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도덕적 자아상, '내로남불'의 심리학

2019.08.31 06:00
 

세상에 악한 행위는 많지만 자신이 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거짓말, 배신, 모르는 척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등 다양한 나쁜 행동들을 저지르지만 여전히 자신이 도덕적이고 선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듀크대  매튜 스탠리 교수 등 학자들에 따르면 도덕적이고 선한 자아상과 대립되는 나쁜 행동들을 많이 하고도 여전히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긍정적 자아관을 유지할 수 있는 데에는 편의에 따른 선택적 기억 인출과 왜곡이 한 몫 한다.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에게 잘못한 것은 디테일 하나하나 빼먹지 않고 기억하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않는) 현상을 보인다. 


사람들에게 잘 하면 상금이 나오는 과제를 준다. 어떤 행위들이 부정행위로 간주되며 이런 부정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한 후 과제가 끝난 다음 어떤 것들이 부정행위로 간주되는지 들었던 내용을 기억하냐고 묻는다. 그러면 부정행위를 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디테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않는) 경향을 보인다. 


이번에는 물건을 소비하는 상황이다. 사람들에게 물건에 대한 다양한 설명을 들려주고 그 중 ‘어린이 노동’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정보를 준다. 이후 그 물건을 산 사람들은 물건에 대한 다양한 정보 중 어린이 노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였다. 


즉 자신과 관련된 여러가지 정보들 중 자신의 도덕적 자아상에 위협이 되는 정보들만 선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않는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내 자아와 관련이 없는 다른 정보들은 잘 기억했으며 자신의 악행이 아닌 타인의 악행에 대해서도 잘 기억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타인의 악행으로 인해 자신이 수혜자가 되었다면, 그 디테일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였다. 


뉴스에 나오는 커다란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도 매번 하는 변명이 ‘기억나지 않는다’이다. 이것과 스케일은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자신의 잘못에는 별다른 주의를 주지 않고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자신의 ‘선행’에 대해서는 귀신 같은 기억력을 보이는 현상도 나타난다. 당장 어제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렸지만 이 사실은 주목하지 않는 반면 초등학교 1학년 때 분리수거를 잘 해서 칭찬을 받았던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 이를 통해 사실 환경에 해를 끼친 사실이 더 많음에도 나는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윤리적인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 역시 수년 전에 여행지에서 쓰레기를 주웠던 기억이 있는데, 이후 딱히 환경을 보호하려 노력한 적 없음에도 그 기억 하나로 지금까지 나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사람들은 특히 자신과 관련된 기억이라면 얼마든지 선택적으로 인출, 재배치, 왜곡함으로써 긍정적 자아상을 유지한다.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은 말로 무시할 수 없는 나쁜 행동이라면 어떨까? 예컨대 도둑질을 했다든지, 사기를 쳤다든지,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는 등 가히 최악이라고 할만한 행동들을 했어도 도덕적 자아관을 유지하는 방법은 있다. 바로 그 행동은 최악이었으며 그 행동을 한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일례로 비슷한 잘못된 행동이라도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을 최근의 잘못보다 더 나쁘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실제로 나쁜 행동을 한지 몇 달 밖에 지나지 않았어도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일어난 일로 여기는 등 과거의 잘못과 자신의 심리적 거리를 늘리는 경향을 보인다. 불과 몇 주 전에 타인에게 위해를 입히고서 ‘왜 과거의 일을 가지고 그러느냐’고 반박하는 것도 비슷한 현상일까?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고 하면 자신을 정확하게 평가해보라고 한 사람들에 비해 과거의 자신을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별로 변한 게 없어도 과거의 나는 지금보다 더 나빴다는 생각을 통해서 나는 옳은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즉 과거의 자신을 낮춤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높이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악행에 대해 ‘인생의 전환점’ 같은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인간은 긍정적 자아관을 위해서라면 정 반대의 정보조차 그에 맞춰 가공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물리적 시간에 따라 오래 전에 일어난 일보다 가까이에 일어난 일에서 더 자신에 대한 정보를 많이 유추하는 것이 합리적일텐데, 똑같이 2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도 그것이 선한 행동이라면 그 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비슷하다고 여기는 반면 그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라면 자신은 그 때와는 다르며 많이 변했다고 여기기도 한다. 자아를 꾸미는데 있어 사건의 물리적 순서나 시간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시공을 초월하여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재구성하는 탓에 악행은 많지만 스스로 악하다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이다. 


추상적으로 도덕적인 사람은 많지만 구체적으로 도덕적인 사람은 많지 않다는 말이 있다. 도덕을 주장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뜻인데 일상 속 나의 행동에 대해 조금이나마 객관화해보는 시도가 실제 도덕 실천에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Stanley, M. L., & De Brigard, F. (2019). Moral Memories and the Belief in the Good Self.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0963721419847990.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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