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아프리카돼지열병 어떻게 한국까지 들어왔을까

2019.09.24 14:00
지난 17일 경기 파주의 한 농장에서 폐사한 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확진됐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17일 경기 파주의 한 농장에서 폐사한 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확진됐다. 연합뉴스 제공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은 상당한 기간(영원하지는 않더라도) 동물 질병 가운데 가장 심각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더크 파이퍼, 홍콩시립대 교수

 

동아프리카에서 혹멧돼지와 강멧돼지를 포함한 자연 숙주의 감염은 감염된 동물에 바이러스가 계속 남아있음에도 별다른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는 오랜 적응을 통해 바이러스나 숙주가 희생되지 않으면서도 바이러스가 유지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린다 딕슨 등, ‘바이러스 연구’ 2019년 6월호에 실은 논문에서

 

지난 17일 경기도 파주의 한 돼지농장에서 처음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이하 ASF) 확진 결과가 나왔다. 다음날 연천에서도 폐사한 돼지의 시료에서 ASF바이러스(이하 ASFV)가 검출됐다. 지난해 8월 중국에 ASF가 상륙했다는 발표 이후 노심초사하며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고 위안했지만 결국 방어막이 뚫렸다.

 

아직 감염경로는 오리무중이지만 발생한 지역으로 봤을 때 이미 ASF가 퍼진 것으로 알려진 북한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은 멧돼지나 돼지의 배설물이나 분비물, 또는 사체가 부패할 때 흘러나온 체액이 묻은 흙이 지난 태풍의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 실려 휴전선을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두 지역 인근 농장의 돼지 수만 마리를 재빨리 묻었고 그 뒤 의심 사례 두 건은 음성으로 나와 일단 한시름을 놓았다. 그러나 23일 김포에서 세 번재, 24일 파주에서 네 번째 확진 판정이 나와 상황이 심상치 않다.

 

10여 년 전부터 아프리카돼지열병 소식이 간헐적으로 들려왔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중국 상륙 소식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중국은 돼지고기 최대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 중국에서 사육되는 돼지는 4억4000만 마리에 이른다. 이는 지구촌에서 사육되는 돼지 10억 마리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약 1000만 마리를 키우고 있다.

 

중국 당국이 공개하지 않아 구체적인 피해는 알 수 없지만 지난 5월 한 뉴스에 따르면 100만 마리 넘게 살처분됐다고 한다. 또 1년 전에 비해 사육두수가 4000만 마리나 줄었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도 수그러들 기미가 없어 피해가 어디에 이를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지난 2월 19일 첫 발병이 보고된 베트남의 경우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져 7월 4일 현재 300만 마리가 넘는 돼지가 매몰됐다. 베트남 역사상 최악의 가축 질병이다.

 

치사율 100%로 걸리면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질병이 어쩌다가 중국에 상륙했고 1년 만에 우리나라까지 들어오게 됐을까.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는 이름을 보면 아프리카가 진원지로 보인다. 중국에 침투한 바이러스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지난 2007년 동아프리카에서 조지아로 건너간 바이러스가 퍼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ASF라는 이름과 이번 전파경로만 보고 아프리카를 탓할 수만은 없다. 오늘날 ASF 창궐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300년 전 유럽(포르투갈) 어쩌면 600년 전 중국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아프리카돼지열병바이러스(ASFV)의 자연 숙주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혹멧돼지(사진)와 강멧돼지, 숲멧돼지와 이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연진드기다. 이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별다를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위키피디아 제공
아프리카돼지열병바이러스(ASFV)의 자연 숙주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혹멧돼지(사진)와 강멧돼지, 숲멧돼지와 이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연진드기다. 이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별다를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위키피디아 제공

 

자연계 숙주는 증상 없어   

 

ASFV는 사람이나 소는 감염시키지 못하고 돼지(swine)만 감염시킨다. 좀 더 엄밀히 하면 멧돼짓과(科) 동물만 감염시킨다.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헷갈리지 않고 이해하려면 멧돼짓과(suidae)의 분류학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므로 간단히 소개한다. 

 

분류학은 ‘계문강목과속종’ 일곱 단계로 나뉜다. 예를 들어 사람과 소, 돼지는 동물계, 척삭동물문, 포유강까지 동행하고 목(目)부터 갈라진다. 사람은 영장목이고 소와 돼지는 우제목이다. 다음 단계에서 소와 돼지도 제 갈 길을 간다. 소는 솟과이고 돼지는 멧돼짓과다. 

 

멧돼짓과는 6속 17종으로 이뤄져 있다. 인류가 수천 년 전 가축화한 건 이 가운데 멧돼지속(Sus)에 속하는 한 종이다(학명 Sus scrofa). 앞으로 멧돼지(boar)는 야생 Sus scrofa, 돼지(pig)는 가축화한 Sus scrofa를 가리킨다.

 

나머지 다섯 속 가운데 세 가지가 중요하다. 혹멧돼지속(Phacochoerus)과 강멧돼지속(Potamochoerus), 숲멧돼지속(Hylohoerus)이다. 멧돼지속이 유라시아와 아시아에 분포하는 것과 달리 이들 세 속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만 분포한다. 

 

ASFV는 원래 연진드기(soft tick)와 이들 세 멧돼지속 동물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돼지를 키웠지만 ASF를 몰랐던 이유다.

 

사실 ASF는 아프리카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혹멧돼지와 강멧돼지, 숲멧돼지는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새끼들이 일시적으로 바이러스혈증을 보이는 정도다. 이때 연진드기가 피를 빨면 바이러스가 옮는다. 이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안정된 생태계를 이루게 진화했다는 말이다.

 

 

명나라 원정대에 실려 아프리카로

 

명나라 정화 원정대를 묘사한 17세기 목판화. 케냐를 방문했을 때 원정대가 배 안에서 키우던 돼지 몇 마리를 줬다는 기록이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명나라 정화 원정대를 묘사한 17세기 목판화. 케냐를 방문했을 때 원정대가 배 안에서 키우던 돼지 몇 마리를 줬다는 기록이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지난 1년 동안 중국을 패닉상태로 몰고 간 ASF를 두고 중국인들은 아프리카를 원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럴 수도 없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돼지를 소개한 게 바로 600여 년 전 중국인들이기 때문이다.

 

1405년 명나라 영락제의 총애를 받던 환관 정화는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 대선단을 꾸리고 총지휘관이 돼 원정을 떠났다. 1433년 7차 원정까지 정화는 남아시아와 아라비아를 거쳐 동아프리카까지 30여 개 나라를 방문해 명나라의 위세를 떨쳤다. 선단은 수백 척 규모였고 가장 큰 배는 길이가 100미터도 넘었다고 하니 콜럼버스나 마젤란의 탐험대는 소꿉장난인 셈이다.

 

원정대에는 돼지들도 포함돼 있었다. 냉동설비가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살아있는 식재료인 셈이다. 아마도 음식 찌꺼기를 먹였을 것이다. 원정대는 방문한 나라들에서 다양한 선물을 받았고 이 가운데는 이국적인 동물들도 포함돼 있었다. 케냐를 방문했을 때도 여러 동물을 선물로 받았을 것이고 그에 대한 답례로 배에서 키우던 돼지 몇 마리를 주지 않았을까. 

 

이렇게 해서 돼지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처음 발을 디뎠다. 당시 케냐 사람들이 이 돼지들을 가축으로 키웠을 수도 있고 일부는 숲으로 들어가 멧돼지가 됐을지도 모른다. 케냐 남부의 와타족(Waata)은 16세기 이래 ‘돼지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왈랸쿠루(Walyankuru)로도 불린다. 그렇다면 정화가 선물한 돼지들의 후손이 ASFV와 첫 만남을 갖지 않았을까? 

 

한편 유럽 열강의 식민지 개척이 시작되면서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포르투갈 사람들이 동아프리카에 돼지를 들여왔다. 오늘날 모잠비크에서 시작해 말라위, 탄자니아, 케냐로 돼지들이 퍼져 나갔다. 그 뒤 아프리카가 유럽 열강의 식민지가 되면서 사하라 사막 이남 전역에 돼지가 분포하게 됐다. 따라서 이 과정의 어는 시점에서 돼지가 ASFV와 처음 만났을 수도 있다.

 

2013년 학술지 ‘플로스 원’에는 이 물음에 답하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아마도 16~17세기 포르투갈 사람들이 들여온 돼지가 첫 만남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15세기 초 정화 원정대가 선물한 돼지의 후손이 주인공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프랑스와 마다가스카르 공동연구자들은 지난 70년 동안 채집한 ASFV 균주 수백 가지의 몇몇 유전자 서열을 비교분석한 결과 이들의 공동조상이 1712년 살았던 바이러스임을 밝혔다. 물론 1712년이라는 연도는 돌연변이 속도를 추정해 통계적으로 분석해 산출한 결과(평균값)일 뿐이지만 아무튼 300여 년 전이라는 말이다. 

 

이는 바이러스가 이 무렵 돼지(또는 이들이 야생화한 멧돼지)와 첫 만남을 가졌고(따라서 포르투칼에서 온 돼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 뒤 폭발적인 증식속도 덕분에 빠른 진화를 거쳐 오늘날 다양한 유형이 존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ASFV의 치사율이 100%라고 하지만 이는 다 그런 게 아니라 몇몇 유형에 해당하는 얘기로 심지어 돼지에게 미미한 증상을 유발할 뿐인 유형도 있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까지 퍼진 바이러스는 독한 녀석이라는 게 문제이지만.

 

 

첫 번째 파도는 잘 넘겼지만...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토착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두 차례 아프리카를 벗어났다. 올해 5월호에 발표된 논문에 실린 지도라서 한국은 아직 깨끗하다. '항바이러스 연구' 제공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토착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두 차례 아프리카를 벗어났다. 올해 5월호에 발표된 논문에 실린 지도라서 한국은 아직 깨끗하다. '항바이러스 연구' 제공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돼지를 키우기 시작한 게 길게 잡으면 600년 짧게 잡아도 300년이지만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몇 마리 키우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설사 ASF도 죽더라도 지금처럼 크게 번질 가능성은 희박했을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말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에서 우역(牛疫)이 퍼져 소들이 많이 죽자 영국은 자국에서 돼지를 많이 들여와 대규모 사육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ASF가 발생한 것이다. 1907년 케냐에서 돼지들이 떼로 죽으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전염병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처음으로 인식됐고 1921년 이를 다룬 논문에서 돼지들의 증상을 바탕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는 병명을 사용했다. 그 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곳곳에서 ASF 발병 사례가 보고됐고 어느새 풍토병으로 자리 잡았다.

 

1957년 ASFV가 처음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에 진출했다. 1957년 어느 날 앙골라 루안다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의 기내식에 ASFV에 감염된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가 포함돼 있었다. 비행기는 포르투갈(!) 리스본 공항에 도착했고 음식 찌꺼기는 수거돼 인근 돼지농장으로 보내졌다. 

 

이렇게 시작된 ASF는 포르투갈뿐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등 서유럽 여러 나라에 상륙했고 대서양을 건너 쿠바와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도 방문했다. 다행히 다들 제압됐고 유일하게 이탈리아 서부의 큰 섬인 사르데냐에서만 풍토병으로 자리 잡았다.  

 

첫 번째 아프리카 탈출이 있고 50년이 지난 2007년 흑해 동부 연안의 항구도시 포티에 배 한 척이 닻을 내렸다. 동아프리카의 여러 항구를 거쳐 온 이 배에서 나온 음식 찌꺼기에 ASFV에 감염된 돼지고기가 들어있었고 그 결과 ASF가 발생했다. 

 

안 그래도 방역 시스템이 허술한 데다 곳곳이 내전 지역이라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게다가 이 지역과 동유럽의 숲에는 멧돼지가 많아 서쪽으로 향한 주된 전파경로가 됐다. 그러다 지난해 마침내 동쪽으로 한참 떨어진 중국에서 ASF가 발생했다. 아마도 ASFV에 감염된 돼지고기를 포함한 가공식품이 주범으로 보인다. 참고로 ASFV는 꽤 안정한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열을 가한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면역세포에 침투해 증식

 

그렇다면 ASFV는 어떻게 돼지에 감염해 그토록 치명적인 증상을 일으키는 걸까. 먼저 ASFV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역시 돼지에게 치명적인 구제역이나 인플루엔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들은 게놈 크기가 염기 1만 개 내외이고 유전자 개수도 10여 개 불과한 소형이다. 반면 ASFV는 게놈 크기가 17만~19만 염기에 이르고 유전자도 160개가 넘는 대형이다.

 

ASFV는 돼지의 단핵세포와 대식세포에 주로 침입한다. 둘 다 선천면역계의 주축이 되는 세포다. 많은 연구가 이뤄졌음에도 ASFV가 이들 세포의 어떤 수용체를 인식해 달라붙는지는 아직 밝히지 못했다. 수용체를 모르니 바이러스가 달라붙는 걸 방해하는 약물(치료제)을 설계할 수도 없다.

 

면역세포에 침투한 바이러스는 다양한 경로로 면역세포의 신호체계를 교란시키며 증식한다. 면역세포가 적이 침투했다는 신호를 보내지 못하게 하고 자살(apoptosis)하려는 움직임도 차단한다. 면역세포가 살아있어야 바이러스가 증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0% 치사율은 아마도 바이러스가 숙주의 과도한 면역반응,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을 유발한 결과일 것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격이다. 2009년 신종플루가 돌 때 젊은 사람들이 꽤 희생된 것도 사이토카인 폭풍 때문이다.

 

 

혹멧돼지는 감염돼도 멀쩡한 이유

 

혹멧돼지가 돼지에게는 치명적인 ASFV에 감염돼도 별 증상이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RELA 단백질의 아미노산 차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RELA 유전자의 구조로 박스가 엑손, 선이 인트론이다. 마지막 엑손이 지정하는 아미노산 서열을 보면 돼지(위)와 혹멧돼지(아래)에서 세 곳(각각 빨간색과 녹색)이 다르다.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혹멧돼지가 돼지에게는 치명적인 ASFV에 감염돼도 별 증상이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RELA 단백질의 아미노산 차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RELA 유전자의 구조로 박스가 엑손, 선이 인트론이다. 마지막 엑손이 지정하는 아미노산 서열을 보면 돼지(위)와 혹멧돼지(아래)에서 세 곳(각각 빨간색과 녹색)이 다르다.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영국 로슬린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지난 2011년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학술지 ‘바이러스학 저널’에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ASFV가 돼지나 멧돼지(멧돼지속)에는 치명적인 반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사는 혹멧돼지와 강멧돼지, 숲멧돼지에는 이렇다 할 증상도 유발하지 못하는 이유가 면역반응의 차이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했다.

 

연구자들은 돼지와 혹멧돼지의 면역반응 관련 유전자들을 비교분석했고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RELA 유전자의 서열이 달라 그 산물인 단백질의 아미노산 세 곳의 종류가 달랐다. 흥미롭게도 돼지의 RELA 단백질은 활성이 높았지만 혹멧돼지의 RELA 단백질은 활성이 낮았다. RELA 단백질의 활성 차이가 ASFV에 감염됐을 때 돼지와 혹멧돼지가 보이는 증상의 극단적인 차이를 적어도 일부는 설명한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유전자편집 기술로 RELA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혹멧돼지 것으로 바꾼 돼지를 만드는 시도를 해 성공했다고 2016년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유전자편집 돼지를 대상으로 ASFV 감염 실험을 진행했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백신, 아무리 빨라도 3~4년 걸려

 

설사 ASFV에 감염된 유전자편집 돼지가 혹멧돼지처럼 증상이 없거나 최소한 치명적인 증상을 보이지 않더라도 실제 적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유전자편집이 GM(유전자변형)은 아니라는 주장이 널리 지지받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거부감이 있고 RELA 유전자가 바뀌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다른 변화들도 면밀히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ASF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고 현재 백신 연구가 한창이다. 백신은 크게 사백신과 생백신으로 나뉜다. ASF의 경우 바이러스 일부를 백신으로 쓰는 사백신은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러스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조각으로는 제대로 된 항체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성이 약한 균주나 병원성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고장낸 바이러스로 만드는 생백신은 꽤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안전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면이 많아 실제 백신이 나오려면 적어도 3~4년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유라시아를 휩쓸고 있는 ASF는 철저한 방역이 사실상 유일한 대응책이라는 말이다.

 


※필자소개

강석기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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