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소재 규제 이기려면 화관법·화평법 고쳐야? 재계 주장에 논란 가열

2019.07.30 11:55
2012년 경북 구미의 한 화학공장에서 벌어진 불산누출 사고 영상의 한 장면.
2012년 경북 구미의 한 화학공장에서 벌어진 불산누출 사고 영상의 한 장면.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 움직임을 계기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두 법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며 줄곧 시행에 비판적이었던 화학 기업 등 재계와 일부 정치권은 이 법이 소재 개발을 가로막는 주범 중 하나라며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화관법과 화평법 자체는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를 막는 최소한의 법이며 오히려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나 구미 불산 누출사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화평법은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계기로 제정된 법으로 생활용 화학제품에 의한 독성 피해로부터 국민과 환경의 피해를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3년 5월 제정돼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신규화학물질이거나 연간 1t 이상 제조, 수입되는 기존 화학물질에 대해 유해성 심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화학물질의 유해성 입증 의무도 기업에게 부과된다. 유럽에서 2007년 6월부터 시행돼 온 화학물질의 등록, 평가, 관리 및 제한 제도인 ‘리치(REACH)’와 비슷하다. 환경부는 “2015년에 법령 제정 이후에 화평법에 따라 5490종의 물질이 등록되고, 3만 5천건이 연구개발용으로 등록면제확인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화관법은 화학물질의 체계적 관리와 화학사고 예방을 통해 국민 건강 및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90년 유해화학물질관리법으로 제정된 이후 2012년 구미에서 불산가스가 누출돼 노동자 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뒤인 2013년 크게 개정돼 2015년부터 시행ㄷ되고 있다.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을 설치할 때 관리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법은 제정 초기부터 많은 기업으로부터 ‘공공의 적’ 취급을 받아왔다. 화학물질의 유해성 심사를 반드시 해야 하고 그 입증 책임도 기업이 갖기에 이전보다 등록 절차가 복잡하고 평가 등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화학물질의 성분은 기업이 오랜 시간 투자해 얻은 일종의 ‘영업비밀’인데 이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논의도 단골이었다. 10일 대통령이 일본 규제 대책으로 재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재계는 두 법이 기업 활동을 제약한다고 완화를 건의했고, 경제신문을 비롯한 언론이 연일 이 문제를 다루며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관련 보도가 이어지자 환경부는 15일 “국내 대체기술 부족은 ’제조사 자체의 기술적 한계‘, ’자체 생산 시 높은 가격‘, ’업계의 소극적 대응‘ 등 복합적 원인이 있다”며 “소재산업 경쟁력이 환경규제 때문이라고 보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환경부는 “개정 화평법에 따라 등록해야 하는 7000여 종은 한꺼번에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의 부담을 고려하여 유해성 및 제조량, 수입량에 따라 최대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등록을 유예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화평법이 모델로 삼은 EU의 리치보다 오히려 더 까다롭다는 일부 언론의 비판에 대해서는 “화평법은 제조·수입량에 따라 15개∼47개 시험자료를 요구하고 있지만 EU는  22개∼60개로 더 많은 시험자료의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며 “EU와 달리 화평법은 유해성이 낮은 것으로 분류, 표시되는 기존화학물질에 대해서도 등록서류 제출을 일부 면제하고 있다. 연구개발용 화학물질의 경우에는 등록이 면제되는 물질로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확인을 받으면 제조와 수입이 가능하다”며 반박했다.


야당도 반대하고 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29일 논평에서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대응책을 앞세운 위험한 규제 완화 추진을 당장 맘춰야 한다”며 “재계는 반도체소재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겠다며 화평법과 화관법의 완화, 52시간 근무제 특례 확대, 산업안전법 개정, 법인세·상속세 인하를 요구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무분별하게 수용할 태세”라고 비판했다.

 

오 대변인은 “2012년 구미 불산 폭발사고 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은 강화된 규제를 피해 국내생산을 포기하고 일본에서 수입하는 손쉬운 선택을 해왔다”며 “반도체 생산이 위기에 처한 것은 화평법 때문이 아니라 기업들이 미래의 위험에 대비한 기술투자를 하지 않아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