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지하도시’ 짓는데 지하수가 걸림돌?

2019.10.21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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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첫 삽을 뜨는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사업‘의 단면 조감도. 전문가들은 길이 630m, 폭 63m, 깊이 52m의 거대 지하시설을 지을 때 가장 걸림돌로 지하수 ‘치수‘를 지목한다. 서울시 제공

 

 

이르면 2027년 서울 강남구 코엑스 부근 지하에 잠실운동장 30배 면적에 13층짜리 아파트와 같은 깊이의 지하시설이 들어선다. 단군 이래 최대 지하 시설물로 불리는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사업’이다. 길이 630m, 폭 63m, 깊이 52m의 이 거대 지하시설을 짓는 데만 1조7000억 원 이상이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이 사업의 가장 걸림돌을 지하수의 ‘치수’로 보고 있다. 이달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는 이 문제를 주제로 ‘도심지 복합 지질재해 연구 추진 토론회’가 열렸다. 서울시는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좀 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승석 서울시 영동대교지하공간 복합개발사업단장은 이날 사업의 개요와 공사과정에서 맞닥뜨릴 문제를 소개했다. 이 사업은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앞 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9호선 봉은사역 사이 영동대로 1km 구간에 버스와 지하철,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를 갈아탈 대규모 지하환승센터를 짓는 사업이다. 모두 7층으로 이뤄진 이 시설에는 버스환승센터를 갖춘 지하도로와 상업시설도 함께 들어설 예정이다.
 

사업단은 시설이 들어설 지반의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단장은 “이 지역은 지하 26.5m 깊이에 기반암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토질이 조밀하고 압축 강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지반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하수다. 지금은 도로가 깔려 있어 보이지 않지만 땅을 파고 공사를 진행할 지역은 과거 탄천 지류가 흐르던 곳이다. 지류가 형성됐던 지점을 따라 지하수가 흐를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땅속 물의 흐름이 복잡하다는 뜻이다. 지하 공사에 익숙한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런 곳에 지하시설을 지으면 공사 중 갑자기 지하수가 터져 나올 수도 있다.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면 지반이 가라앉거나 시설에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서울 송파구 잠실 석촌호수 근방에 제2롯데월드를 지을 때도 인근에 잇따라 싱크홀이 발생하자 전문가들은 공사장으로의 지하수 유실이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시추공 13개를 파고 지하수위를 측정한 결과 공사를 진행해도 지하수 수위에 큰 변동이 없다고 보고 있다. 이 단장은 “굴착 기간인 330일 동안 하루 평균 최대 890t의 지하수가 유출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일 수위변화량은 0.02m, 누적 수위변화량은 최대 3.9m로 서울시 지하수 관리기준을 모두 만족한다”고 말했다.

봉은사역 주변은 전체 공사 구간 가운데 수위변화가 비교적 큰 곳으로 분석된다. 봉은사역은 이미 지하철 역사에서 매일 95.8t의 지하수가 유출되고 있다. 사업단은 이 지역에 물을 주입해 수위를 유지하는 ‘리차지 웰(함양정)’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인공 함양은 지하에 물을 집어넣어 지하수의 수위를 올리는 기술이다. 제주도와 경남 진주 등지에서 물을 활용하기 위해 적용된 적은 있으나 건설현장에 적용되는 것은 처음이다. 서울시는 함양정을 활용해 서울시 기준인 일일 수위변화량 1m 혹은 누적 수위변화량 8m 이상의 유출이 발생하면 수돗물을 주입해 지하수의 수위를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역 주변은 지하수가 암반층에 흐르고 있어 지반침하 문제는 없을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지역은 퇴적층에 지하수가 흐르고 있다. 하지만 역 사이 구간은 인근의 코엑스 등 고층 건물이 암반을 지지하면서 침하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의 입장과 달리 좀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백용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복합재난대응연구단장은 “땅속 물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영동대로 인근에서 가장 개발이 덜 돼 건물 영향을 받지 않는 봉은사 뒷산에 기준점으로 삼을 시추공을 설치해야 한다”며 “탄천과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탄천 수계가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추 정보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없는 것도 지하수 분석을 어렵게 하고 있다. 백 단장은 “지하수를 동일한 기준에서 측정하려면 지하수위, 유출량, 지반침하 등과 관련한 입력 기준이 통일돼야 하지만 국내에선 모두 제각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발주회사들이 각각 제각각의 입력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엔지니어링 컨설팅 회사인 건화의 김영근 연구소장은 “표준을 개발해도 발주처가 쓰는 시스템과 통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위험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소장은 “한국은 지하수 모델링에서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지만 위험과 재해 평가에서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는 기관이 없다”며 “해외에서는 위험 평가가 이미 표준화돼 있는데 우리는 도심지만이라도 우선 표준을 우선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규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환경연구본부장은 “도심 지하공간이 늘어나면서 주변 지질 환경이 바뀌고 재해가 발생할 확률도 높아지고 있다”며 “사안별로 관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도심지하공간 전반의 시공간적 변화를 관리해 위험을 예측하는 ‘4D 지오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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