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쓴 찰스 다윈도 진로 때문에 고민했다는데

2019.09.12 06:00

 

일러스트 정은우
일러스트 정은우

“사냥질, 개, 쥐잡기에나 관심이 있는 너는 가족과 네 자신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될 거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얼마나 상처가 클까? 실제로 이 말은 1827년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의학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고 낙향한 18세 청년에게 퍼부었던 성공한 의사 아버지의 악담이었다. 그런데 그 청년은 30년 후에 인류 지성사의 변곡점을 만든 대(大)학자가 된다. 바로 찰스 로버트 다윈이 주인공이다.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1828년 다윈은 꾸역꾸역 케임브리지대에 신학을 공부하러 간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해야 영국을 떠나 생명이 우글대는 열대림을 탐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는 우여곡절 끝에 비글호에 승선하고 꿈에 그리던 남아메리카로 향한다.

 

비글호 탐험과 갈라파고스의 핀치

 

 

다윈의 핀치새 중 한 종인 지오스피자 프로Geospiza propinqua -S. Taylor
다윈의 핀치새 중 한 종인 지오스피자 프로Geospiza propinqua -S. Taylor

4년 10개월의 비글호 탐험은 다윈의 일생에서 가장 특별하고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 경험이 얼마나 심원했던지, 그 이후로 그는 영국 밖을 단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고, 그것을 정리하고 이론화하는 데 여생을 다 보냈을 정도였다. 


다윈은 정박지에서 열대림과 해안을 누비며 온갖 동식물을 관찰하고 채집했다. 영국에서만 있었다면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을 지진도 경험했다. 생태, 화석 그리고 지층에 대한 이런 경험을 통해 다윈은 서서히 아주 긴 기간 동안 벌어질지도 모르는 종의 진화에 눈을 떴다.  


이런 맥락에서 갈라파고스 군도의 탐험은 비글호 항해의 절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총 16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이 군도에서는 아마존과 같이 기기묘묘한 생명체들이 우글대고 있진 않았다. 즉, 다양성 자체가 특출한 공간은 아니었다. 


대신, 다양성의 ‘원인’이 흘깃 보이는 곳이었다. 예컨대 거대 거북의 등껍질 형태는 맨눈으로도 구별이 가능할 정도로 섬마다 서로 달랐다. 또한 전체적으로는 비슷하지만 부리 모양이 조금씩 다른 새들이 섬 주위에 여기저기 서식하고 있었다. 그는 궁금했다. ‘왜 이런 넓지 않은 공간에 이런 식의 다양성이 생기게 됐을까?’ 


하지만 당시에 다윈은 이 위대한 질문에 매료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그는 그 섬들에 분포해있는 각종 새의 표본들을 만들기는 했으나, 어디서 어느 새를 채집했는지조차 기록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쯤 후에 영국 최고의 조류학자로부터 뜻밖의 결과를 전해들은 뒤에야 당시의 자료가 범상치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 물론 당시에도 다윈은 부리가 크고 뭉뚝한 새는 큰 씨앗을 쉽게 깨뜨리는 데 유리하고, 뾰족한 집게 모양의 부리를 가진 새는 작고 깊이 숨어있는 씨를 끄집어내는 데 유리하다는 사실을 눈치채긴 했었다. 하지만 별 의심 없이 이들이 크게 상관없는 다른 종이라고 짐작했다. 핀치(finch·되새)와 굴뚝새, 검은지빠귀인 줄 안 것이다. 


하지만 그 조류학자의 대답은 달랐다. 새들이 같은 핀치류로, 단지 특정 먹이를 먹기에 적합하도록 굴뚝새나 검은지빠귀의 부리와 비슷한 부리를 갖게 됐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 순간 다윈의 머리 속에 한편의 ‘위험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핀치 종들이 따로따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남아메리카 대륙에 서식하는 한 종의 공통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생명이 전지전능한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선택, 환경의 힘으로 인해 적응돼왔을 수 있다는 생각. 1837년부터 다윈은 자신의 비밀 노트 한 구석에 한 종이 새로운 종으로 가지치기를 해나가는 계통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종의 기원’의 탄생과 자연 선택 이론

 

찰스 다윈: 진화론의 대부 찰스 다윈. (사진제공 오클랜드박물관)
찰스 다윈: 진화론의 대부 찰스 다윈. (사진제공 오클랜드박물관)

1838년 다윈은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가 남긴 ‘인구론’을 정독한다. 교구 목사이면서 영국 최초의 역사및정치경제학 교수이기도 한 맬서스는 그 책에서 인구 증가가 식량 공급을 초과해서 1인당 식량이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과 달리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맬서스는 인구 과잉으로 인한 인류의 멸망가능성을 보임으로써 계몽주의적 낙관론을 비판하려 했다. 그는 누가 죽고 누가 사는가를 결정하는 ‘생존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윈은 암울한 현실과 미래가 짙게 배어나오는 이 책에서 오히려 생명 진화의 큰 힘을 발견한다. 


다윈은 1844년까지 이런 생각을 차근차근 정리해나갔다. 1842년에는 35쪽짜리 개요를 만들었고, 1844년에는 230쪽 짜리 완전한 논문을 작성해 놓았다. 그리고 15년 동안 숙성을 시킨 후, 1859년 11월 24일, 드디어 ‘종의 기원: 자연 선택을 통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 또는 생존 투쟁에서 선호된 품종의 보존에 관하여’ 초판을 출간한다.    


흔히들 동서양의 고전에 대해 기대하는 바와는 달리, ‘종의 기원’의 처음 시작은 결코 우아하지 않다. 오히려 동물 육종사와 사육사가 인공 교배를 통해 비둘기와 같이 자신들이 원하는 개체를 어떤 방식으로 얻어내는지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다윈이 살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에서는 자신만의 비둘기를 교배해 기르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 후 다윈은 “인간이 체계적인 선택과 무의식적인 선택의 방법을 통해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실제로도 그랬다면, 하물며 자연이 그리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라며 인공 선택과 대비되는 ‘자연 선택’ 개념을 제시한다. 


사실 ‘종이 변한다’는 생각 자체는 당시만 해도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다윈의 독창성은 자연 선택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제시함으로써 생명체가 왜 이토록 다양하고 정교한가를 설명하려 했다는 점이다. 


자연 선택 이론은 과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 중 하나지만, 동시에 초등학생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한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가 있어난다는 얘기다.  


첫째, 모든 생명체는 실제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자손을 낳는다. 둘째, 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들이라도 저마다 다른 형질을 가진다. 셋째, 특정 형질을 가진 개체가 다른 개체들에 비해 환경에 더 적합하다. 넷째, 그 형질 중 적어도 일부는 자손에게 전달된다.


이 네 가지 조건들이 만족되면, 그리고 오직 그럴 경우에만, 어떤 개체군 내 특정 형질의 빈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게 된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종도 생겨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제시했던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 핵심이다. 종의 기원 초고를 먼저 읽어 본 토머스 헉슬리는 “이 쉬운 자연 선택을 생각해내지 못했다니,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했다고.

 

‘다윈 혁명’과 모두를 위한 종의 기원


그동안 신의 섭리나 신비로만 얼버무렸던 자연 세계의 정교한 기능들이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 덕택으로 드디어 지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다윈 이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말이다. 


자, 잎맥과 비슷하게 금이 가 있는 넓적한 등판을 가진 사마귀가 그저 신기할 뿐인가? 아니다. 이제는 누구나 자연 선택 이론으로 그러한 정교함을 지적으로 충실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종의 기원이 없었다면 인류는 자연 세계의 정교함에 대해서 완전히 문맹이었을 게다.  


다윈의 또 다른 중요한 기여는 생명이 마치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듯 진화한다는 사실을 밝혀준 데 있었다. 우리는 이를 ‘생명의 나무’라고 부른다. 그는 존재를 일렬로 줄 세우려는 모든 전통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의 ‘생명의 나무’에서는 침팬지와 인간이 600만 년 전쯤에 어떤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사촌지간으로 인식된다. 즉, 침팬지도, 인간도, 개미도, 고래도, 심지어 난초와 박테리아도 몇몇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각자의 환경에서 나름대로 적응해 살고 있는 생명체들이다. 공통 조상과 생명의 나무 개념에서는 우월하거나 열등한 종 따윈 없다. 이것이 바로 160년 전 다윈이 인류의 오만함에 끼얹은 도발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이를 ‘다윈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을 주장함으로써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입증했다면, 삼 세기가 지난 뒤 다윈은 그 지구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생각마저 앗아갔다. 이제 인간은 철저히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됐다. 그래서 다윈의 종의 기원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더불어 인류사에 혁명을 몰고 온 책으로 꼽힌다. 그는 이미 과학자의 범주를 넘어 혁명적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종의 기원 이후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은 역동적인 발전을 거듭해 현재는 모든 생물학의 패러다임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현대 생물학자들 사이에 여전히 치열한 논쟁이 진행 중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부의 생산적 논쟁이지 창조와 진화의 논쟁 같이 쓸모없는 소모전은 아니다. 이 생산적 논의를 이끌어내는 원전이 바로 종의 기원이다. 


인류의 지성사를 흔들어 놓은 이 과학고전에 수식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이번에 필자가 직접 우리말로 읽기 쉽게 번역을 했으니 한번 도전해보시라. 

 

 

관련기사

과학동아 9월호, 진화학자가 번역한 ‘종의 기원’  자연 선택 이론은 왜 ‘혁명’이 됐을까 

 

'종의 기원' 강연 신청하기(9월 16일까지 접수) http://bitly.kr/kRmbQ8P

 

※필자소개

장대익. 서울대에서 과학사및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학원 시절 진화생물학에 매료돼 진화이론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사회성의 진화에 관심이 많다. ‘다윈의 식탁’ ‘울트라 소셜’ 등 진화학 분야의 전공서와 대중서를 집필했다. dja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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