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강국 되려면 연구 데이터베이스부터 충실히 쌓아야

2019.09.04 10:27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만식 울산지역본부장. 동아사이언스DB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만식 울산지역본부장. 동아사이언스DB

지난달 7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하면서 양국 무역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한국은 소재 국산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생기원 울산지역본부는 일본이 처음 규제물질로 지정한 3개 품목 중 하나인 고순도 불화수소 개발을 맡아 소재 국산화를 주도하고 있다. 연구를 주도할 이만식 울산지역본부장과 류영복 선임연구원을 만나 불화수소 개발 계획과 한일 무역갈등이 미칠 영향에 대해 들었다.

 

Q. ‘반도체 에칭용 99.995% 이상의 고순도 무수불화수소(AHF) 생산기술 및 플랜트 실증화’ 연구가 과기부 소재부품 개발 사업에 포함됐다. 어떤 연구인가.

에칭가스라 불리는 불화수소는 반도체 생산 공정 중 세정과 에칭 공정에 사용된다. 공정 조건에 따라 다양한 순도가 활용된다. 불화수소의 순도가 99.995% 이상이어야 미세화된 공정의 수율을 맞출 수 있다.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요한 소재의 정확한 이름은 고순도 무수불화수소지만 잘 알려진 불화수소라고 흔히 말한다. 

 

이번 연구는 인산을 생산하는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불화규소산을 이용해 불화수소를 생산하고 여기에서 고순도 AHF를 정제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산 제조 공정에 쓰이는 인광석은 3~4%의 불소(F)를 함유하고 있다. 불소는 인산 생산과정에서 불화규소산의 형태로 회수된다. 이를 활용해 불화수소를 만드는 개념인데 연구는 있어도 상용화 사례는 없다. 이 기술을 3년 내로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다.

 

Q. 기존 불화수소 생산기술과 달리 왜 부산물에서 만드는 방식을 택했나.

불화수소의 원료인 형석도 일본이 쉽게 손을 댈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화수소를 당장 국산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형석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 형석의 60%가 중국에서 생산되는데 일본은 광산을 보유해서 저급한 불화수소는 중국에서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오고, 이를 고순도화 하는 방식으로 물량을 생산하고 있다. 향후 고순도 불화수소를 국산화할 경우, 일본과 중국에서는 불화수소의 원료인 형석을 전략 무기화할 수 있어 수급 불안정성이 매우 높다.

 

울산에서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기업인 ㈜후성이 대표적인 예다. 후성은 이번 규제로 원료인 형석을 직접 들여와 제조 공장을 건립하려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후성 관계자에 따르면 이슈가 터지기 전까지는 협상이 잘 진행됐는데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해 협상하는 회사의 요구 조건이 굉장히 많아졌다고 한다. 불화수소를 국산화해도 원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형석 가격이 흔들리거나 수급이 불안정하면 우리도 흔들리는 구조다. 진정한 소재 국산화를 위해서는 원료 또한 국산화가 필요하다.

 

이만식 본부장이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DB
이만식 본부장이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DB

 

Q. 이것을 울산지역본부에서 하게 된 이유가 있나.

울산은 한국 최대 화학산업단지가 있다. 부산물들이 많이 나온다. 부산물들은 대개 버려지거나 돈을 줘서 폐기물로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면 희소가치가 높은 물질이 많다. 회수해서 고부가가치화 하는 동시에 규제대응에도 활용할 수 있다. 부산물이 나오는 기업이 있고 부산물을 불화수소로 바꾸는 공정을 연구할 연구소와 이를 고순도화 하려는 기업이 있다. 가치사슬이 이미 구축된 것이다.

 

생기원 울산지역본부는 울산 화학산업단지 내 기업들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불화수소를 얻어낼 만한 부산물이 발생하는 공정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 잇따른 불화수소 유출 사고에 대처하기 위한 재난 대응 장비를 개발해 온 ㈜엔코아네트웍스와 함께한다. 재난 대응 기술은 불화수소를 탐지하고 회수하는 기술로 즉시 이어질 수 있다.

 

Q. 고순도의 불화수소 생산기술 개발을 기업에 바로 맡기면 되지 않나.

불화수소에는 비소와 같은 불순물들이 많다. 비소는 불화수소와 반응성이 높아 분리해내기 매우 어렵다. 일반적인 분리 기술을 포함해 갖가지 공정들을 추가해야 분리할 수 있다. 여기에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최근 언론에 소개된 99.999999999% 기술이 초음파를 이용해 분리하는 기술이던데 실험실 수준이지 상용화급으로 간 건 아니었다.

 

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어렵진 않다. 다만 이를 구성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 불화수소는 내식성이 강한 하스텔로이드나 모넬 재질을 공정에 활용해야 한다. 또 반응성이 강하기 때문에 장비의 금속 재질(강)이 녹으면서 조금씩 불화수소의 순도가 떨어지게 된다. 일반 재질로는 담을 수가 없다. 불화수소를 조금씩 들여오는 이유도 저장과 이송 과정에서 조금씩 순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재질들이 고가라는 점이다.

 

안전 문제도 있다. 불화수소는 산이다. 누출되면 인체에 매우 위험한 물질이 된다. 인체 대부분이 수분이라 불화수소에 누출되면 바로 뼈로 향한다. 불화수소는 입자가 너무 작아 전달력이 빠르다. 그러다 보니 설비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서 만들어야 한다. 단가가 더 높아지는 것이다.

 

초고순도를 분석하는 장비도 필수다. 중소기업은 당연히 없다. 원래는 공급 기업에서 분석 장비를 갖춰야겠지만 장비가 매우 비싸다. 대기업에서 불화수소를 사준다는 확신 없이는 구매할 수가 없다.

 

불화수소 연구는 공정 소재 선정부터 안전성까지 다방면에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실험실 규모의 연구 개발은 투자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에 맡길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후 실증화와 상용화는 투자비를 고려해 기업이 주도하면 된다.

 

 

Q.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앞으로 한국 산업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보나.

울산은 일본과의 교역에서 무역수지 흑자를 보는 지역이다. 이번 규제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은 없겠지만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에서 일본 소재를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본에서 규제하는 품목 대부분이 최종 물질이 아닌 첨가제다 보니 여러 산업에 문제가 생긴다. 지난달 23일 울산시 주재로 열린 긴급 대책회의에서 일본 수출 규제를 우려하는 지역기업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 기업은 ‘처음에 판단했을 때는 크게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조사를 하다 보니 일본에 100% 의존하는 첨가제들이 상당 부분 있더라’고 말했다.

 

촉매는 의존도가 높은 대표적인 물질이다. 불행히도 일본에서 대부분 수입한다. 촉매를 활용하는 석유화학 산업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동차나 선박에도 배기가스 제거를 위해 촉매가 들어간다. 저급 촉매는 국산화됐으나 고급 촉매에서는 밀리는 실정이다. 촉매 분야는 사실 기술격차가 없다. 연구성과만 보면 오히려 우수하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개발한 귀금속 촉매 중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가진 게 있다. 이런 기술이 한국에 많다.

 

이만식 본부장이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DB
이만식 본부장이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DB

Q. 기술이 있지만 활용되지 못한다는 건데, 왜 활용되지 못했나.

문제는 어떤 촉매를 사용하는지 노하우로만 갖고 있고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모르는 것이다. 산업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울산은 1970년대 화학산업단지가 들어왔다. 일본, 유럽, 미국으로부터 플랜트와 공정을 기술이전 받아 개발됐다. 당시에 플랜트는 뭘 쓰고 촉매는 뭘 써야 기술이전을 해 준다는 세세한 규정이 있었다. 그런 규정은 이미 기간이 만료됐지만 기존 걸 그대로 유지하려는 관습 때문에 안 바꾸고 있다.

 

생산제품의 단가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도 굳이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촉매는 제품의 원가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만 제품의 생산량과 수율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이기 때문에 제품의 경쟁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어 쉽게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촉매를 자급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는 것은 화학공업의 자립을 뜻한다. 이는 자국 내에서의 기술혁신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으로 진출을 의미하며, 일본이 중간제품만 골라 규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Q. 소재 연구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모든 부처가 한목소리로 산업에 쓰이는 모든 부품과 소재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이를 기회로 삼아 현재 국외에서 수입되고 있는 부품, 소재뿐만 아니라 모든 원료물질까지 조사를 해서 데이터베이스(DB)화 해야 한다.

 

한국에는 DB 자원이 거의 없다. 일본은 원료개발 하나 하는 데 30년이 걸리면서 관련 소재에 대한 DB가 일목요연하게 만들어진다. 한국은 연구에 짧은 기간을 쓰다 보니 소재 연구에서 트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걸 만들면 과학기술에서 가장 큰 미래 자원이 될 것이다.

 

 

Q. DB를 만들면 어떤 장점이 있나.

DB를 구축하면 수입하게 되는 이유가 딱 나온다. 소재를 수입할 때는 한국에 자원이 없는 경우, 한국에 원천기술이 없는 경우, 한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품질이 좋고 저렴한 경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앞의 첫 번째는 당장 수입해야겠지만 나머지 두 개는 역량을 집중해 따라잡으면 된다. 어떤 부분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지 보이는 것이다. 해당하는 품목별로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요즘 자주 쓰는 말인 '역할과 책임(R&R)'을 부여해 연구하면 된다.

 

DB화는 또한 일본 규제만 대응하는 게 아니다. 무역 전쟁은 일본과만 하는 게 아니다. 중국과도 할 수 있고, 다른 어떤 국가와도 할 수 있다. 이참에 소재를 DB화해서 순차별로 국산화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DB만 구축된다면 기술이 있으면서도 의존하고 있던 이번 같은 경우를 막을 수 있게 된다.

 

이때 전국에 지역 거점을 운영하고 있는 생기원도 역할을 해야 한다. 생기원은 지역의 산업을 잘 분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산업계 측에서 산업에 쓰이는 소재 자료를 국내의 전문가들에게 제공하고,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는 축적된 자료와 기술을 토대로 신기술을 개발하여 다시 산업에 제공하는 상호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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