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좋은 기억에 빠지면 오히려 슬퍼진다

2019.10.05 06:00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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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울증이라고 하면 슬픔의 정도가 심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슬픔에서 쉽게 ‘회복되지 못하는 것’이 더 우울증의 중요한 증상일 수 있다고 한다. 실컷 슬퍼하고 난 후 털어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후자의 경우 우울증을 겪을 위험이 더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기쁜 일 뿐 아니라 슬프고 좌절스러운 일도 자주 겪는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이 슬픈 일 말고 다른 주제로 생각을 돌리거나 즐거웠던 기억을 끄집어내보는 등 다양한 정서 조절을 시도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슬픈 일을 겪은 후에는 평소보다도 즐거웠던 기억을 쉽게 떠올리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우울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경향을 보이지 않는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마치 우울감을 지속시키려는 듯, 우울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기분을 좋게 만드려는 시도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힌트를 주는 한 가지 발견은 우울증을 보이는 사람들은 즐거웠던 기억을 애써 떠올린다고 해도 기분이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쥬타 조르만(Jutta Joormann) 연구팀은 우울증상을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 과거에 우울증을 겪었느나 지금은 괜찮은 사람들, 우울증상을 겪은 적이 없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세 집단을 대상으로 슬픈 영상을 보여주어 슬픈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후 각 집단에서 사람들을 반씩 나누어 한 그룹은 낱말풀이 과제 같은 ‘주의 돌리기(distraction)’ 과제를 시키고 다른 그룹은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 결과 우선 기분과 상관 없는 전혀 다른 과제를 함으로써 주의를 돌리는 전략은 우울증 집단, 우울증을 겪었다 회복한 집단, 우울증을 겪은 적이 없었던 집단 모두에게 있어 효과적으로 슬픔을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과거의 즐거웠던 기분을 떠올리는 것은 우울증을 겪은 적이 없었던 사람들에게서만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을 겪었으나 회복한 사람들은 즐거운 일을 떠올리기 전과 후의 슬픈 기분에서 차이가 없었다. 현재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즐거운 일을 떠올린 후 되려 슬픈 감정이 더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슬픈 일을 겪고 난 후 즐거운 일을 떠올리면 기분이 나아지기는 커녕 되려 더 슬퍼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로 연구자들은 우울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의 일과 그 일의 의미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곱씹기나 후회가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과거의 일을 떠올리고 ‘그때 참 좋았지~’ 정도로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왜 아닐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같은 일련의 평가적이고 부정적인 사고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좋았던 과거에 비해 지금의 초라함이 크게 느껴지는 ‘대조효과’가 나타나고 기분이 나아지기는 커녕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우울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기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 과거 등 ‘나’와 관련된 생각을 전반적으로 훨씬 많이 한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었다. 시선과 생각의 초점을 나로부터 돌려 외부로 돌리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일로 인해 두고두고 기분이 나쁘다면 내 삶에는 다른 이벤트들도 많은데 너무 그 일만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깐 STOP을 외쳐보는 것도 좋겠다. 

 

 

참고자료

-Joormann, J., Siemer, M., & Gotlib, I. H. (2007). Mood regulation in depression: Differential effects of distraction and recall of happy memories on sad mood. Journal of Abnormal Psychology, 116, 484-490.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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