 고려해 본격 실행할 계획이다. 시범 운영 기간 동안 126마리의 멧돼지가 포획됐으며 추후 본격 실행에 돌입하게 된다면 더 많은 수의 멧돼지가 포획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발병 원인과 전파 경로를 아직 정확하게 찾지 못했고, 민통선 지역에 멧돼지가 얼마만큼 서식하고 있는지 정보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전면 포획에 나서는 것은 야생동물생태학자 입장에서는 크게 우려되는 일이다. 국내 멧돼지 개체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해당 지역의 멧돼지 서식 밀도와 같은 기초적인 생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전면 포획이라는 선제적 조치는 야생동물 관리의 측면에서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육돼지로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전파 원인에 대한 연구를 보면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러시아의 경우 잔반 급여와 수송 및 선적, 차량 등 이동에 의한 전파 비율이 73%에 달했던 반면, 감염된 멧돼지에 의한 전파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중국에서도 잔반 급여(44%)와 오염된 차량과 사람의 접촉(41.5%)이 아프리카돼지열병 전파의 주원인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사육돼지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전파되는 주된 경로는 멧돼지보다는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고 보는 게 좀 더 타당하다. 물론 멧돼지의 폐사체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만큼 멧돼지로부터 전파될 가능성을 배제하면 안된다. 그러나 여러 선행 연구 결과를 살펴볼 때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파 원인은 잔반 사료, 인간과 수송 차량의 이동에 의한 비율이 높았다. 여기에 중점을 두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사냥견을 사용하지 않고 총기 포획을 실시한다고 한다. 전면 포획은 멧돼지 개체군에 큰 압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멧돼지의 행동권을 확장시키고 분산을 유도해 오히려 아프리카돼지열병 전파 억제에 역효과를 가져오고 인가까지 출현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다수의 논문에서도 고강도의 포획압은 멧돼지 개체군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고돼 있다. 따라서 우리보다 먼저 아프리카돼지열병 전파 억제에 경험이 많은 유럽의 사례를 참고해 경계지역을 적절하게 설정해 분산을 막고, 울타리(펜스)와 화학적 냄새 장벽의 설치해 접촉을 차단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국토가 좁고 토지이용이 고도로 이뤄지고 있으며 야생동물의 종다양성이 높지 않아 멧돼지가 대형포유류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멧돼지를 무조건 전면적으로 포획하는 것은 생물다양성 유지의 측면에서도 재검토돼야 한다. 부득이하게 포획이 필요하다면, 보전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최소존속개체군 크기를 설정하는 등 생태관리학적 개념을 도입해 충분한 검토가 이뤄진 뒤에 실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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