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철학 없는 기초과학의 몰락

2019.10.11 22:15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부지를 방문객에게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공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부지를 방문객에게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공

“은하도시를 꿈꾸며. 꿈이 모여 세상을 바꿉니다. (생략) 이 꿈은 우리도 세계 최고의 연구 환경을 만들어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꿈은 누구나 창의적인 생각이 샘솟는 환경에서,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을 건설하는 꿈입니다. 인류가 풀어야 할 문제를 풀고, 인류가 새로 고민해야 할 문제를 만들어 내는 곳에 대한 꿈입니다. 이 꿈이 바로 은하도시입니다. (생략) 우리에게는 열정이 있습니다. 전문적인 지식도 있습니다. 아이디어도 있고 자신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기초과학이 '퀀텀점프(Quantum Jump)'를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민동필 서울대 명예교수 ‘은하도시포럼 설립 취지’ 중

 

“이명박 대통령이 1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입지 선정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추진하겠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 대전.충남지역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2011년 2월 1일 연합뉴스 기사 중

 

과학의 발전과정에서 구조적 불평등이 과학계에 만연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평범한 과학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계에서 갖는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지금, 1%도 안되는 과학자들에게 수여되는 그 상을 바라보는 평범한 과학자들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까. 나도 저들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은, 마치 서울에서 열심히 회사원으로 일하면 강남에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처럼 멀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먼 나라 이야기라고 포기하기엔, 과학은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극소수의 엘리트에게 기초과학의 발전을 맞기는 시스템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그런 실험이 진행 중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이다. 보통과학자는 기초과학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 기괴한 프로젝트를 살펴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보통과학자의 의미를 찾아보도록 하자.

 

기초과학연구원, 아수라장이 되다


2017년 IBS의 한 연구단장은 미국에 있는 본인 소유의 집을 숙박공유 사이트인 ‘에어비앤비’에 등록하고, 미국 출장 때마다 자신의 집에 머물며 수천만원의 연구비를 횡령했다. 그는 서울대 교수였고, IBS 단장에 선발될 정도로 학문적 능력이 입증된 과학자였지만, 연구감사 결과 연구비 횡령이 드러나 결국 검찰에 피소됐다⁠.

 

지난 6월 국가과학자로 뽑힌 한 IBS연구단장은 최근 8년간 국가로부터 60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하지만 그는 연구비를 중복해서 타낸 의혹을 받고 있다. 과거 연구 성과를 마치 최근에 수행한 것처럼 허위로 꾸미고 연구비를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연구비 6억원을 20여개 업체에 미리 결제하고, 예산을 연구에 쓴 것처럼 문서를 꾸민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또 연구비를 사무실 인테리어 비용으로 써서 고가 가구를 사들이기도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말 IBS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전체 연구단 30개 중 대부분에 대한 감사를 현재 진행하고 있다.  

 

대전 유성구 IBS 본원 전경. 출처 IBS
대전 유성구 IBS 본원 전경. 출처 IBS

기초과학원의 기원 - 정치적 설계

 

출범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IBS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연구관리시스템이 애초에 잘못된 설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초과학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던 IBS는 연구단장 한 명에게 1년에 100억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연구단을 이끌고 있다. 현재 IBS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표류하는 내부적 요인은, IBS가 연구단장에게 기관장급의 권한을 주고, 이들이 막강한 권력으로 휘하 연구원들을 장악하게 만든데 있다. 이들 연구단장의 권한은 해당 분야에서는 거의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밉보인 연구원은 해당 분야에서 일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아니면, 단장과 연구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다. 한국에서 소수의 과학자에게 최고의 권위와 권력을 주고, 그들을 견제할 시스템을 만들지 않은 설계는, 한국의 과학기술정책 입안자들이 얼마나 과학에 무지한지를 단편적으로 드러낸다. 권위주의는 기초과학에 독이다. 

 

한국 과학기술 정책은 현장에 무지한 정치인과 관료들이 난도질해 놓은 혼돈의 역사다. 기초과학연구원 (IBS)의 출범은 처음부터 불안했다. 박정희 시대, 대통령은 미국 유학파 출신 공학자 그룹인 파이클럽을 내세워 과학을 정치에 완벽하게 종속시켜버렸다⁠. 당시 한국에 필요했던 학문은 기초과학이 아니라 산업기반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술개발이었고, 과학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데 제격인 화려한 꽃이었다. 그렇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설립됐고, 한국의 과학은 과학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독특한 경로를 따라 발전하게 된다. 한국 과학기술 정책의 특징은 철저히 국가주도형이라는 데 있다. 과학기술정책은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연구보다는 행정에 능한 정치과학자 그룹의 주도로 설계되어 왔으며, 그 방향은 언제나 하향식이었다. 정치에 종속된 한국 과학의 특징은, 정권이 바뀔때마다 정책이 크게 흔들린다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기초과학연구원은, 바로 그 박정희식 패러다임의 기조가 유지되던 시대의 작품이다. 산업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1960년대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현장을 전혀 모르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기초과학을 다시 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해 만들어낸 괴물 같은 작품이 IBS라는 뜻이다⁠.

 

박정희가 과학기술정책에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KIST에는 여전히 박정희 동상이 서 있고⁠, 한국 과학기술계 원로들은 여전히 박정희를 과학대통령으로 칭송한다. 그 패러다임은 이렇다.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과학기술인은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정부는 그들을 관리하고 지원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과학과 기술이 언급되는 모든 곳에서, 이 패러다임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당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주도하는 행사를 검색해보자. 대부분의 행사가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4차산업혁명 등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을 과학기술인이 보필하는 형식이다. 과총만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각 대학의 총장들과 정부출연연구소의 원장들은, 어떻게 해서든 정부의 입맛에 맞는 실적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한국 과학의 발전이 아니라,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과학기술계 원로들은 학문후속세대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든 정부의 맘에 들어 공공기관장이나 국회의원이 되려고 노력하며, 이런 원로들 아래서 젊은 과학기술인은 좌절을 먼저 배우게 된다. 정치에 종속된 과학이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과학은 길을 잃고 방황한다. 왜냐하면 과학은 그런 환경에서 결코 꽃을 피울 수 없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에 신음하는 IBS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은 처음부터 정치의 권위에 종속되어 발전했고, IBS 또한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수단으로 등장한 작품이었다. 대규모의 국가적 자원을 투자할 기획이, 정치인과 각종 관료들의 이권다툼에 휴지조각이 되었고, 서로 어울리지 않는 계획이 덧붙혀져 지금과 같은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정치라는 권위에 철저히 종속된 상태로 탄생한 IBS는, 그 내부의 운영체계조차 극단적인 권위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실제로 IBS 연구단장의 권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권력이 주어지면 탈주하고 부패한다. 그것이 권력이 집중되는 곳에는 반드시 견제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현재 한국 검찰에게서 그 권력집중의 부패학을 공부하고 있다.

 

IBS에는 철학이 없다. 굳이 그 곳에 철학에 이름을 붙히자면, ‘한국식 관료주의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하다. IBS에서 연구단장보다 입김이 센 사람들은 과기부 공무원들이다. IBS는 과기부 공무원들의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곳이며, 요직의 대부분을 퇴직한 과기부 공무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정치적 권위주의가 만든 공간을, 연구현장의 주인공인 연구원이 아니라 관료들이 독차지하고 방만한 경영을 하는 연구소⁠, 권위주의와 관료주의가 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우리가 매일 신문의 정치면을 통해 목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기초과학의 꽃을 피우겠다던 IBS는, 바로 그 권위주의와 관료주의 속에서 시들고 있다. 세계 최고 기초과학연구소들의 공통점은, 연구소가 권위주의와 관료주의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IBS는 기초과학연구소가 반드시 배제해야할 두 문화를 연구소의 대표적 상품으로 내세우며 출범했다. 그런 연구소에선 기초과학이 숨쉴 수 없다.

 

참고자료

-http://scienceon.hani.co.kr/30757 에서 재인용
-李대통령 과학벨트 발언 대전충남 반발 https://www.yna.co.kr/view/AKR20110201177600063
-동아사이언스의 연재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7회~11회 참고
-http://news1.kr/articles/?3157775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296563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296863
-기초과학연구원의 비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632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76497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5910.html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1278.html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9030102101631731002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52&aid=0001330362
-http://news1.kr/articles/?3650963
-권위주의가 만연한 IBS에서 최근엔 성희롱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https://www.ytn.co.kr/_ln/0105_201908130025018052
-김근배. 과학기술입국의 해부도. 역사비평. 2008;85.
-http://scienceon.hani.co.kr/30757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6760.html
-IBS는 은하도시-과학비즈니스벨트 등 각종 정치적 이권이 걸린 사업이 혼재되어 급조된 엉뚱한 작품이었다. http://www.hellodd.com/?md=news&mt=view&pid=43890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9419
-필자의 책 《플라이룸》 1장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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