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갑작스런 상실을 겪는 이들에게

2019.10.19 06:00
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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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언제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경우라면 더 그렇다. 모든 사별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병에 걸려 숨진 것처럼 예상된 상실보다 사고나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처럼  갑작스러운 상실이 훨씬 높은 확률로 트라우마를 남긴다. 


갑작스러운 상실이 더 힘든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적절한 도움을 받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예상되던 상실에 비해 갑작스러운 상실이 닥친 상황에서는 주변 사람들도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갑작스런 상실을 겪은 사람들은 60% 정도가 주변 사람들이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조언을 하거나 심지어 실례가 되는 이야기를 했다고 응답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갑작스러운 상실이 생기면 충격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일상생활에 더 큰 지장을 겪기도 한다. 충격이 큰 만큼 아무일 없었다는 듯 멀쩡하게 돌아가는 일터, 학교,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분리된 듯한 느낌을 더 크게 받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과 멀쩡하게 흘러가는 일상생활 둘 다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갑작스러운 상실 중에서도 자살에 의한 상실은 상실감과 슬픔이 더 심하게 오래 지속되는 편이다. 마음이 훨씬 더 복잡해서 슬픔 뿐 아니라  버려졌다는 느낌, 죄책감, 비난하기 같이 에너지 소모가 심한 감정과 사고 과정들이 더 크게 나타난다. 부정적 정서 상태가 더 격럴하다보니 다른 형태의 상실에 비해 오래 트라우마로 남을 확률이 더 높다. 


갑작스러운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예측된 상실을 겪은 사람들보다 건강 상의 문제도 더 많이 호소한다. 잠도 잘 이루지 못하는 연구도 있다. 이런 일이 생긴 원인이 무엇인지 내가 뭘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계속해서 곱씹으면서 충격을 마음 속에서 무한히 반복 경험하기도 한다. 충격적인 일을 겪어도 여기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면 충격이 수그러드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갑작스러운 사별의 경우 마땅한 설명이나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더 어려운 편이다. 

 

대체로 시간이 지나면서 상실의 충격이 사그라드는 편이지만 반대로 1년 후 충격이 되려 증가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 채로 마비되었다가 충격이 나중에 찾아오는 경우다. 이 경우 혼자 슬픔을 느끼는 타이밍이 늦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얻는 것이 더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대부분 이미 잊고 일상으로 돌아간 상황에서 혼자 슬픔을 견뎌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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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유로 예기치 못한 상실은 슬픔이 더 오래 가는 편이다. 자연스러운 사인으로 인한 사별보다 자살로 인한 사별이 회복하는데 2년 정도 더 오래 걸렸다는 보고가 있었다. 보통 사별 후 6개월 안에 슬픔이 많이 수그러드는 데 반해 자살로 인한 상실의 경우 1년 후에도 슬픔이 크게 줄지 않았고 2.5년 정도 지나서야 원래의 감정 상태를 회복했다고 한다. 이전에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또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오래 슬퍼하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실감을 잘 극복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실감이 오래가는 원인은 결국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해서 이들을 해소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을 표현하는 글쓰기가 상실감을 딛고 일어서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서던 미시시피대 연구진에 의하면 갑작스러운 상실을 겪고 하루에 15분씩 4일 정도 자신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 자세히 써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불안이 빨리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쓸 때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서 최대한 자세히 서술하되 문법이나 맞춤법, 이게 말이 되는지, 논리적인지 같은 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15분간 멈추지 말고 자유롭게 가급적 자세하게 쓰고 만약 쓸 내용이 떨어졌다면 썼던 것을 계속 반복해서 쓰는 것도 좋다고 한다. 


상실감이 클 때 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글을 통해 마음을 표현해 보는 것도 좋겠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Range, M., Kovac, S., & Marion, M. (2000). Does writing about the bereavement lessen grief following sudden, unintentional death? Death Studies, 24, 115-134.
-Kristensen, P., Weisæth, L., & Heir, T. (2012). Bereavement and mental health after sudden and violent losses: A review. Psychiatry: Interpersonal & Biological Processes, 75, 76-97.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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