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먼 우주도 태양계와 비슷하다"는 편견 깬 외계행성

2019.10.10 11:20
오대현(해도연) 국가기상위성센터 선임연구원·과학작가
오대현(해도연) 국가기상위성센터 선임연구원·과학작가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미셸 마요르 스위스 제네바대 교수와 디디에 쿠엘로 교수는 태양계 바깥에서 태양과 닮은 별을 공전하는 행성을 최초로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95년 이뤄진 이 발견으로 과학소설 속 상상의 존재로만 등장하던 외계행성은 현대 천문학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업적에서 수상까지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하는 노벨상인 만큼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었다. 그리고 24년이 지나 드디어 때가 왔다.


외계행성 발견의 가장 큰 장애물은 관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별은 스스로 밝게 빛나지만 행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30광년 떨어진 곳에서 보면 태양과 지구의 밝기 차이는 50억 배에 이른다. 게다가 거리에 비하면 지구는 태양에 달라붙어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외계행성에 대한 논의는 16세기에도 있었고 19세기 말부터 관측이 시도됐지만 20세기가 끝날 무렵에야 발견된 것은 바로 이 관측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20세기 천문학자들에게 외계행성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도저히 발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곤란한 존재였다.


외계행성을 직접 관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현실 속에서 천문학자들은 간접적이지만 다양한 관측 방법을 고안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별의 흔들림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행성이 별 주변을 공전하면 별도 조금씩 흔들린다. 별이 흔들리면 별에서 나온 빛의 파장도 조금씩 달라지는데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다가올 때와 멀어질 때 다르게 들리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도플러 효과라고 알려진 이 현상을 이용해 별이 흔들리는 속도를 측정하면 그 별을 공전하는 행성의 존재를 알아낼 수 있다. 도플러 효과는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속도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시선속도 측정법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속도가 매우 작다는 것이다. 지구가 공전하면서 만들어내는 태양의 시선속도는 초속 수십 cm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보다 300배 무거운 목성은 초속 11m의 속도로 태양을 흔들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처음 제안된 1952년 당시의 시선속도 측정은 초속 1km를 겨우 구분할 수 있는 정확도를 보이고 있었다. 프리즘처럼 빛을 다양한 파장으로 나눠주는 분광기(分光器)라는 장비가 시선속도 측정의 핵심이었고, 이 분광기를 개선해 시선속도의 정확도를 올리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반세기 동안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진행됐다. 충분한 정확도에 이른 순간, 외계행성은 마법처럼 나타날 것이라 천문학자들은 굳게 믿었다.

 

1970년 스위스 젊은 대학원생이던 미셸 마요르는 영국 케임브리지 천문대를 방문했을 때 분광기로 별의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돼 분광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마요르는 직접 만든 분광기로 서로 공전하는 한 쌍의 별인 쌍성을 관측했다. 서로 동반성이라고 부르는 쌍성의 두 별은 질량이 조금씩 달랐는데 마요르는 분광기를 개선해 나가면서 최대한 가벼운 동반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방법으로 별보다 훨씬 가벼운 행성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2019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미셸 마요 스위스 제네바대 천문학과 교수(왼쪽)와 디디에 켈로즈 스위스 제네바대 천체물리학과 교수. 스위스 제네바대 제공
2019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미셸 마요 스위스 제네바대 천문학과 교수(왼쪽)와 디디에 켈로즈 스위스 제네바대 천체물리학과 교수. 스위스 제네바대 제공

20년이 지난 1990년 마요르 교수는 프랑스 오트프로방스 천문대에서 사용할 새로운 분광기 개발을 시작했다. 때마침 마요르의 연구실에 디디에 쿠엘로라는 대학원생이 들어왔다. 쿠엘로는 박사과정 연구의 일부로 분광기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 작업을 했다. 길어야 2년이면 끝날 거라 생각했던 이 작업은 3년이 넘게 걸렸고 결국 쿠엘로는 박사과정 연구를 여기에 바쳤다. 이때 만들고 있던 분광기에는 엘로디(Elodie)라는 이름이 붙었다.


엘로디는 1994년 망원경에 설치됐다. 이 시기는 외계행성 분야의 암흑기였다. 마요르와 쿠엘로보다 먼저 관측과 연구를 시작했던 다른 천문학자들이 외계행성은 현재 기술로 관측할 수 있는 곳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엘로디로 관측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94년 11월, 마요르와 쿠엘로는 페가수스자리 51번 별이 주기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행성이 틀림없었다. 놀라운 결과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신중해야 했다. 놀라운 발견일수록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과학계의 기본적인 신념 중 하나였다. 그들은 반 년 동안 관측과 계산을 반복하며 철저히 검증했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뒤에야 네이처에 짧은 논문을 투고했다. 공식적인 발표는 논문 공개보다 조금 이른 1995년 10월 5일 프랑스 피렌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이뤄졌다. 5분으로 예정되어 있던 발표는 45분 동안 이어졌다. 현대 천문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가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외계행성의 발견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발견한 행성 그 자체였다. 페가수스자리 51번 별의 행성 '51 Peg b(페가수스자리 51b)'는 목성보다 조금 가벼운 거대한 가스행성이었는데 공전주기가 4.2일에 불과했다. 태양계의 목성의 공전주기가 12년에 이르는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하게 빠른 공전속도였다. 별과 행성 사이의 거리는 태양과 지구 사이 거리의 20분의 1에 불과했다. 당시의 이해로는 존재할 수 없는 행성이었다. 하지만 마요르 교수와 쿠엘로 교수가 공개한 관측결과는 이 불가능한 행성이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후발주자였음에도 두 사람이 최초의 외계행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독특한 특성 덕분이었다. 행성이 무거울수록 별을 더 크게 흔들기 때문에 당시 천문학자들은 무거운 행성을 목표로 삼았고 이런 행성들은 태양계의 목성처럼 공전주기가 짧아도 수 년, 보통은 10년 이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며칠 간격으로 변하는 주기성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오히려 며칠 또는 몇 개월 단위로 평균을 내고는 했기 때문에 행성의 흔적은 도리어 묻혀 버렸다. 외계행성계의 모습이 태양계와 비슷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천문학자들의 눈을 가려버린 것이다.

 

마요르 교수와 쿠엘로 교수가 4일 만에 공전하는 51 Peg b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뛰어난 분광기를 개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정관념 없이 데이터를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51 Peg b가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각지에서 외계행성의 발견이 이어졌다. 그중 일부는 오래전에 관측한 데이터를 다시 계산해 찾아낸 것이었다. 외계행성을 발견할 수 있는 기술은 이미 갖춰져 있었고 남은 일은 그저 편견을 버리는 것뿐이었다. 

 

마이클 마이어 교수와 디디에 켈로즈 교수는 페가수스자리 51번별에서 태양을 닮은 별을 공전하는 외계행성을 처음 찾았다. 분광기 기술 개발과 함께 관측 데이터를 편견과 고정관념 없이 해석한 덕에 전에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던 대상을 찾았다. 노벨위원회 제공
마이클 마이어 교수와 디디에 켈로즈 교수는 페가수스자리 51번별에서 태양을 닮은 별을 공전하는 외계행성을 처음 찾았다. 분광기 기술 개발과 함께 관측 데이터를 편견과 고정관념 없이 해석한 덕에 전에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던 대상을 찾았다. 노벨위원회 제공

이후 외계행성 관측기술은 더 정확해지고 더 다양해졌다.  이달 9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외계행성은 4118개에 이른다. 이것조차 밤하늘의 일부 영역을 관측한 결과이며, 우리 은하 속에서도 지구에 비교적 가까운 별들만을 살핀 결과다.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별이 행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며 이는 우주에는 별보다 행성이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예상을 가능하게 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4000개가 넘는 행성 목록에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행성들이 가득하다. 어떤 행성은 표면이 마그마로 가득하고 또 어떤 행성은 수심이 수백에서 수천 km에 이르는 바다로 뒤덮여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내부가 다이아몬드로 돼 있으리라 생각되는 행성도 있다. 이 놀라운 다양성 속에는 태양과 비슷한 별을 공전하는 지구를 닮은 행성도 있고 앞으로 더 많이 발견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외계행성에 생태계가 존재하는지 확인할 기술이 없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외계행성의 생명 역시 본격적인 관측의 영역으로 들어올 것이다. 태양계 행성에서 생명을 찾지 못하더라도 실망할 이유는 없다. 태양계에는 고작 여덟 개의 행성이 있지만, 태양계 밖에는 수천억 개의 행성이 있다.


외계행성의 발견은 태양계의 역사도 다시 썼다. 태양계에서 행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던 수많은 유력한 가설들이 모두 뒤집히며 처음부터 새롭게 연구됐다. 그렇게 밝혀진 태양계의 역사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과격하고 역동적이었다. 그렇게 태양계의 행성들 역시 외계행성의 수많은 다양성 중 일부에 포함됐다.


천문학은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장 오래된 과학 분야 중 하나지만, 외계행성 천문학의 역사는 30년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작이 된 마요르와 쿠엘로의 위대한 발견은 우리가 우주를 올려보는 시선, 그리고 우주 속 우리를 내려다 보는 시선 모두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들이 받은 노벨상의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