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아의 닥터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현재진행형…폐손상 바이오마커 찾는 중"

2019.08.12 18:31
9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홍수종 환경보건센터장(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교수)은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환경보건센터 연구팀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의 원인과 과정을 알아내고, 추후 다른 합병증을 일으킬 위험은 없는지 연구 중이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9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홍수종 환경보건센터장(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교수)은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환경보건센터 연구팀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의 원인과 과정을 알아내고, 추후 다른 합병증을 일으킬 위험은 없는지 연구 중이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가장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구매해 사용했던 제품이 역으로 나와 가족의 생명을 위협했다면 정말 억울하고 분노에 가득 찰 일이다. 게다가 정확히 어떤 요인이 어떻게 건강에 해를 미쳤는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다면 더욱 답답할 것이다. 2011년 4월에 발생한 '가습기살균제 사건'이다. 사망자가 1400명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최근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을 개정해 피해보상 대상자 확대를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환자가 처음 등장했던 당시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폐 손상 질환’이었다. 이후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를 통해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피해자 중에는 임산부와 어린이, 지병이 있던 환자가 많았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환경으로 인한 대규모 참사였다.

 

2015년 4월 환경부는 서울아산병원을 유해화학물질노출분야 환경보건센터로 지정했다. 서울아산병원 환경보건센터에서는 내과학, 영상학, 병리학, 소아과학, 예방의학 등 임상의들과 환경보건학자, 통계전문가, 폐기능검사 전문가 등이 모여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건강 모니터링을 하는 한편, 가습기살균제의 어떤 성분이 어떤 과정을 거쳐 폐를 손상했고 추후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그리고 지난달 12일 심포지엄을 열고 4년간 밝혀낸 성과들을 발표했다.

 

원인이나 치료방법, 합병증 등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아직 없다. 하지만 이로 이한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 서울아산병원 환경보건센터에서는 그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내고 있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9일 환경보건센터를 이끌고 있는 홍수종 센터장(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교수)을 만났다.


- 벌써 4년이나 됐다…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해 연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해 ‘이미 끝난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피해를 입은 환자들과 그들을 치료하고 연구하는 우리들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09년쯤 폐가 딱딱하게 굳는 병인 폐섬유증이 생긴 유아 환자 3~4명이 병원에 왔다. 증상이 일반 폐섬유증과 매우 달라 이상하다 여겼다. 보통 폐섬유화증이 생겨도 오랜 기간 생존할 수 있는데 이 병이 생긴 아이들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했는데도 3~6개월 안에 모두 사망했다. 죽기 직전에는 폐가 단단히 굳어 인공호흡기조차 작동시키기 어려웠다. 게다가 동료 의사들에게 물어보니 당시 전국적으로 비슷한 병을 앓는 유아들이 꽤 있었다.

 

2011년 11월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를 한 결과 가습기살균제를 원인으로 발표하며 사용과 판매를 중지하도록 했다. 그러자 '원인 미상의 폐섬유증'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문제는 가습기살균제의 어떤 성분이 어떻게 폐를 망가뜨렸고, 이를 어떻게 치료하며, 장시간이 경과했을 때 또 다른 질환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지 등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었다.


- 지금까지 어떤 것들을 알아냈나. 또 현재는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서울아산병원 제공
서울아산병원 제공

지난 5년 동안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모니터링하고 동물실험을 통해 원인과 발병 과정 등을 연구해왔다. 가습기살균제에 쓰였던 소독제 성분(PHMG)과 살균보존제 성분(CMIT/MIT)이 주요 원인이며, MMP2 등 여러 유전자에 작용해 폐섬유증을 유발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금까지 알아낸 것보다 훨씬 구체적인 과정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 중이다. 중간과정까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이유는 전 과정에 걸쳐 관여하는 물질들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습기살균제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대부분 호흡곤란이나 폐렴, 통증 등 증상을 자각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어도 별다른 증상이 없는 사람도 많다. 

 

문제는 폐의 일부가 손상됐어도 자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걸 확인하려면 컴퓨터단층촬영(CT)과 폐기능 검사 등을 해야 한다. 만약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폐 손상을 일으키는 데 관여하는 물질을 바이오마커로 개발한다면, 혈액에 들어있는지 검사하는 것만으로도 쉽고 빠르게 진단할 수 있다. 증상이 거의 없더라도 단순 검사를 통해 진단받고 필요하다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 연구팀은 230명 환자의 혈액에 대해 단백체 분석을 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과정에 관여하는 물질들을 알아내고, 이들 중 병을 진단하는 데 특이도와 민감도가 뛰어난 것들을 찾고 있다. 

 

-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추후 다른 병이 생길 가능성도 있나

 

그렇다. 폐뿐 아니라 폐 외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장기 추적조사를 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대상으로 장기적으로 추적조사를 하고 있다. 증상이 비교적 덜 심한 3~4등급은 매년, 증상이 좀 더 심각한 1~2등급은 4개월마다 건강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최근 환경부에서 실시한 동물실험 결과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에 들어 있던 유해성분을 흡입했을 때 기도에서 폐, 간을 거쳐 결국 밖으로 배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금속처럼 체내에 쌓이거나 남아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성분이 체내에 머무는 동안 폐와, 폐 외의 장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반드시 연구가 필요하다.

 

뚜렷한 조사결과는 없지만, 임상의들의 경험으로 봤을 때 가습기살균제가 판매되던 당시 태어난 어린이들의 약 30%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나온 때가 1998년이고 2011년까지 판매됐으니 10여 년 동안 쓰였단 얘기다. 그간 최소 400만명에 노출됐고 40~50만명에게 크고 작은 증상이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피해를 신고한 사람은 6000여 명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고도 증상이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안심만 할 수는 없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폐가 손상됐어도 당시에는 아무 증상을 못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에는 자각 증상이 없었으나 이후 수년간 달리기를 힘들어했던 아이가 병원에 온 적이 있었다. CT와 폐기능 검사 결과, 미세한 폐 손상이 발견됐다. 

 

- 일각에서는 '다 끝난 사건에 대해 왜 연구를 하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폐 질환을 연구하는 데 어떤 소명을 갖고 있나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증상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느끼지 못해도 CT를 찍어보면 손상이 있을 수도 있고, 천식이나 폐렴 등 다른 폐질환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또는 증상이 나타난 지 수 개월 만에 사망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습기살균제 유해물질이 체내에 흡수됐을 때 장기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연구를 해야 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가습기살균제 환자에게 천식과 비염, 아토피피부염, 간 독성 등이 추가로 발생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일반적인 천식이나 알레르기와는 패턴이 다르므로 원인과 발병 과정을 알아내야 한다. 

 

일종의 마음의 빚도 느낀다. 의사들은 당시 폐 손상으로 찾아온 환자들에게 아는 지식 안에서 최대한 진단을 하고 치료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원인 미상의 병이었기 때문에 결국 환자들이 많이 죽었다. 의사들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원인과 치료방법을 찾는 데 힘을 합쳐주기를 바란다. 주변 여건이 아직 열악하지만 우리는 구체적인 과정을 찾을 것이고 더는 그 참사가 이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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