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우주 구조 연구의 설계자, 제임스 피블스

2019.10.09 11:20
송용선 한국천문연구원 이론천문센터장
송용선 한국천문연구원 이론천문센터장

우주론에 관한 학술 콘퍼런스에 참가하다보면 인상적인 상황을 종종 마주치곤 한다. 인상적인 강연과 훌륭한 아이디어,  콘퍼런스의 매력적인 분위기가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사실만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는 사례도 있다. 

 

2002년 미국 산타바바라에서 열린 '우주론 미래의 패러다임'이라는 콘퍼런스가 그런 사례다. 복도의 한쪽 끝에서 과학 역사책의 한 페이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노 앨런 펜지아스를 목격했다. 펜지아스는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 받아 1964년 노벨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것이 허블의 발견한 우주팽창과 함께 현대우주론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같은 시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는 로버트 디케가 이끌던 또 다른 우주배경복사 연구가 있었다. 제임스 피블은 당시 이 연구그룹에 주니어 멤버로 참여하고 있었다. 만약 펜지아스와 윌슨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디케의 연구팀이 그것을 발견했을 것이고, 노벨상의 주인공은 바뀌었을 것이다. 디케는 당시 “일생일대의 특종(big-gest scoop)”이었다고 평가하며 이 순간을 아쉬워했다.

 

펜지아스와 윌슨이 발견한 것이 우주배경복사라는 사실은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제임스 피블스가 참여한 연구팀의 해석으로 밝혀졌다. 그 덕분에 단순한 노이즈로 묻혀 버릴 수 있었던 위대한 발견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나는 그 콘퍼런스에서 역사 속의 두 주인공이 한 공간에서 담소를 나누는 것을 봤다. 피블스에게는 자신에게 다가왔던 노벨상이 비켜갔던 사건이었지만, 저 두 연구자가 아니었으면 우주배경복사 발견은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우주론은 물리학과 천문학의 융합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피블스는 이 두 가지 상이한 학문이 어떤 방식으로 융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입자물리학에서 알려진 표준모형이 어떤 방식으로 우주팽창 과정에서 구현되는지 밝힌 연구, 우주의 시초에서 우주배경복사에 이르는 물리적 과정에 대한 연구, 그리고 암흑물질 및 암흑에너지 연구 등에서 피블스는 현대물리학의 이론들이 우주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구체적으로 밝혔다.

 

유럽우주국(ESA)의 플랭크 위성은 4년 반에 걸쳐 관측한 우주배경복사 데이터를 영상화해 지도로 만들어 2013년 공개했다. 미세한 온도차(비등방성)를 분석하면 우주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고 구조도 파악할 수 있다. ESA 제공
유럽우주국(ESA)의 플랭크 위성은 4년 반에 걸쳐 관측한 우주배경복사 데이터를 영상화해 지도로 만들어 2013년 공개했다. 미세한 온도차(비등방성)를 분석하면 우주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고 구조도 파악할 수 있다. ESA 제공

하지만 필자는 피블스의 가장 큰 업적이 우주 거대 구조 연구를 설계한 것이고 본다. 피블스가 우주거대구조에 대한 이론을 기초한 것은 1970년대다. 우주거대구조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수백만 개 은하의 위치 혹은 모양을 정밀하게 관측해야 하고, 광자 하나 하나를 모아 증폭해서 신호를 재구성하는 믿을 수 없는 기술의 발전도 필요하다. 1970년대에는 이러한 기술은 공상과학에 불과했다. 

 

우주 거대 구조는 우주물질의 비균질 지도를 의미한다. 우주의 시초에는 주변과 십만 분의 일 정도가 차이가 나는 작은 비균질이 성장했는데, 이것이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은하 등 천체의 기초가 된 우주물질이 됐다. 이 물질이 이루는 거대구조의 규모는 빛이 수백만 혹은 수천만 년을 가야 하는 거리만큼 크다. 또 밀도의 차이는 있지만 눈에 보이는 천체 현상도 아니다. 피블스가 연구할 1970년 당시 아무도 이 주제에 주목하지 않았던 이유다.

 

하지만 피블스는 당시 우주 거대 구조가 가진 우주론적 가치를 알아봤다. 그는 우주의 시초와 암흑물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주 거대 구조 이론 및 관측 연구가 미래에 이뤄져야 한다고 예견했다.

 

그는 우주 거대 구조의 씨앗이 생성되는 과정과 진화하는 선형 과정을 이론적으로 연구해, 초기 미세 요동이 어떻게 은하의 형성과 관련이 있는지 설명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피블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미세 요동을 관측하기 위한 방법론도 제시했다. 우주배경복사 지도에 남아 있는 초기 미세 요동의 형성과정을 근거로 우주비등방 현상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론이 필요한지, 그리고 현재 우주까지 이르는 우주 거대 구조의 진화과정이 어떤 방법으로 관측될 수 있는지를 밝혔다. 

 

그림1) 한눈에 들여다본 우주의 역사. 원점이 초기 우주 형성의 순간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우주가 점점 나팔처럼 넓어진다. 노벨상위원회 제공
그림1) 한눈에 들여다본 우주의 역사. 원점이 초기 우주 형성의 순간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우주가 점점 나팔처럼 넓어진다. 노벨상위원회 제공

피블스가 주로 활동하던 1970년대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20년 후에는 비등방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되었고, 30년이 지난 후에는 수백만 개의 은하의 위치가 정확하게 관측되어 암흑물질 및 암흑에너지 정체규명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피블스는 이러한 관측을 어떤 방식으로 분석해 이론모형을 검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도 연구하는데, 그가 도입한 자료분석 통계법은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고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수상된 노벨 물리학상을 보면, 그 분야에 있어서의 공헌보다는 구체적인 발견에 비중을 높게 두고 있다. 세상의 모든 우주론자들이 교과서로 배우고 있는 피블스지만, 1960년대에 한 번 비껴간 우주배경복사라는 기회를 제외하고는 그가 노벨상에 접근했던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우주론 분야에서 수상 후보 리스트에 피블스는 없었다. 하지만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경향이라는 관점을 떠난다면, 우주론 분야에서 피블스에게 최고의 영예를 수여해야 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내 마음 속에는 피블스는 우주론의 교과서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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