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누더기가 된 은하도시의 꿈

2019.10.24 21:41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은하도시 포럼 홈페이지 메인 화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은하도시 포럼' 홈페이지 메인 화면

“과학 없는 비즈니스, 비즈니스 없는 과학으로는 미래가 없다”

-'은하도시포럼'의 모토 중에서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행정수도 세종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에 과학비즈니스벨트로 대체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애초에 서울대 민동필 교수가 제안했다. 민동필을 MB에게 소개한 사람은 박영준이었다. MB는 경선 기간 중 아베를 만나러 일본에 간 김에 과학비즈니스벨트와 성격이 비슷한 도시인 츠쿠바를 둘러보기도 했다. MB의 생각은 옳았지만, 충청 민심은 그 진심을 몰라주었다. 과학비지니스벨트로 ‘세종시는 됐다’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과학비지니스밸트와는 별개로 세종시는 세종시대로 해야 한다 이렇게 흘러갔다.”

-故 정두언 전 의원 '세종시 수정안은 왜 실패했는가' 중에서⁠

 

“선거 유세에서는 충청표를 얻으려고 제가 (과학에) 관심이 많았겠죠”

-이명박 전 대통령 '대통령과의 대화 - 2011 대한민국은!'중⁠에서 

 

은하도시라는 기이한 꿈

 

은하도시포럼 설립취지문(민동필)
은하도시포럼 설립취지문(민동필)

시작은 은하도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엔 당시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였던 민동필 박사가 있다. 그는 기초과학과 문화∙예술이 중심이 되는 인구 50만의 도시를 만들자는 자신의 꿈을, 은하도시포럼이라는 사단법인을 통해 조직화했고, 그 실현을 위해 당시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이명박을 끌어들였다. 은하도시포럼의 취지는 순수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개발독재의 시대에 한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과학기술인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사회적 현실을 바라보며, 민동필 교수를 비롯한 몇몇 과학기술인은 은하도시라는 꿈을 꾸었고, 진심을 다해 실현하려 했을 것이다. 은하도시의 주인공은 수 천명의 과학자였고, 도시의 중심은 과학, 그것도 기초과학이어야 한다. 민동필은 그런 꿈을 꾸었고, 그걸 실현할 방법도 잘 아는 영민한 서울대 교수였다.

 

은하도시는 과학자의 이상향 그 자체였다. 은하도시포럼이 펴낸 책 《행복한 과학》에는 그들이 상상했던 과학기업도시의 청사진이 담겼다⁠. 은하도시는 아시아 과학의 허브를 목표로 하고, 그 곳에는 거대한 가속기가 중심에 들어선다. 기초과학자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기초과학원을 설립하고 세계각국의 석학들이 자유롭게 오고가는 연구소에서 과학자들은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된다. 은하도시에는 첨단 의료시설이 들어서고, 암 걱정이 사라지며, 원천연구를 통한 발명품은 비즈니스의 기회를 열어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도시 전체에는 문화예술이 언제나 공연되고 있으며, 삶의 질이 높은 이 도시에는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져 경제가 활성화된다. 은하도시는 유토피아 그 자체였다.
 

은하도시의 인구는 30만에서 50만명으로 구상되었고, 그 핵심에는 과학자 3000명과 예술가 및 기업인 1000명,  엔지니어와 공학자 500명과 그들의 가족이 포함돼 있었다. 도시 설립에 들어가는 비용은 약 3조원으로, 가속기에 1조원 그리고 연구단지를 만드는 인프라 구축에 2조원이 예상됐다. 도시가 만들어지면 연 1조원의 투자 유치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은하도시의 핵심은 기초과학연구소였다. 그리고 기초과학연구소의 중심에는 중이온 복합가속기가 놓여 있었다. 물리학자 민동필의 사상이 크게 반영된 은하도시의 기초과학은, 물리학의 가장 기초적인 과학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유럽핵물리학연구소(CERN)을 모델로 하고 있다. 물리학의 기초연구엔 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건 물리학의 특징이다. 하지만 은하도시포럼에서 말하는 기초과학의 청사진은, 구체적인 그림 없이 구호처럼 모호하게 반복되었다. 미국도 일본도 유럽도 아닌 한국에서 기초과학은 어떤 모양새여야 하는지, 나아가 도대체 한국에서 기초과학으로 경쟁력을 가지려면 그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떤 명확한 철학도 없이, 은하도시는 기초과학에 대한 철학을 과학과 예술의 대화,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연구공동체, 기초과학 연구를 비즈니스화, 국가성정의 신형 엔진, 과학자가 생각의 힘을 키우는 학교 등으로 포장하며 화려한 위용만 자랑했다.

 

민 교수가 이런 구상을 시작한 계기는 2005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그가 과학∙예술∙인문학 교수들과 결성한  '랑콩트르(Rencontre·만남)’가 모태로 알려져 있다. 발음도 어려운 프랑스어 이름을 가진 이 모임의 성격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그럴듯한 화두를 지닌 이 모임이 2006년에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은하도시 포럼’으로 발전했고, 2007년 대선후보이던 이명박 씨를 만나며 그의 대선 공약이 된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인 2006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을 방문할 일이 있고, 이후 그의 측근이던 박영준 씨(훗날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2007년초 민 교수를 이 후보에게 소개했다. 당시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삼아 수도를 이전하려던 노무현 대통령의 계획이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좌절되었고, 이 후보는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고 있었다. 은하도시포럼의 은하도시 계획은 행정수도 이전을 무효화하면서 충청권의 표심을 잡고 싶어하던 이 후보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획으로 보였을 것이다. 

 

은하도시포럼 로고
은하도시포럼 로고

정치의 들러리가 된 과학비즈니스벨트


은하도시포럼의 취지는 순수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민 교수는 기초과학의 꿈을 현실화하려면 반드시 정치인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는 영민한 과학자였다. 사단법인을 만들고 박 씨를 통해 이명박 후보를 만나는 과정은 기초과학을 사랑하는 한 과학자가 과학자의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 정치와 연결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 과학자의 꿈이 현실이 되는 과정은 정치라는 진흙탕을 건너는 지난한 길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어쩌면 민 교수 역시 그 과정에 대해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이 후보의 이미지는 비즈니스맨이었고, 불황이었던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킬 경제대통령으로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은하도시계획이 이 후보를 만나면서, 기초과학보다는 비즈니스가 더 중요한 단어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 교수는 여러 번에 걸친 발표를 통해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은하도시라는 목표를 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이 후보에게 더 잘 어울리는 계획으로 수정해나가기 시작한다. 과학이 비즈니스와 만나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다. 특히 기초과학은 경제성이 없는 연구가 대부분인데, 어떻게 과학으로 비즈니스벨트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과학과 비즈니스라는 이질적인 두 분야를 어떻게 하나로 엮어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특히 대부분의 과학계 종사자들에게 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공약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기초과학을 지원하겠다는 이상에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었지만, 도대체 이미 존재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과의 차별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청사진도 없었고, 기초과학계의 의견을 수렴하지도 않은채 정치권에서만 논의가 떠돈다고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과학자들에게 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해괴한 이름은 조롱의 대상이었고, 그 계획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대통령인수위원회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태스크포스가 꾸려졌다. 2008년에는 관련부처들이 추진지원단을 만들어 간담회, 세미나,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했다. 2009년이 되면서 추진지원단의 종합계획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의해 심의 확정되고, 곧바로 정부는 과학벨트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당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던 세종시 문제가 불거지자 정치인들과 지역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며, 과학비즈니스벨트는 국회에서 표류하게 된다. 게다가 이 대통령이 후보시절 각을 세우던 박근혜 당시 의원은 과학비즈니스벨트를 반대하고 행정도시를 지지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치는 충청권의 표심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정책을 찾는 방향으로 선회되었으며,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수렁에 빠져버렸다. 

 

한국기초과학의 미래-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프로젝트(민동필) 구상 자료 중
'한국기초과학의 미래-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프로젝트(민동필)' 구상 자료 중

 

누더기가 된 은하도시의 꿈

 

이후 어떻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기초과학연구원(IBS) 설립계획으로 변해갔는지, 그 과정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2009년 세종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바꾸는 정운찬 총리의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었지만, 같은해 12월 과학벨트 특별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바로 2009년부터 과학벨트는 입지 선정을 위한 기나긴 논의에 들어가게 되고,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참여한 그 입지선정은 결국 대덕연구개발특구로 결정되고 이곳에 IBS 본원과 중이온가속기가 들어서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입지선정에서 탈락한 지자체들의 반발은 거셌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시작한 계획에 관심이 없던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면서, 과학벨트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IBS라는 이름만 겨우 살아남아 명맥을 잊게 된다. 기초과학에 대한 철학도 비전도 없는 정치인의 기회주의적 야망에 이용당한 은하도시는, 그런 기회주의적 야망조차 없던 무능한 국정농단 정부에서 활력을 잃고 표류했고, 2013년이 되어서야 엑스포과학공원에 IBS 본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의결되고, 2016년이 되어서야 본원으로 입주를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도 과학벨트계획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명박 정부가 철학도 없이 기획한 과학벨트를 정치적 견해가 다른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손을 봐야 할지도 어려운 일이지만, IBS가 2012년 첫 단장을 뽑은 후, 지난 8년간 보여준 모습이 과연 기초과학을 위해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평가와 합의도 과학계엔 존재하지 않았다.

 

IBS는 한국에서 기초과학과 과학자의 지위를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몇몇 과학자들의 꿈이 담긴 결과물이다. 하지만 설립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과학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따라 쉽게 손상되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이기도 하다. 과학벨트의 핵심이었던 IBS에 대한 제대로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곳에서 수행될 기초과학의 모습과, 한국형 기초과학의 철학이 논의조차 되지 않은채, 누가 정한 기준인지도 모를 100억원이 한 명의 스타 단장에게 돌아가는 방식으로, 한국 기초과학의 철학이 결정됐다. 기초과학 분야마다 필요한 예산도 천차만별이고, 한 사람에 집중된 권력이 가져올 위험이 뻔히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인들은 은하도시의 꿈을 이렇게 갈기갈기 찢어 누더기로 만들었다.

 

은하도시라는 계획부터 IBS의 건립까지 대한민국 기초과학의 역사에 반드시 기록될 이 거대한 여정은 서울대 물리학과라는 한국 과학계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 주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은하도시를 기획한 민 교수도 서울대 물리학과, IBS 첫 원장인 오세정 현 서울대 총장도 서울대 물리학과, 이후 기초과학원장을 역임하고 최근 퇴임한 김두철 원장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였다.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지만, 은하도시와 과학벨트, 기초과학연구원의 기획을 생물학자가, 아니면 화학자가 했으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부질없는 상상이긴 하지만, 단장 한 명에게 100억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몰아주는 정책 대신 다른 방식이 나오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IBS역사에는, 정치에 휘둘려 들러리가 된 한국 과학계의 슬픈 자화상이 새겨져 있다. 적어도 앞으로라도 그런 일을 되풀이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한국 과학계는 그 역사에서 많은 걸 배워야 한다.

 

우리는 아직 단 한번도 과학에 대한 깊은 철학을 지닌 정치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은하도시는 경제적 발전을 위한 대선후보의 공약으로 망가져갔다. 연합뉴스 제공
우리는 아직 단 한번도 과학에 대한 깊은 철학을 지닌 정치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은하도시는 경제적 발전을 위한 대선후보의 공약으로 망가져갔다. 연합뉴스 제공

참고자료
-'[참회록] 세종시 수정안은 왜 실패했는가', 비즈한국  https://www.bizhankook.com/bk/article/12142
- '과학벨트, 꿈과 정치', 사이언스온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87643
-http://www.yes24.com/Product/goods/61293047
-민동필, '한국기초과학의 미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프로젝트, 2008.5' http://scienceon.hani.co.kr/30757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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