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원·지방대 키운 경력교수 빼가기 열 올리는 '서·카·포'

2019.10.17 12:07
KAIS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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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는 지난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인공지능(AI) 대학원을 국내 최초로 개원하며 8명의 실력 있는 교수를 채용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8명의 교수를 한 명 한 명 확인해 보면 대부분 국내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던 교수들이다. 한 명은 2018년 봄 학기에 신규 채용한 교수고 5명은 KAIST 전산학과나 전기및전자공학부 소속 교수가 소속을 바꿨다. 하지만 두 명은 각각 지난해와 올해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이직한 교수로 채웠다. KAIST AI대학원이 소속된 전기및전자공학부에는 올 여름 다른 한 명의 UNIST 교수가 이직해, AI 분야에서만 두 해 동안 총 세 명의 UNIST 교수가 KAIST로 자리를 옮긴 셈이다.


AI대학원만이 아니다. UNIST에서 지난 3년간 KAIST로 이직한 이공계 교수는 6명에 이른다. 서울대와 포스텍까지 합하면 12명이다. 서울대나 KAIST나 서울대, 포스텍으로서는 실력이 입증된 연구자를 교수로 채용할 수 있어 좋겠지만, 애써 키운 교수를 떠나 보낸 UNIST로서는 연구 및 교육 인력 손실에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장 ‘신진 학자를 발굴해 키웠다가 남 좋은 일만 해줬다”는 볼멘소리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특성화대의 ‘맏형’ 격인 KAIST나 포스텍, 국내 대표적인 국립대인 서울대 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름난 대학들이 후발주자인 다른 과학특성화대나 지역대학으로부터 핵심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AI대학원처럼 새로 개설하는 학과가 있을 때는 물론, 학과에 교수 결원이 생겨 신규 채용을 할 때 국내 대학에서 이미 자리 잡아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교수를 손쉽게 ‘스카우트’해 데려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광주과학기술원(GIST)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KAIST와 서울대, 포스텍으로 이직한 과기특성화대의 이공계 교수는 최소 1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른 수도권대나 국립대 등으로 이직한 경우를 포함한 37명의 약 46%다. 세 학교가 블랙홀처럼 과기특성화대 교수를 빨아들였다는 뜻이다.

 

 

가장 상황이 심각한 곳은 UNIST다. 2010년 개교 이래 76명의 교수가 국내외 다른 기관으로 이직했다. 특히 2017년 이후 만 3년이 채 못 되는 기간에만 39명의 교수가 다른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영학부와 기초과정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기초과정부 등 비이공계 교수 12명을 제외해도 27명이다. 이 가운데 44%인 12명이 서울대와 포스텍, KAIST로 이직했다. 대학 공시정보에 따르면 UNIST의 2018년 총 교원 수는 277명이다. 전체 교수의 10%에 해당하는 이공계 교수가 지난 3년간 이직했고, 그 가운데 절반 가량이 소위 ‘서·카·포’로 이동한 셈이다.


2012년 개교 이래 총 9명의 이공계 교수가 타른 학교로 이직한 DGIST는 최근 3년 사이에는 4명이 이직했고 그 중 한 명이 서울대에, 두 명이 포스텍으로 이직했다. DGIST 관계자는 “포스텍의 지도교수 연구실을 물려받기 위해 이직한 경우”라고 말했다. 경영공시 상 DGIST의 교원 수는 2019년 7월 기준 113명이다. GIST는 지난 3년 동안 총 6명이 국내외 대학에 이직했고, 서울대와 KAIST에 각각 1명씩 총 2명이 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직하는 교수들은 나름 사정이 있다. 수도권 사립대로 이직하는 경우는 연구나 교육 외의 개인적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나은 과기특성화대를 떠나 강의 부담이 더 많은 사립대로 갔기 때문이다. 지난해 학과 동료 교수가 서울 사립대에 이직한 UNIST 교수는 “교수들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 자녀 교육 문제가 걸리거나 배우자의 요청이 있으면 외면하지 못한다”며 “특히 중상위권의 수도권 사립대로 이직하는 교수들은 대부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과기특성화대 관계자도 “드물지만 (일반인이 잘 알지 못하는 과기특성화대 대신) 일반인들도 쉽게 아는 수도권 사립대로 옮기고 싶어하는 교수들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대와 KAIST, 포스텍으로의 이직은 조금 다르다. 세 학교 모두 국내 최정상을 다투는 대학이다. 학생과 대학원생 등 연구 인력도 우수하다. 개인 연구자 입장에서도 세 학교로의 이직을 선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학교에서 다른 과기특성화대의 유망한 교수에게 이직을 제안할 경우 진지하게 이직을 고려하지 않는 교수는 드물다. 서울시내 모 사립대 이공계열에 재직 중인 A모 교수 역시 지난해 KAIST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고 한참 고민했다. A교수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협력 연구를 많이 해야 하는 전공 특성상 공동연구자와 시설이 가까이에 있는 지금의 대학을 포기할 수 없어 결국 고사했다”고 말했다. 바꿔 이야기하면, 공동 연구 등에서 현재의 대학을 고집할 이유가 없는 교수라면 언제든 이직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동아일보 DB
동아일보 DB

대학이 공개채용을 통해 교수를 모집하고, 이들 대학에 가고자 하는 교수가 직접 지원했으며, 다른 지원자와 정당한 경쟁을 거쳐 선발되는 경우 이직을 비판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직접 국내 타대학 교수에게 임용을 제안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외에서 전도유망한 신진 학자를 발굴해 키우는 역할에 앞장서야 할 국내 대표적인 교육 및 연구기관이 상대적으로 여건이 떨어지는 신생 특성화대나 지역 대학이 발굴해 키운 교수를 골라 데려가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이들 대학과의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KAIST가 공개한 최근 3년 동안의 신임 교원 채용 현황을 보면 이미 다른 대학에서 조교수 이상 경력을 가진 교수를 주로 채용했음을 알 수 있다. KAIST에 따르면, 2017년 이후 KAIST가 새로 임용한 전임교원은 총 112명이다. 이들 가운데 직전 기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한 경우는 28.6%인 32명인 반면, 조교수 이상은 71.4%인 80명으로 나타났다. 다수가 이미 다른 곳에 자리잡고 있는 교수인 것이다.


타대학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교수를 뽑기보다 새로운 젊은 연구자를 키워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상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이 10일 4대 과기원으로부터 받은 ‘연령병 교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50대 이상 교원의 비율은 약 30%다. KAIST는 39.5%로 GIST(41.9%)와 함께 높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UNIST와 DGIST는 이 비율이 각각 16.6%와 20.9%로 나타났다. KAIST와 GIST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오래됐기 때문에 생기는 ‘착시’기도 하지만, 더 적극적으로 젊은 학자를 교수로 발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완성형’인 기존 대학 교수를 데려오면 50대 이상 교원 비율을 낮추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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