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리포트] 2100년 현존 언어 절반 이상이 사라진다

2019.10.05 08:00
2010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소멸 위기 언어 목록 포함된 제주어. 제주어는 노령 인구만 드물게 사용하는 4단계 ‘치명적 위험’ 언어로 꼽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2010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소멸 위기 언어 목록 포함된 제주어. 제주어는 노령 인구만 드물게 사용하는 4단계 ‘치명적 위험’ 언어로 꼽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난 2016년 유엔 총회는 올해를 ‘세계 토착 언어의 해’로 정했다. 전세계 언어 약 6700개 중 40%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유엔은 토착 언어의 해를 정해 사람들이 언어를 살릴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토착 언어가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서 한국처럼 국민이 거의 다 동일한 언어를 쓰는 국가의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다양한 부족 문화가 자리잡고 있던 동남아시아나 미국, 아프리카, 캐나다, 호주 등에선 문제가 심각하다. 다양한 부족 수만큼 다양하던 토착 언어 사용자들이 영어처럼 많이 쓰이는 언어만 쓰면서 토착 언어가 설 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영어를 쓰는 사람이 늘어나며 토착 언어가 빠르게 사라졌다. 


한편 전쟁이나 자연재해 때문에 토착 언어가 사라지기도 한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 때문에 섬이 폐허가 되자 원주민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힌디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결국 토착 언어는 사라졌다. 유네스코는 “2100년까지 언어 중 50%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발표했다.

 

어린이과학동아DB
어린이과학동아DB

 

한국에도 소멸 위기 토착 언어가 있다


놀랍게도 한국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중세 한국어와 비슷한 제주어가 사라지고 있다. 제주어는 2010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소멸 위기 언어 목록에 포함되면서 노령 인구만 드물게 사용하는 4단계 ‘치명적 위험’ 언어로 꼽혔다.


그 해 실제로 제주대 국어문화원이 제주도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이었던 120개 어휘 가운데 90% 이상이 알고 있는 단어는 ‘아방(아빠)’(92.3%), ‘어멍(엄마)’(91.5%), ‘하르방(할아버지)’(90.5%), ‘할망(할머니)’(90.3%) 등 4개뿐이었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강계순(71) 씨는 “학창시절 학교에서 모두 표준어로 가르치고, 선생님들도 제주어를 안 쓰려고 노력했다”며 “그래서 지금은 여든 이상의 어른들 중에서도 시골 분들만 제주어를 유창하게 말씀하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일부 제주 학생들은 제주어를 지키기 위해 직접 나섰다. 한국문화의집의 ‘삼삼오오 청년 인문실험’에 참여하는 ‘요망진 아이들’ 팀이다. 요망진 아이들은 ‘야, 너도 제주어 할 수 있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제주어 살리기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계 전문 용어에서도 우리말이 사라지고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언어가 사라지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는 원주민이 토착 언어 대신 많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주로 사용하면서 점차 토착 언어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처음 스마트폰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스마트폰을 가리키는 우리말이 없었다. 그래서 순우리말(=토박이말) 대신 외국어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런 현상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은 바로 전문 용어다. 본래 자신의 언어에 없던 새로운 전문 용어나 학술 용어 등을 쉽게 외국어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면 외국어와 외래어에 익숙해져 점차 일상에서도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점점 외국어에 의존하게 되고, 토박이말을 쓰지 않게 된다. 이런 변화 과정을 두고 토박이말이 ‘주변화’ 되었다고 한다. 중심에 있던 언어가 주변으로 밀려났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015년 국립국어원에서 국민 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모르는 말이 나와 곤란했던 경험이 있는지 묻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은 모두 62%였다. 응답자 가운데(복수 응답 가능) 59.8%의 사람들은 ‘전문 용어’의 뜻을 몰라 어려움을 겪었다고 대답했다. 또  47.9%는 외래어·외국어, 43.5%는 유행어나 신조어, 41.9%는 어려운 한자어를 몰라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전문 용어에 먼저 한자나 영어 등 외래어가 섞이면 다시 토박이말로 돌아오기 어렵다. 전문가들이 일단 외래어가 섞인 전문 용어에 익숙해지면 이를 다시 토박이말로 바꿔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한해부학회 용어위원으로 의학 용어를 다듬고 있는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어렵고 낯선 한자 의학 용어 대신 쉬운 우리말 의학 용어를 쓰는 건 전문가인 의사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과학 용어에는 특히 일본에서 유래한 일본식 한자 표기가 많다. 물리 용어를 토박이말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최무영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가령 '광자'는 '빛알'로, '참(Charm) 쿼크'는 '맵시쿼크'로 바꿔 쓰고 있다. 그는 "예를 들어 물리학 용어인 '회절'은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데, 1995년 물리학 용어집 작업 중 '에돌이'라는 우리말 표현이 잘 들어맞는단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우리말로 과학용어를 만들면 직관적으로 뜻을 파악할 수 있다"며 "당장은 불편할 수 있겠지만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 성인인 학자들이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말 과학 용어를 만들어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어 이름 없는 자생생물이 무려 1만 3138종

 

국내에 살고 있지만 한국어 이름이 없는 생물도 무척 많다. 자생생물 4만 9027종 가운데 27%에 해당하는 1만 3138종은 아직 한국어 이름이 없다. 이에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서는 2017년부터 ‘국가 생물종 국·영명 부여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생물 전문가들이 모여 한국어 이름이 없는 생물들에게 한글 이름을 지어주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도 국립생물자원관은 생물 3426종에게 새로운 한국어 이름을 붙였다고 발표했다 특히 국제적 멸종위기종, 위해우려종, 병해충 등이면서 한국어 이름이 없는 생물에게 집중했다. 누구나 생물의 이름을 잘 기억하고, 생물 보호에 힘쓰거나 병해를 예방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그 가운데 우리가 잘 알던 생물도 있다. 190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포경업자 ‘요한 브라이드’가 처음 발견한 ‘브라이드고래’는 멸치와 함께 이동하는 특성을 고려해 ‘멸치고래’라고 이름 붙여졌다. 또 영어 이름을 그대로 읽던 ‘로후’는 ‘큰입술잉어’로, 학명을 그대로 읽던 ‘알로바테스 페모라리스’는 ‘넓적다리독개구리’로 바뀌었다.


유정선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과장은 “매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모아 한국어 이름을 짓고 있다”며 “생물의 모양과 사는 곳, 발견된 곳, 맨 처음 발견한 사람 등 고려할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해양수산부도 지난해 한글날, ‘해양 생물에 우리말 이름 지어주기’라는 대국민 온라인 투표를 열었다. 이 조사를 위해 우선 생물 전문가들이 모여 낯선 외래어 이름을 가진 생물 12종과 우리말 이름 후보를 정했다. 그뒤 2주 동안 온라인에서 우리말 이름 국민 투표를 받았다. 그 결과 1325명의 일반인과 198명의 전문가들이 바다 생물 12종의 우리말 이름을 정했다. 예를 들어 낯선 외래어가 섞여 있던 ‘시보르티접시조개’는 모양을 유추할 수 있는 이름인 ‘나비접시조개’로 바뀌는 식이었다. 


유은원 해양수산부 해양수산생명과장은 “앞으로도 국민들이 바다 생물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글 이름을 지어주는 사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15살에 우리말 지키기 위해 앱 개발했어요”

 

테사 에릭슨
테사 에릭슨

테사 에릭슨은 캐나다 원주민인 다켈 부족에서 태어났다. 에릭슨은 지금도 캐나다에 살고 있는 10대 소녀다. 다켈 부족이 쓰는 언어는 영어에 밀려 이제 거의 쓰이지 않는다. 에릭슨은 학생들이 쉽게 자신의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휴대 전화 앱(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Q 다켈 부족의 언어는 누가, 얼마나 쓰이고 있나
지역 학교에서는 부모 세대부터 다켈 부족 언어를 쓰는 게 금지돼 왔다. 학교에서는 강제로 영어를 쓰도록 했다. 그러면서 다켈 부족 언어를 쓰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됐고, 다음 세대로 언어가 이어지지 못했다. 

 

Q 왜 앱을 개발할 생각을 했나 
‘듀오링고’라는 앱으로 프랑스어를 공부한 적이 있다. 여기서 아이디어가 시작됐다. 지금 개발하고 있는 앱 안에는 다켈 부족 어른들이 말하는 영상도 넣으려고 생각 중이다. 사용자들이 실제 다켈 부족의 말을 들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출시할 예정이다.

 

Q 한국에서도 사투리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다켈 부족 언어에도 사투리가 있다. 나카즈들리 다켈 부족과 레들리 다켈 부족이 쓰는 언어가 조금 다르다. 하지만 이런 사투리의 다양성을 지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두 부족의 사투리가 다른 이유를 보면 두 부족이 과거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투리를 지키는 건 문화 유산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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