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하면 뭐하나'…비정규직 출신 연구자에게 주홍글씨 새긴 출연연

2019.09.04 13:37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해 인천국제공항공사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동아일보DB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해 인천국제공항공사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동아일보DB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지난해 12월 기간제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실시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따른 것으로 당시 총 2088명의 기간제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일부 출연연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자들에게 기존에는 쓰지 않던 새 직함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 전환에 반발하는 기존 정규직 직원들을 무마하기 위해 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직원들을 구별하는 직함을 쓰게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출연연 관계자들 사이에선 정규직 전환자에겐 사실상 '낙인'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록 직함에 불과하지만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자와 기존 정규직 간에 차이를 둬 연구기관 내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연구 직무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기술 연구원’이란 직함을 정규직 전환자들에게 붙였다. 이는 기존에 사용하던 ‘선임 연구원’이나 ‘책임 연구원’과 달리 이전에는 없었던 직함이다. 한의학연구원에서 연구 직무를 하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한의학연구원 관계자는 “연구 직무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자와 기존 정규직들 간의 행정적 구분을 위해 기술 연구원이란 직함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자를 행정적으로 따로 관리하기 위해 기술 연구원이란 직함을 새롭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자와 기존 정규직 연구원이 임금이나 복지의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위한 행정적 구분인건지 의문이 제기된다. 오히려 기존 정규직 연구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정규직 전환자들에게 영원히 낙인을 찍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한의학연구원에 행정적 구분이 의미하는 바와 목적을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연구원 측은 ‘기술 연구원’에서 '기술'이라는 말을 빼고 ‘연구원’이란 직함만 기사에 써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한의학연 내부에서는 기술 연구원이란 직함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 한의학연 관계자는 “’기술’을 빼고 기존 연구원에서 쓰던 직함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원장에게 요구하고 있다”며 “다른 연구기관은 기술 연구원이란 말을 쓰지 않아 생소하고 애매하다”고 말했다.  


한국화학연구원과 한국전기연구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 연구원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전문원, 연구지원원이라는 직함을 신설한 것으로 확인됐다. 두 연구원들도 마찬가지로 새 직함을 신설한 이유를 행정적 구분을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 연구소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경우 정규직 전환자들을 기존에 연구원에서 사용하던 직함을 쓰도록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출연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면서 숫자 올리기에만 급급하고 실제 잘 정착됐는지, 남아있는 차별 요소가 있는지 후속으로 관리하지 않은데서 비롯됐다. 출연연들도 주무부처의 요구를 들어주기에만 급급해 기존 정규직 구성원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자 결국 차별적 요소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막상 출연연을 직접 관할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상황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회 관계자는 "출연연들이 정규직 전환자들을 대상으로 다른 직함을 쓰고 있는 파악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출연연 관계자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자에 대한 실질적인 불이익은 없지만 기존 연구원들의 반발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자와 구분하기 위해 직함을 새롭게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