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마틸다의 유리천장

2019.08.29 18:13

캐나다와 한국, 과학기술계의 성(性) 편향

지난해까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599건 가운데 여성이 받은 횟수는 18건에 불과해 3%를 갓 넘는다. 201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마이브리트 모세르 노르웨이과학기술대 교수(왼쪽)와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투유유 중국 중의과학원 교수, 2018 노벨물리학 수상자인 도나 스트릭랜드 캐나다 워털루대 물리 천문학부 교수.

지난해까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599건 가운데 여성이 받은 횟수는 18건에 불과해 3%를 갓 넘는다. 201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마이브리트 모세르 노르웨이과학기술대 교수(왼쪽)와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투유유 중국 중의과학원 교수, 2018 노벨물리학 수상자인 도나 스트릭랜드 캐나다 워털루대 물리 천문학부 교수.

캐나다는 지난 3년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 2위를 놓치지 않는 복지국가다. 미국 유에스뉴스 앤 월드리포트가 조사한 이 결과에서 한국은 20위권을 오르내린다. 세계경제포럼(WEF)는 매년 ‘세계 성(性) 격차 보고서’를 발표하는데, 2018년 한국은 전체 149개국 중 115위로 여전히 성평등 하위권에 머물렀다. 한국은 특히 정치∙경제 분야에서 큰 성별 격차를 보이는데, 중국 (103위), 일본 (100위)보다도 낮은 수치다. 캐나다는 이 조사에서 항상 16위권을 달린다

 

2015년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채웠다. 그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트뤼도 총리는,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라고 대답해 화제가 됐다. 21세기, 여성권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은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없다는 의미다. 그런 인권국가 캐나다에서도 여전히 과학기술계에는 여성차별이 존재한다. 2019년 캐나다 라발대 홀리 위테만 교수 연구팀은, 연구비 신청 정보를 분석해, 연구책임자가 남성일 경우 성공률은 12.7%, 여성이 경우 8.8%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구비 수주는 과학기술계 성차별의 대표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2018년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생명공학 특허 심사 과정에 무의식적인 성차별, ‘성 편향’이 존재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예일대의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는 미국특허청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270만건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로, 모든 착시효과를 제거해도 여성의 심사 통과 확률이 7% 낮음을 보였다. 차별이 일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이름이었다. 성별을 확연히 알 수 있는 여성 이름에 비해, 성별이 모호해 보이는 여성 이름의 심사 통과 비율은 남성과 거의 동일했기 때문이다. 연구비와 특허 외에, 과학기술 논문에서도 여전히 성차별이 존재한다.

 

동아DB
동아DB

한국에서 과학기술 연구인력으로 고용된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19.3% 대 80.7%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연구과제 규모에 따른 성 편향은 한국에서 특히 심각하다. 5000만원 미만 소형 연구과제 중 여성이 연구책임자인 과제의 비율은 34.4%에 달하지만, 10억 이상의 대형 연구과제의 경우 여성이 연구책임자인 비율은 겨우 5.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형과제의 경우 여성 연구책임자의 비율은 서서히 증가하고 있지만, 대형과제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한국 연구자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과제 수주 시의 과도한 네트워킹, 특히 근무시간 외의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이를 요구하는 풍토와 이런 결과가 무관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마틸다 효과, 마태효과의 어두운 측면

 

펄서를 처음 발견한 조이스 벨 버넬 영국 옥스퍼드대 방문교수. 브레이크스루상 선정위원회 제공
펄서를 처음 발견한 조이스 벨 버넬 영국 옥스퍼드대 방문교수. 브레이크스루상 선정위원회 제공

천문학자 조슬린 벨 버넬(Jocelyn Bell Burnell)은 1967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 학생이던 당시, 펄사(Pulsar·맥동변광성)을 발견했지만, 이 공로는 그의 지도 교수 안토니 휴이시에게 돌아갔고, 노벨상 역시 지도 교수가 수상했다. 동화작가 엘리 어빙은 《마틸다 효과》라는 동화에서 조스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다. 마틸다 효과란 같은 업적을 쌓더라도, 여성 과학기술인이 남성에 비해 과소평가됨으로써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 말은 1993년 여성 과학기술인에 대해 연구했던 과학사가 마가렛 로시터가 만든 신조어다. 로시터는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주장한 마태효과, 즉 과학자 사회에서 나타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여성 과학기술인에 대한 차별이 이루어지는 근거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여성 과학기술인에 대한 차별에서 나타나는 마태효과를 지칭하기 위해, 미국 사회학의 선구자이자 여성권을 위해 투쟁했던 활동가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Matilda Joslyn Gage)의 이름을 붙였다. 

 

로시터가 과학기술계의 성 편향을 지칭하기 위해 마틸다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19세기 여성인권을 위해 투쟁했던 마틸다 게이지의 이름이 역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시터가 그의 이름을 다시 수면 위로 올리기 전까지, 여성운동가, 미국 원주민 인권운동가, 노예제 폐지론자, 자유 사상가였던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의 이름은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로시터가 마틸다 게이지의 이름으로 이 현상을 이름붙힌 이유가 하나 더있다. 182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1898년 사망할 때까지, 마틸다 게이지는 사회 소수자를 위해 헌신을 다했지만, 1883년 '발명가로서의 여성'이라는 논문을 썼고, 바로 이 논문에서 과학기술계에서 나타나는 성 편향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발명과 기계공학의 천재적 여성들 중에, 그가 마땅히 받아야할 것보다 언급이 덜 되는 건 흔한 일이다. 심지어 미국 정부는 여성 발명가들의 숫자를 제대로 집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항은 역사적으로 너무 쉽게 무시되었고, 덕분에 여성들은 그드이 받아야할 댓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비록 여성의 과학교육이 부정적으로 생각되어왔지만, 인류사에서마 가장 중요한 몇몇 발견은 여성의 작품이다.”

 

머튼은 마태효과를 통해 과학자사회의 특징을 드러냈지만, 마태효과 자체가 과학의 진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단 하나의 이론이 승리하고, 연구능력이 뛰어난 연구자에게 모든 자원이 주어지는 현상이 과학의 진보를 촉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머튼의 생각은 단 한번도 실험적으로 증명된 적 없지만, 바로 그 마태효과가 극대화된 21세기, 보통과학자라는 계층이 생겨나 고통받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마틸다 효과는 과학의 진보만을 고려하는 마태효과가 불러올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의 한 극단을 보여준다. 과학의 진보를 위해, 대다수 과학자의 인권과 소수자 여성의 기여를 무시할 수 있는가. 마틸다 효과는 우리에게 바로 그 점을 묻는 이정표다.

 

마틸다 게이지는 미국에서 최초로 여성 과학기술인에 대한 차별을 공론화하고도, 역사 속에서 잊혀진 사회학자다.위키피디아
마틸다 게이지는 미국에서 최초로 여성 과학기술인에 대한 차별을 공론화하고도, 역사 속에서 잊혀진 사회학자다.위키피디아

 

유리천장과 재능에 대한 편견

 

여성은 왜 과학·기술·공학·수학 (STEM)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지 않았을까. 아니, 여성이 STEM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입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증명된 것인가. 아주 오래전 좌파 우생학자들이 주장했듯이, 이 질문이야말로 사회적 편견이 제거된 평등한 상황에서의 실험 없이는, 결코 단정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닐까.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STEM 분야 내에서 여성의 비율이 남성과 비슷하거나 남성을 넘어서는 분야의 특징 중 하나가, 그 분야 안에서 재능이 간주되는 방식이라고 한다. 해당 분야를 전공하기 위해 필요한 재능이 ‘타고 태어나는 것’인지 혹은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에 따라 여성의 비율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2011년 미국 분자생물학 박사학위자의 54%는 여성이었고, 물리학은 18%에 불과했으며, 심리학은 72%가 여성이었다. 바로 이 사실은, 과학기술계의 성 편향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좋은 자료가 된다. 물리학은 생물학처럼 성평등을 이룬 과학이 될 것인가, 생물학은 심리학처럼 여성이 더 많은 분야로 진화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이대로 고착화 될 것인가.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과학계의 일은 과학적으로 풀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도 된다. 과학자사회와 현대문명이 함께 구축해온 편견을 모두 제거하고 나서도 남는 그 만큼만, 남녀의 차이가 존재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가능하다. 과학은 바로 그런 일에 합당한 답을 제공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마틸다 게이지의 비석엔 "엄마, 가정, 천국보다 더 달콤한 단어가 있다. 자유.”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가 쓴 '발명가로서의 여성'의 마지막 구절을 옮긴다.

 

“모든 발명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키고, 수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활동을 활성화하고, 세상에 새로운 재원을 더하고, 삶을 더욱 바람직하게 만드는 것이다. 위대한 발명은 인간 사고의 경계를 넓히고, 사회, 종교,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 내며, 인류가 새로운 문명으로 도약하게 만든다.” 

 

참고자료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5980100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48215&code=11141100&sid1=all

https://www.mk.co.kr/news/it/view/2019/03/167822/

https://www.cbc.ca/news/health/cihr-gender-bias-1.5009611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2086

https://www.mk.co.kr/news/it/view/2019/03/167822/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2086

http://news.bookdb.co.kr/bdb/Column.do?_method=ColumnDetail&sc.webzNo=31509

https://wonderfulmind.co.kr/the-matilda-effect-women-science-and-discrimination/

Gage, M. J. (1883). Woman as an Inventor. The North American Review136(318), 478-489.

https://metas.tistory.com/163

https://twitter.com/sh2jw/status/1124236398372876288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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