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질병] 치매의 수수께끼

2019.10.06 06:00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확인한 영상이다. 미국국립보건원(NIH) 제공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확인한 영상이다. 미국국립보건원(NIH) 제공

사실 많은 노인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바로 치매, 그중에서도 알츠하이머병이다. 서구화된 사회에서 가장 큰 공공보건적 위협은 물론 심혈관계 질환이지만, 알츠하이머병도 만만치 않다. 사망률은 심혈관계 질환의 7분의 1에 불과하지만,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동안 겪는 삶의 질 하락은 비견할 병이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치매는 인류 역사와 같이해온 역사가 깊은 병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화에 따른 정신적 퇴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며, 정신은 점점 열등해지므로 노인은 책임지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 중 최소 일곱 명이 치매를 앓은 것으로 추정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 등장하는 리어왕도 치매를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조선의 왕 영조도 치매를 앓았다는 주장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치매. 늙으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숙명일까? 단지 노화에 의한 결과라면 왜 어떤 사람은 일찍 치매를 경험하고, 어떤 사람은 백 살이 넘어도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일까? 운동 여부나 학력 수준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식생활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전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치매를 앓고, 노벨상 수상자도 치매를 앓는다. 좋다는 음식만 골라 먹은 로마의 황제와 조선의 왕도 치매에 걸렸다. 치매는 도대체 왜 걸리는 것일까? 


1993년 이런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찾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아포지단백 엡실론 4 유전자의 네 가지 대립 유전자가 발견된 것이다. 

알츠하이머 박사

 

알츠하이머 박사(Aloiz Alzheimer,1864-1915)와 그의 첫 환자인 어거스트 데터(Auguste Deter). 위키피디아 제공
알츠하이머 박사(Aloiz Alzheimer,1864-1915)와 그의 첫 환자인 어거스트 데터(Auguste Deter). 위키피디아 제공

조현병의 원래 이름은 정신분열병이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몇 년 전에 바꾼 것인데, 정신분열병이 가진 심각한 사회적 편견이 개명의 이유 중 하나였다. 일본도 우리나라보다 몇 년 전에 정신분열병을 통합실조증으로 바꾸기도 했었다. 사실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편견이 쉽게 사라질리는 없다. 영미권에서는 조현병, 즉 스키조프레니아(schizophrenia)라는 이름을 바꾸지 않았지만, 한국이나 일본보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은 훨씬 덜하다. 


사실 스키조프레니아도 조현병의 첫 이름은 아니었다. 원래 이름은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였다. 정신과 의사 에밀 클레펠린이 1899년에 붙인 이름이다. 이전에 제대로 분류되어 있지 않던 증상군을 찾아내서 새로 이름을 붙였다. 정신분열병이라는 이름은 1908년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오이겐 블로일러이 붙인 것이다. 물론 편견을 줄이려는 목적은 아니었지만. 


에밀 클레펠린은 프랑크푸르트 정신병원에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다. 1880년대 무렵, 여덟 살 젊은 전도유망한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를 만나게 되었다. 클레펠린은 알츠하이머의 멘토이자 동료가 되었다. 그들은 조발성 치매 환자를 돌보고 연구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01년 알츠하이머는 한 여성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오거스트 데터

 

“이름은 무엇인가요?”
“오거스트.”
“성은 무엇인가요?”
“오거스트.”
“남편은 이름은 무엇인가요?”
“오거스트… 일거에요.”
“남편 이름도?”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결혼을 했습니까?”
“아. 잘 모르겠어요.”
“지금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여기죠. 아님 어디든. 바로 지금 여기요. 저를 안 좋게 생각하지 말아요.”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거기에서 살거에요.”
“당신이 누워있는 침대는 어디에 있나요?”
“어디 있어야 하는데요?”
 
알츠하이머 박사가 만난 여성은 50세의 여성이던 오거스트 데터다. 기억을 잃고 망상을 보이면서 밤새 돌아다니는 등의 증상이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철도노동자였던 남편, 칼 데터는 아내를 더 이상 돌볼 수 없었다. 슬픈 마음으로 정신병원에 방문하였는데, 그녀를 진료한 의사가 바로 알츠하이머 박사였다. 


5년 후 오거스트 데터는 죽었다. 알츠하이머 박사는 그녀의 뇌를 부검하여 몇 가지 특징적인 소견을 찾아냈다. 하지만 과연 새로운 질병을 찾아낸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연구 결과를 클레펠린에게 보여주었고, 클레펠린은 지금까지 분류되지 않았던 새로운 질병이라고 확신했다. 알츠하이머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데터의 뇌에 일어난 일

 

1911년 알츠하이머 박사의 신경섬유 엉킴(neurofibrillary tangles) 스케치.
1911년 알츠하이머 박사의 신경섬유 엉킴(neurofibrillary tangles) 스케치.

처음에는 알츠하이머병이 노인성 치매의 한 아종일 것으로 생각했다. 조발성 치매도 물론 노인성 치매의 한 아종인데, 20대 초반부터 발생하는 것에 비해서 45~65세에 발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늙어서 걸리는 치매와 알츠하이머병을 다르게 생각하는 의사도 있었다.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조발성 치매는 노인성 치매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름도 바뀌어서 정신분열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45~65세에 발병하는 알츠하이머병은 노인성 치매와 본질적인 차이가 없었다. 노인성 치매가 조금 일찍 발병한 것이었다. 


오거스트 데터의 뇌를 부검한 알츠하이머 박사는 아주 흥미로운 소견을 관찰했다. 뇌의 회백질 부분에 단백질이 침착된 덩어리가 보인 것이다. 1892년 프랑스의 병리학자 폴 블로크와 루마니아의 신경과 의사 게오르그 마린스쿠가 발견한 소견과 같았다. 우리 입 속에는 방선균(actinomyces)이라는 상재균이 살고 있다. 정상적인 세균총인데, 세균과 곰팡이의 중간 정도되는 종이다. 평소에는 문제가 안되는데 치아를 뽑거나 하면 어쩌다가 병을 일으키곤 한다. 그때 결정화된 괴사조직이 생기는데, 뇌에서 발견된 침착물이 이와 모양이 비슷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결정 괴사(druse necrosis)라고 불렀다. 알츠하이머가 이러한 소견이 치매와 관련된다는 것을 밝힌 후, 1911년 폴란드의 신경과 의사 테오필 심초키츠가 노인성 플라그(senile plaque)라는 이름을 붙였다. 


뉴런의 시냅스에는 아밀로이드 전구 단백질(APP)라는 것이 모여 있는데, 세포막을 왔다 갔다 한다. 이 단백질의 한쪽에는 Aβ 펩타이드가 있다. 그런데 이 Aβ가 APP에서 떨어져 나가면 몇몇 효소가 분해를 시작한다. 이때 부서진 조각을 흔히 아밀로이트 베타라고 부른다. 시냅스 외부에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이면 뉴런의 연결에 미묘한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너무 많이 일어나면 곤란해진다. 
데터의 뇌에서 일어난 두 번째 변화는 바로 신경섬유 엉킴(Neurofibrillary tangles)으로 알려진 현상이다. 흔히 타우 단백질로 알려진 미세소관 관련 단백질에 과인산화가 일어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타우 단백질의 타우는 그리스 문자 T를 말한다. 세포 내 미세소관을 안정화시키는 단백질로 알려져 있다. 미세소관이란 튜브모양으로 생긴 중합체다. 세포의 이동에 관여하는데, 진핵 세포의 섬모나 편모도 미세소관의 연장이다. 세포의 골격을 유지하고 유전자 발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과인산화된 타우가 쌓이면 뉴런에 변성이 일어난다. 뉴런의 기능이 떨어지고 심지어 죽기도 한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이 치매에 걸린 사람의 뇌(아래)와 걸리지 않은 사람의 뇌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왼쪽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오른쪽은 신경세포 안의 타우 단백질을 측정한 영상이며 붉은색일수록 양이 많은 것이다. 양쪽 모두 치매 환자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이 치매에 걸린 사람의 뇌(아래)와 걸리지 않은 사람의 뇌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왼쪽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오른쪽은 신경세포 안의 타우 단백질을 측정한 영상이며 붉은색일수록 양이 많은 것이다. 양쪽 모두 치매 환자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치매의 미스터리

 

처음에는 약간의 기억 상실이 일어난다. 그래서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한다. 점점 악화되면서 기억 상실이 심각해진다. 단지 가까운 사람의 이름을 잊거나 최근 상식에 어두워지는 것을 넘어서서 중요한 판단을 그르치곤 한다. 사용하는 어휘가 감소하고 행동도 줄어든다. 그래서 우울증과 혼동하는 때도 있다. 


결국,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른다. 길을 잃고 배회하기도 하고 가족의 이름을 잊기도 한다. 옷을 입거나 세수를 하는 등의 기본적인 활동도 안 되다가 점점 침대에 누워지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식사도 하지 못하게 된다. 평균 11년 정도 지나면 사망한다. 


워낙 심각한 질병이므로 천문학적인 연구비가 동원되어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아직 원인도 모르고, 치료 방법도 없다. 진행을 더디게 하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별별 가설이 다 제안되었다. 아세틸콜린을 합성하지 못해서 생긴다는 가설부터 타우 가설, 아밀로이드 가설, 감염 가설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정설은 없다. 심지어 알루미늄이 침착되어서 그렇다는 주장이 한동안 인기를 끌기도 했다. 공연히 쿠킹포일이 퇴출당하고 양은 냄비가 버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기각된 가설이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중년 후반부터 발병하기 시작하므로 진화적인 견지에서 보면 이미 유전자 풀에서 제거되었어야 하는 상태다. 물론 젊은 시절에 생기는 병에 비해 선택압은 약하지만, 증상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높은 빈도로 유지되기 어렵다. 가족이나 친지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은 세대 간 정보 전달을 위해 수명이 길어졌다. 그런데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노인은 자신이 쌓아온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없다. 인간의 진화적 경향과 반대되는 현상인데도 높은 빈도로 관찰되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포지단백의 진화

 

약 4억 년 전 아포지단백(apolipoprotein)이 나타났다. 수많은 육상 동물 그리고 해양 척추동물에서 같은 단백질이 관찰되는 이유다. 어류가 진화하기 이전부터 진화한 단백질인데, 지방 대사에 관여한다. 지방 혹은 지용성 비타민, 콜레스테롤을 혈류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주로 간에서 합성하는데, 뇌와 신장, 비장 등에 풍부하게 존재한다. 뉴런은 지방이 많은 조직이므로 뇌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약 750만 년 전 아포지단백의 세 가지 변이가 나타났다. 각각 엡실론 2, 3, 4(E2, E3, E4)라고 부른다. 750만 년 전이면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이 아직 종분화하기 이전인데, 아마도 인류가 공통 조상으로부터 나뉘면서 비슷한 시기에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19번째 염색체의 긴 팔에 있는 유전자다. 처음으로 나타난 대립 유전자는 E4였다. 이후 몇몇 아미노산 순서의 변이가 일어났지만, 기능의 차이는 없었는데, 그러다가 트레오닌이 아르지닌으로 바뀌면서 기능 변화가 일어났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진 이후, 인간과 데니소반인이 갈라지기 이전 어느 무렵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약 22만 년 전 APOE4 유전자의 112번째 아미노산 아르지닌이 시스테인으로 바뀌면서 E3가 나타났다. 다시 8만 년 전, APOE3 유전자의 158번째 아미노산의 아르지닌이 시스테인으로 바뀌면서 E2가 나타났다. 


그런데 E4 변이형을 가진 사람은 알츠하이머 치매에 잘 걸린다. E4 대립유전자를 가진 코카서스인 혹은 아시아인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서 75세 무렵 알츠하이머병을 앓을 가능성이 무려 10~30배 높다. 실제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환자의 약 절반이 E4 대립유전자를 하나 이상 가지고 있다. 반대로 E2 변이형을 가진 사람은 알츠하이머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유전형에 따라서 표현형이 바뀌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E4 변이형을 가진 사람이 심각한 알츠하이머병에 잘 걸린다면 유전자 풀에서 점점 사라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코카서스인의 경우 그 빈도는 대략 14%에 달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다음 편 미리 보기┃치매의 민족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한국인의 경우 APOE E4 변이형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1997년 조사에 의하면 대략 0.1 남짓이었다. 일본인도 거의 비슷하다. 아시아인은 일부 원주민을 제외하면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다. 유럽으로 가면 조금 다른데, 북유럽의 스웨덴이나 핀란드, 덴마크 인은 약 0.2 수준으로 올라간다. 영국인과 프랑스인은 아시아인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인데, 예외적으로 그리스인이나 샤르데냐인은 약 0.05 수준으로 낮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경우 빈도가 점점 높아진다. 0.2를 훌쩍 넘는 부족도 있다. 호주의 애버리지니나 폴리네시아로 가면 0.25를 넘고, 파푸아뉴기니의 경우 0.35를 넘는다. 아프리카로 가면 더 올라간다. 에티오피아인이나 모로코인은 별로 높지 않지만, 나이지리아인은 0.3, 코이산족은 0.37, 심지어 피그미족은 0.4에 이른다. 


그렇다면 알츠하이머 치매의 발병률은 '아시아→유럽→아메리카→오세아니아→아프리카' 순으로 나타날까. 아프리카 일부 부족은 온통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로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세계 최고 수준의 E4 변이형을 가진 나이지리아에서 알츠하이머병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필자소개 
박한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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