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 쇼크'…희망만 좇는 성급한 올인이 원인

2019.08.06 16:48
지난 1일(현지 시간) 신라젠이 개발한 항암바이러스 간암 치료제 ′펙사벡(Pexa-Vec)′에 대한 임상 3상시험이 중단됐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1일(현지 시간) 신라젠이 개발한 항암바이러스 간암 치료제 '펙사벡(Pexa-Vec)'에 대한 임상 3상시험이 중단됐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1일(현지시간) 신라젠이 개발한 항암바이러스 간암 치료제 '펙사벡(Pexa-Vec)'에 대한 글로벌 임상 3상시험 무용성 평가를 담당한 미국 독립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가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했다. 

 

DMC는 각 신약이 개발될 때마다 신약개발 전문가와 관련 질환 전문가, 통계학자 등 다분야 전문가들로 꾸려서 개발 중인 약이 치료제로서 가치가 있는지 임상시험을 지속해도 좋을지를 판단한다. 이번에 펙사벡에 대한 무용성 평가를 담당한 DMC는 종양학자 8명으로 꾸려졌다. 

 

올해 6월까지 투자액이 5233억원을 기록할 만큼 기대했기 때문에 신라젠의 실패 소식은 큰 충격을 안겼다. 신라벡 임상 3상 중단 발표로 2일 하루만에 회사 시가총액은 1조원 이상 증발했다. 코오롱티슈진의 '인보사케이주'(인보사) 품목 허가 취소에 이어 신라젠 임상 중단이 잇따라 터지면서 국내 바이오 산업에 대한 불신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펙사벡의 임상 3상 실패는 예견된 일이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신라젠 쇼크' 겪지 않으려면 신약 개발 환경 변화 필요


현재 항암바이러스 치료제는 세계적으로 약 200개가 개발 중이다. 대부분 임상 1상 또는 2상 중이다.

 

펙사벡은 바이러스를 이용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원리로, 치료효율을 높이고 부작용을 줄이는 차세대 항암제로 기대돼 왔다. 임상 3상 중이었던 신라젠의 펙사벡은 개발 진도가 조금 앞선 편이었다. 지금까지 상용화된 항암바이러스 치료제는 암젠이 개발한 피부암 치료제 '티벡(임리직)'이 유일하다. 펙사벡이 상용화된다면 종양세포에 주입하는 티벡과 달리 정맥 투여가 가능한 덕분에 여러 암종에 적용될 것으로 기대됐다.


펙사벡은 원래 미국 바이오벤처인 제네렉스가 후보물질을 개발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는 기존 치료제보다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후 신라젠은 제네렉스와 협약을 체결한 뒤 동물실험을 통해 펙사벡의 효능을 확인하고 2014년 제네렉스를 인수했다. 2016년부터 뉴질랜드와 미국, 한국 등에서 간암 환자 393명을 대상으로 펙사벡과 기존 간암 치료제인 넥사바를 비교하는 임상 3상을 진행해왔다. 
 

신라젠에서는 펙사벡의 실패 원인으로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 중 35%가 임상 약물 외에도 다른 약물을 투여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단독으로 투여하는 표적항암제가 아닌, 대장암이나 신장암 등을 대상으로 다른 면역항암제와의 병용 투여에 대한 임상시험에 집중하겠다며 전략을 바꿨다.

 

하지만 신약 개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일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반응이다. 

 

제약업계의 한 전문가는 "신라젠은 넥사바에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환자 129명을 대상으로 임상 2상을 진행했다가 실패했다"며 "이후 실패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지 않고 임상 3상을 바로 설계해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성급하게 임상 3상을 진행했다는 얘기다. 2상과 다르게 3상을 설계할 때 뚜렷한 근거가 없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신라젠은 6일 항암 바이러스 '펙사벡'이 간암 임상 3상 시험 중단을 권고받은 이유에 대해 임상 참여자의 상당수가 펙사벡 외 다른 약물을 투여한 영향으로 추정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김태억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 본부장은 '국내 신약 개발 벤처 환경의 문제점'을 짚었다. 그는 "파이프라인을 1~2개만 가지고 상장한 뒤 투자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급하게 신약 개발이 진행되고, 실패했을 경우 손해 정도도 크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해외에서는 신약 개발 벤처에 대해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평가를 두루두루 할 수 있도록 토론하는 집단이 있는데 국내에서는 신약 개발 벤처에 대해 희망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국내 자체적으로만 개발이 어렵기 때문에 해외에서 확보하는 등 신약 파이프라인을 다양하게 확대하고, 벤처를 상장하기에 앞서 실제로 상용화 가능성이 있는지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긍정적, 부정적인 요소를 모두 따져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국내 제약업체가 개발한 신약 가운데 임상 3상 결과 발표가 예정됐던 것은 에이치엘비의 위암 표적항암제(리보세라닙)와 신라젠의 펙사벡, 그리고 헬릭스미스의 당뇨병성 신경병증치료제(VM202-DPN)와 메지온의 선천성 심장질환치료제(유데나필) 등 4가지로 나타났다. 리보세라닙은 임상 3상에서 얻은 데이터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 허가 신청을 할 예정이다. 헬릭스미스와 메지온은 이르면 다음달, 또는 연말쯤 발표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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