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질병] 사르데냐섬의 비극

2019.09.01 19:20
사르데냐섬.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르데냐섬.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기원전 264년 로마는 카르타고와 지중해의 지배권을 두고 전쟁을 벌였는데, 이를 제1차 포에니 전쟁이라고 한다. 로마는 전쟁에서 승리했고, 시칠리아섬을 얻을 수 있었다. 보너스로 두 섬을 더 가지게 되었는데, 바로 코르시카섬과 사르데냐섬이다. 

 

사르데냐섬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에 있는 인구 160만 명의 섬이다. 한국에는 잘 알려진 섬은 아니지만, 지중해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9세기경에는 페니키아인의 방문이 잦아졌고, 카르타고와 로마의 통치를 받으며 여러 민족이 섞였다. 하지만 사르데냐 인은 섬사람의 자존심을 지키며 비교적 독립적인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런데 1970년대 무렵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발성 경화증 환자가 많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1955년부터 1959년 사이에는 사르데냐섬 주민 중 다발성 경화증 환자는 26명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부터 74년 사이 42명으로 늘어났고 1990년부터 1995년에는 무려 104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다발성 경화증은 전염병이 아니다. 옛 로마제국의 영토, 사르데냐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비극의 시작은 기원전 5세기 카르타고의 사르데냐 침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르타고의 침공

 

주둥이에 후각수용체가 있는 말라리아 모기. 동아일보 자료 사진
주둥이에 후각수용체가 있는 말라리아 모기.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사르데냐섬은 이탈리아반도의 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작은 섬이지만 지중해에서는 두 번째로 큰 섬인데, 시칠리아는 사실상 이탈리아반도와 붙어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가장 큰 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이 융성한 지중해의 중앙에 있다. 이런 지리적 이유로 오랜 옛날부터 부침이 많았던 지역이다. 

 

사르데냐에는 거대한 돌탑이 많이 있는데, 흥미롭게도 누가 만들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기원전 이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흔히 누라게 문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돌탑을 누라게(Nuraghe)라고 하기 때문이다. 무려 1만 개가 넘는다. 

 

누라게 문명을 건설한 민족이 누구였을까? 아직 정설은 없다. 아마도 다양한 지역에서 건너와 같이 섞이며 어울려 살았을 것이다. 중부 유럽인과 중동인, 이집트인이 이들의 조상이었을 테지만, 아직은 추정뿐이다. 이들은 섬이라는 독특한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 살았다. 

 

기원전 5세기경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카르타고가 사르데냐섬을 침공한다. 기원전 8세기경에 건국된 카르타고는 지금의 튀니지 지역을 기반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원래 페니키아 도시는 ‘티레’라는 핵심적인 도시 국가에 속해 있었지만, 카르타고는 점차 세력을 키우면서 티레로부터 독립해나간다. 그러다 바빌로니아에 의해 티레가 멸망하자 지중해 지역의 패권을 움켜쥐고 페니키아인의 중추 역할을 맡게 된다. 

 

페니키아 도시는 주로 소수의 페니키아인이 다수의 원주민을 노예로 부리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노예를 동원하여 대규모농장을 경영하고, 지중해를 발판으로 활발한 무역활동을 하였다. 또한 수시로 전쟁을 벌여 식민지를 확장해나갔다. 이런 전략은 카르타고의 발전에 아주 유리했지만, 말라리아의 전파에도 유리한 상황을 제공했다. 북부 아프리카에 기반을 둔 카르타고의 ‘모기’는 지중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사르데냐를 침공한 카르타고를 저지대에 위치한 평야를 이용하여 대규모 농장을 만들었다. 사르데냐 원주민은 하는 수 없이 고지대로 도망쳤다. 사르데냐인은 원래 주로 목축을 했는데, 이제는 가축을 키울 방법이 없었다. 고기와 젖을 먹던 시절이 끝나고, 대신 빵을 먹어야 했다. 가축이 사라지자 모기의 숙주도 사라졌다. 대규모 농경을 위해서 북아프리카 노예를 강제로 이주시켰다. 인구가 갑자기 늘어났다. 모기는 가축 대신 사람의 피를 빨기 시작했다. 

 

카르타고의 지배는 포에니 전쟁을 거치면서 끝났다. 하지만 모기는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지배자 로마의 일원이 되어 전 유럽으로 퍼졌다. 말라리아를 로마 열병(Roman fever)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로마는 결국 모기 때문에 멸망했다. 

 

사르데냐와 말라리아

 

Oxitec 제공
Oxitec 제공

아무튼, 이후로 사르데냐는 로마의 일부가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중세에는 잠시 다양한 왕국으로 분열하여 싸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탈리아의 땅이다. 

 

그러나 사르데냐는 이탈리아와 조금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사르데냐의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도 있다. 솔직히 말해서 사르데냐는 이탈리아의 한 지방이라고 하긴 여러가지로 곤란하다. 일단 언어부터 다르다. 누라직이라는 고대 샤르데냐인의 언어에 다양한 주변 언어가 유입되면서 독특한 형태의 언어를 만들어냈다. 고대 라틴어가 더해지고, 아라곤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는 스페인어가 다시 더해졌다. 이탈리아어의 방언이 아니라 독자적인 언어다. 물론 파시스트 정부의 탄압을 받으면서 지금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언어다. 


사르데냐인의 유전자도 아마 그럴 것이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융합한 결과가 지금의 사르데냐인이다. 하지만 사르데냐섬의 독특한 생태적 환경에 수천 년 간 적응하면서 샤르데냐인만의 신체적 적응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혹시 사르데냐인도 아프리카인처럼 겸상적혈구를 가지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겸상적혈구증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인류 역사에서 최소한 네 번 이상 독자적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럽의 백인은 그러한 돌연변이의 은총을 입지 못했다. 유럽인의 겸상적혈구증 빈도는 아주 낮은 편이다. 

 

그렇다면 사르데냐인은 카르타고인이 몰고 온 말라리아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기만 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수천 년에 걸친 타민족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남아있는 사르데냐인의 문화와 언어처럼, 사르데냐인의 몸도 외적의 침입에 그렇게 쉽게 굴복할 리 없었다. 
여기서 잠시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중해를 떠나 추운 북유럽으로 떠나보자. 

 

샤르코의 세 가지 증상

 

샤르코가 말하는 다발성 경화증의 세 가지 증상은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는 안구진탕, 손발 떨림을 보이는 기도진전, 말이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 전보어다. 사진제공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샤르코가 말하는 다발성 경화증의 세 가지 증상은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는 안구진탕, 손발 떨림을 보이는 기도진전, 말이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 전보어다. 사진제공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정신분석을 창시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젊은 시절에 파리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몇 달간 공부한 적이 있다. 그를 가르친 의사는 장-마틴 샤르코란 인물이다. 프로이트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샤르코는 위대한 과학자이자 의사였다. 

 

당시 유럽에는 히스테리 환자가 넘쳐났다. 신경 마비와 괴상한 행동, 경련, 실신 등을 동반하는 정신장애다. 당시에는 오직 여성만 이 병을 앓는다고 생각했다. 히스테리의 어원 자체가 ‘자궁’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자궁이 몸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장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궁이 어쩌다가 가슴으로 이동하면 히스테리가 발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자궁을 절제하는 치료를 하기도 했다. 아주 많은 여성의 자궁이 이런 ‘무식한’ 이유로 사라졌다. 


젊은 샤르코가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무려 3000명의 환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샤르코는 과학적 방법으로 무장한 젊은 의사였다. 기존의 관점을 무시하고 환자를 처음부터 다시 관찰하기 시작했다. 증례는 아주 풍부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남성 환자가 있었다. 남성은 자궁이 없기 때문에 이는 기존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샤르코는 히스테리가 자궁이 아니라, 머리에서 시작한다고 직감했다. 


히스테리만이 아니었다. 샤르코는 기존에 제대로 분류되어 있지 않던 정신장애 및 신경 장애의 정체를 보다 명확하게 규먕헤내기 시작했다. 그의 발견 중 하나가 바로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이다. 이 상태를 ‘sclerose en plaques’라고 명명했다. 뇌는 백질과 회색질로 나뉘는데, 환자의 백질에 여러 개의 반흔, 즉 아문 상처가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흔히 치아의 표면을 덮은 세균막을 플라그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플라그는 반흔이다. 즉 여러 개의 딱딱한 플라그가 뇌에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이라고 하는 것이다. 


샤르코는 '가제트 데 호피토(Gazette des hopitaux)'라는 잡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다발성 경화증이 세 가지 증상을 가진다고 했다. 이를 샤르코의 삼주징, 혹은 샤르코의 세 가지 증상(charcot’s triad)라고 한다. 바로 안구진탕, 기도진전, 전보어다. 너무 어려운 용어다. 안구진탕은 안구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빠르게 움직이는 증상을 말한다. 술을 진탕 마신 것과는 상관없다. 기도진전은 의도한 행동을 할 때 손발이 떨리는 증상을 말한다.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은데, 물컵을 집으려고 하면 덜덜 떨리는 증상이다. 전보어는 전보를 치는 것처럼 말이 부드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탁탁 끊어지는 증상을 말한다. 별 것 아닌데 의학용어로 하니까 어렵다. 영어로 하면 'nystagmus', 'intention tremor', 'telegraphic speech'라고 하는데, 역시 쉽게 와닿지 않는다. 


아무튼 샤르코의 진단 기준은 간단하면서도 아주 유용했다. 1965년까지 다발성 경화증은 샤르코의 기준을 사용해 진단했다. 지금은 좀 더 정교하고 정확한 포저(Poser) 진단 기준이나 뇌자기공명영상 검사 혹은 뇌척수액 검사를 활용한 맥도날드 진단 기준을 활용하지만, 샤르코의 기준은 여전히 임상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성 톨락의 기적


아이슬란드는 북대서양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인구 33만 명의 작은 나라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는 유명한 대성당 하들그림스키르캬(Hallgrímskirkja)가 있는데, 마치 신화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독특한 교회당이다. 그리고 그 교회 앞에는 아이슬란드의 수호성인, 성 톨락 (Saint Thorlak)의 동상이 있다. 


성 톨락은 11세기경 아이슬란드에 살았던 성직자다. 비스쿠파 사가(Biskupa saga)는 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영웅이나 전쟁, 신화를 다루는 사가와 달리 여성과 질병을 다루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비스쿠파 사가 중 ‘경련, 화상, 나쁜 맥주 그리고 신성모독’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할도라(Halldora)라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심각한 병에 걸려 자리에 드러누웠다. 걸을 수도 없었다. 겨우 앉을 수 있었는데, 팔다리는 완전히 힘을 잃어버렸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종종 심한 고통으로 괴로워했다. 많은 사람이 와서 기도해주었지만, 증상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거의 삼 년 동안 침대에 누워지내면서, 그녀는 매일매일 톨락 주교에게 서원하곤 했다.


한 이웃이 말했다. 

“만약 할도라의 병이 낫는다면 나는 톨락 주교의 신비한 힘을 믿겠네”.

모두 그의 말에 동의했다. 어느 날 한 여인의 꿈에 검은 망토를 두른 톨락 주교가 나타나서 말했다. 


“할도라에게 가서, 병이 낫고 싶다면 스칼홀트로 떠라라고 말해라”.

할도라는 소식을 듣고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수레에 실려서 스칼홀트로 떠났고, 교회 축제가 벌어지기 며칠 전에 도착했다. 그녀의 증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폴 주교가 와서 기도해주었다…(중략)… 모든 사람은 그녀가 완전히 나은 것을 보았다.”

 

유럽병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할도라의 증상은 다발성 경화증의 전형적인 경과로 보인다. 다양한 신경 증상, 그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호전과 악화로 특징지어진다. 긴 시간과 넓은 공간의 차원에서 관찰해야 하는 질병이다. 여러 신경 증상이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국소적인 증상에 집착하면 정확한 진단을 놓치기 십상이다. 경험이 적은 의사는 자칫하면 오진하기 쉽다. 


신경세포는 전기적 신호를 이용하여 정보를 전달한다. 방전이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뉴런은 수초가 감싸고 있다. 전선의 피복과 비슷한 기능이다. 그런데 이 피복이 벗겨지는 병이 바로 다발성 경화증이다. 이른바 탈수초성 질환이다. 제멋대로 방전이 일어날 테니 다양한 신경 증상이 발생한다. 감각 신경의 방전이 일어나면 이상 감각이 생기고, 운동 신경의 방전이 일어나면 몸이 마비된다. 시신경이 영향을 받으면 시력에도 문제가 생긴다. 척수 신경을 침범하면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성기능장애도 생긴다. 대뇌도 예외가 아니다. 우울증도 생기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인지장애도 생긴다. 신경세포가 담당하는 거의 모든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원인이 뭘까? 아직 원인을 모른다. 유전적인 요인이 있는 것 같지만, 환경적인 요인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단일한 유전자는 찾지 못하고 있다. 면역 반응이 관여하는 것 같지만 확실하게 그 기전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현대 의학의 발전이 눈부시다지만 사실 어떤 면에서는 몹시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다발성 경화증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발생하지 않는다. 백인, 특히 유럽계 백인이 많이 걸린다. 흑인이나 아시아인은 드물다. 평균적으로 십만 명 당 약 30명 정도 걸리는데, 아프리카에서는 유병률이 십만 명 당 0.5명 이하로 떨어진다. 아시아는 약 2.8명 정도다. 반대로 유럽은 십만 명 당 80명이 넘게 다발성 경화증을 앓는다. 저위도 지방은 낮은 유병률을 보이고, 고위도 지방으로 갈수록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 심지어 일부 북유럽 집단은 200명을 넘어간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제법 흔한 질병이지만, 아직 원인을 모른다. 샤르코의 위대한 발견에도 불구하고 자칫하면 다시 자궁에 혐의를 씌울 판이다. 

 

다음 화 미리 보기┃“바이킹 유전자?”

 

오슬로 인근에서 발견된 바이킹 롱쉽. 오슬로 바이킹 박물관
오슬로 인근에서 발견된 바이킹 롱쉽. 오슬로 바이킹 박물관

세계에서 다발성 경화증이 가장 많이 진단되는 나라는 스칸디나비아 국가와 아이슬란드, 영국의 도서 등이다. 그렇다면 혹시 추운 기후가 원인이 아닐까? 그런데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도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 따뜻한 기후에서도 생기는 것이다. 북유럽에서 이들 국가로 이민을 많이 떠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래스카에 사는 에스키모 혹은 이누이트는 별로 높은 유병율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1995년 하버드 의대의 C.M. 포저 등은 아주 흥미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다발성 경화증이 빈발하는 지역은 바이킹이 지배하던 지역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바이킹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를 침략했고, 노르망디와 시칠리아, 남부 이탈리아까지 진출했다. 게다가 교역 범위는 코카서스와 흑해, 카스피해를 넘어 페르시아, 인도, 심지어 중국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다발성 경화증은 바이킹 유전자에 의해 발병하는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북유럽인에게 가장 흔하지만, 바이킹의 광대한 항해 영역으로 인해 다른 지역에서도 낮은 빈도로 발병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아마 고대 바이킹인들은 항상 괴상한 신경 증상에 시달렸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시력 상실이나 사지 마비는 그들에게 일상적인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발성 경화증이 바이킹 유전자에 의한 것이라면, 환경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증가하거나 감소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사르데냐인은 수십 년 전부터 갑자기 다발성 경화증을 많이 앓게 된 것일까?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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