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 부총장 "대기업들, NIH 태도 버려야"

2019.09.30 16:24
무디 셰브스 와이즈만연구소 부총장 겸 기술지주회사 예다 회장. 생산기술연구원 제공.
무디 셰브스 와이즈만연구소 부총장 겸 기술지주회사 예다 회장. 생산기술연구원 제공.

“한국은 일본 수출 규제에 맞설만한 저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기존에 존재했던 기술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그쳤습니다. 삼성, LG 등 대기업이 성장한 방식입니다. 아직도 기초과학을 바탕으로 한 혁신 성과는 부족합니다.”

 

무디 셰브스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 부총장 겸 와이즈만연구소 설립 기술지주회사 ‘예다’ 회장을 30일 오전 서울 시내에서 만났다. 이스라엘어로 ‘지식’을 의미하는 예다는 기초과학 연구 중심의 와이즈만연구소가 개발한 기술을 사업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기술지주회사로 60년 전인 지난 1959년 설립됐다. 60년 동안 기술사업화를 진행하며 쌓은 노하우가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셰브스 회장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과 희소금속 재생 기술에 관한 공동연구를 진행중이다. 10월 12일 설립 30주년을 맞는 생기원과의 연구협력 및 국내 연구기관·대학 연구진과의 협업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최근 몇 년간 1년에 한두 차례 방한하는 그는 와이즈만연구소가 지닌 과학기술을 한국 기관 및 기업에 접목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셰브스 회장은 “한국이 최근 기초과학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관심을 집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초과학을 기반으로 한 이노베이션 성과는 부족하다”며 “장기적으로 기초과학에 집중하면 일본과 맞설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셰브스 회장은 또 기초과학 투자는 예산 증액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좋은 연구자와 연구지원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산도 분명 중요하지만 예산을 많이 투입한다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셰브스 회장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는 이공계 박사 학위를 받고 난 젊은 연구자들에게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 ‘포스트닥터’ 연수를 보낸다. 새로운 연구 트렌드를 접하게 한 뒤 다시 이스라엘로 복귀시키고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 껏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는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면 기존에 없었던 과학적 사실을 발견한다”며 “이같은 발견에서 한두개라도 가치있는 발견을 찾아내 사업화에 성공한다면 혁신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 설립된 이스라엘의 자율주행 시스템 기업 ‘모빌아이’다. 모빌아이는 2017년 약 17조원에 인텔에 인수되며 주목받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연구기관과의 장벽에 대해서도 뼈있는 견해를 내놨다.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수출 규제 관련 국내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이 연구개발(R&D)을 통해 기술을 개발해도 신뢰성·안정성 등을 이유로 대기업이 구매하지 않는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NIH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국립보건원을 보통 떠올리지만 기술사업화 분야에서는 다른 말로 쓰입니다. ‘Not Invented Here’라는 말의 약자로 최근 트렌드를 반영합니다. 대기업 내부에서 개발된 기술만을 보지 말고 중소기업이나 연구기관, 대학 등 외부에서 개발된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셰브스 회장은 ‘NIH’의 적합한 사례로 제약바이오 분야를 거론했다. 화이자 등 글로벌 다국적 제약사들이 중소 벤처나 대학, 연구기관이 개발한 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개방형 이노베이션’ 전략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는 대기업의 최고경영진들의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소재나 부품장비 분야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트렌드라는 것이다. 

 

다음은 셰브스 회장과의 일문일답. 

생산기술연구원 제공.
생산기술연구원 제공.

한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서기 위해선 기초과학에 지속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기초과학을 적극적으로 육성한다고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와이스만연구소는 연구자들에게 학술적으로 완전한 자유를 부여합니다. 과학적으로 중요한 발견은 우연히 이뤄지며 대부분 자율적인 연구에 의해 이뤄집니다. 한국은 이스라엘과 달리 글로벌 대기업들이 있지만 여전히 기초과학을 기반으로 한 혁신은 부족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시스템의 관점을 바꾸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청소년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체계가 유지되고 있는데 초중고 학생들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질문하는 것입니다. 우수한 대학을 가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는 기초과학에 있어서 이노베이션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문제인 이유는.

 

“대학에서는 아이디어를 내고 문제를 직면하고 이를 해결하는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면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들이 충분히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미 생산 기반이나 연구 기반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청년 고용률 지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이런 상황만 봐도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는 게 교육시스템의 목표일 수는 없지 않을까요.”

 

소재·부품·장비 관련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에코시스템 구축을 위한 방안은.

 

“한국의 소재·부품·장비 산업 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최근 트렌드는 대기업이 ‘Not Invented Here’, 이른바 NIH를 고수하는 태도를 버려야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제약바이오 분야가 그렇습니다. 대기업 외부에도 쓸만한 R&D 성과가 많다는 데 눈을 뜨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하지 못한 외부 R&D를 무조건 배제하는 전략으로는 살아남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비단 제약바이오 분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소재·부품·장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외부 기술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하려면 대기업의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연구기관과 대학에 대한 기술사업화를 독려하고 있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아이템 선정과 기관과 적절한 이익 공유 형태 등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 예다 회장으로서 한국에 건넬 조언은. 

 

“예다도 60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한국도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술사업화 담당자가 전문가여야 합니다. 과학을 알아야 하고 산업도 알아야 하고 산업계 경험도 필요합니다. 어떤 기술을 사업화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계약이 필요합니다. 기술사업화 계약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가장 적합한 비유를 들자면 결혼과 유사합니다. 다양한 변수들이 장기적으로 생깁니다. 기술이전으로 수익이 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단계별로 또다른 기업들이 플레이어로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예다는 기술사업화를 활발하게 추진하지만 기초과학 연구와는 확실히 분리합니다. 연구자에게 창업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연구자가 창업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연구자들은 기업을 설립하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연구자들이 삼성과 같은 대기업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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