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똥으로 중력장 증폭?" 정부 연구기관이 낸 이상한 논문 철회 '망신살'

2019.07.29 15:50
철회된 ′기생충학 연구′ 논문 캡쳐 및 게티이미지뱅크
철회된 '기생충학 연구' 논문 캡쳐 및 게티이미지뱅크

정부 기관과 산하 연구기관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해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던 수산과학 논문이 국제 학계로부터 비과학이란 판정을 받고 1년 만에 철회된 것으로 확인됐다. 물리학의 중력장을 이용해 기생충약의 독성을 제거했다고 주장하는 논문으로, 명백히 비과학적인 내용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비과학적인 연구에 아무런 제지없이 사용됐다는 지적과 함께  논문이 정상적인 동료 평가를 거쳐 논문을 발행하는 130년 역사의 국제학술지에 1년 가까이 게재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동료평가(피어리뷰) 과정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논문 철회 감시 사이트 ‘리트랙션와치’의 설립자 이반 오란스키 대표는 23일 "중력장, 누에 배설물, 그리고 ‘퓨터(Putor)’ 프로그램,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논문이 동료평가를 거치는 학술지에 실렸을까"라는 글을 통해 한국 연구자가 참여한 논문 한 편의 철회 소식을 전했다.

 

언급된 논문은 지난해 7월 21일 국제학술지 ‘기생충학 연구’ 온라인판에 실린 것으로 제목은 ‘넙치 양식을 위한 안전한 스쿠티카충 방제(구충) 기술 개발, ‘중첩중력에너지’를 사용한 물질 개선 기술로 메벤다졸의 독성을 줄이는 새로운 접근법’이다.


이 논문에는 교신저자로 참여한 정승희 국립수산과학원 병리연구과장(수산학 박사)을 비롯해 국립수산과학원 소속 연구자 6명과 이은혜 식품의약품안전처 수입식품분석과 주무관, 김학제 아시아태평양지구생명환경개선협회장 등 총 8명의 국내 연구자가 참여했다. ‘기생충학 연구’는 1869년 독일 예나에서 ‘기생충 과학 저널’이라는 이름으로 창간한 국제학술지로, 과학인용색인(SCI)에 등재된 정식 학술지다. 세계적인 학술지 출판사인 스프링거 네이처에서 발행하고 있다.


논문은 초록에서 “한국에서 널리 행해지는 넙치 양식은 스쿠티카충 기생충 감염에 취약한데, 이를 막기 위해 쓰이는 화학약품인 메벤다졸은 독성이 강하다”며 “중첩중력에너지로 처리한 분자로 이뤄진 메벤다졸을 사용한 결과 기생충 방제 효과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데 비해 부작용은 없었다. 중첩중력에너지를 독성을 저감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문 전반부는 넙치의 기생충을 방제하기 위한 약을 시험하는 일반적인 독성 분석 논문과 비슷하게 구성돼 있다. 스쿠티카충을 분리하고 이를 방제하기 위한 후보 약물을 열거한 뒤 그 가운데 메벤다졸을 처리하고, 이후 효과와 조직학적 부작용을 점검했다. 


그 뒤 논문은 메벤다졸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중첩중력장에너지를 처리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논문은 “중첩중력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동타라콘칭’이라는 원소로 된 물질을 이용한다. 지구 자전과 공전에 의한 중첩중력에너지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며 “이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퓨터(Putor)’라는 기기를 이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논문은 퓨터 기기의 도면까지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아래). 에너지를 주입하고 싶은 물질 아래와 위에 ’읍차’와 ‘납차’라고 이름 붙인 장치를 각각 설치한다. 논문에 따르면, 읍차는 지구 중심부 에너지를 유도하고 납차는 지구 밖에 나온 약한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납차에서 증폭을 돕는 물질로는 누에, 특히 누에 똥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납차′와 ′읍차′를 이용해 지구의 중첩중력에너지를 증폭해 메벤다졸의 독성을 없애는 ′퓨터′의 구조. 논문에 이 구조까지 그려가며 원리를 설명했다. 기생충학 연구 제공
'납차'와 '읍차'를 이용해 지구의 중첩중력에너지를 증폭해 메벤다졸의 독성을 없애는 '퓨터'의 구조. 논문에 이 구조까지 그려가며 원리를 설명했다. 기생충학 연구 제공


하지만 ‘기생충학 연구’ 학술지는 이달 발행한 7월호에 “사후 동료평가 결과 중첩중력에너지와 관련해 내린 결론이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편집장 및 출판사의 요청으로 철회한다”고 밝혔다. 


오란스키 대표는 리트랙션와치의 글에서 “왜 사후 동료평가로 논문의 오류를 검증했는지, 논문이 원래 제출됐던 2018년 3월 5일부터 최종 통과된 같은 해 7월 6일까지는 편집부와 동료평가자들은 무엇을 했는지 학술지 편집장에게 질의했지만 답을 듣지는 못했다”며 “다만 네이처 스프링거의 대변인으로부터 ‘공정성을 위해 사후 동료평가에 보내졌고, 저자들 모두의 동의 하에 철회했다. 동료평가 과정의 상세한 내용은 비밀이라 말할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논문 내용에 대해 부정적이다. 오란스키 대표는 “필립 모리아티 영국 노팅엄대 교수에게 e메일로 문의한 결과 “소칼의 지적사기 같은 연구다. 전혀 말이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고도 밝혔다. 모리아티 교수는 특히 이 같은 논문의 게재를 승인한 동료평가 제도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관련 글을 게재하고 “논문이 제출되고 편집자와 동료평가자들은 네 달 동안 논문을 숙고한 끝에 출판하기로 결정했다”며 “동료평가가 모든 과학을 지탱하고 선 표준인지 또는 과학을 몰락시키는 표준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적설계론 등 유사과학 비판으로 유명한 미국의 진화학자 제리 코인 미국 시카고대 명예교수 역시 자신의 블로그 ‘왜 진화는 진실인가’에 게시한 글에서 “정신 나간 논문이 철회됐다”며 “네이처 스프링거는 자신들의 실수를 숨기고 있다. 동료평가의 구체적 사항은 당연히 비밀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대략적이라도 밝혀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네이처 스프링거가 학술 논문 출판 비용으로 34%의 큰 수익을 가져간다. 엘스비어나 윌리 등은 각각 36~40%로 더 높다”며 거대 학술지 출판사의 책임 있는 운영을 요구하기도 했다.


논문에 등장하는 중첩중력에너지의 개념은 김학제 회장으로부터 나왔다. 정 과장은 전화 통화에서 “스쿠티카충 구충 기술을 고민하던 중 축산계에 사용되는 구충약의 유효성분인 메벤다졸을 어류 양식에 활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약해(부작용) 때문에 저감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지인을 통해 중첩중력에너지를 통한 독성 저감 기술을 알게 돼 이 기술을 소유한 김 회장에게 문의해 무상으로 기술을 전수 받아 실험을 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이 소속된 ‘아시아-태평양 지구생명환경개선협회’는 환경부로부터 2008년 8월 1일 허가를 받은 비영리 법인이다. 환경부에 제출된 설립 목적은 “중첩중력에너지이용물질개선 기술로 토양, 물, 대기, 물질 등을 개선시켜 국민들의 건강한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연구 내용이 논란이 된 사실에 대해서 정 과장은 “잘 알고 있다. 오픈액세스로 공개된 논문이다 보니 물리학계에서 (중첩중력에너지 개념에 대해) ‘먼저 물리학자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며 “충분히 가능한 개념이라고 믿고 실험 결과도 분명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한국 과학에 혹시 악영향에 있을까 우려해 논문 저자 모두의 서명을 받아 철회했다”고 밝혔다. 논문 제출 및 승인 과정에 대해서는 “논문을 제출했을 때는 단 한 번의 수정(리비전)도 없이 통과했다”고 밝혔다.

 

정 과장은 “구충약의 약해를 줄이는 기술은 지구상에 없다. 따라서 이 기술이 성공하면 큰 파장이 일 게 분명하다”며 “사전에 기술이전 설명회도 개최했고, 23개 기업이 이 기술을 무상으로 받겠다고 뜻을 밝힌 상황”이라고 말했다.

 

필립 모리아티 영국 노팅엄대 교수는 리트랙션와치로부터 논문 검토를 의뢰 받고 난 뒤 블로그에 25일 동료평가 과정의 허점을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 필립 모리아티 교수 홈페이지 캡쳐
필립 모리아티 영국 노팅엄대 교수는 리트랙션와치로부터 논문 검토를 의뢰 받고 난 뒤 블로그에 25일 동료평가 과정의 허점을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 필립 모리아티 교수 홈페이지 캡쳐

한편 ‘중첩중력에너지’를 다룬 논문이 국내 학술지에 세 편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를 이용해 국내 논문에서 ‘중첩중력에너지’를 검색한 결과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지’와 ‘한국차학회지’에 2011년과 2016년 실린 총 3 편의 논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덕열 경북대 연구원과 오혜지 상지영서대 교수, 오상룡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 식품공학부 명예교수가 쓴 2016년 논문 ‘중첩중력에너지가 우엉 차의 이화학적, 항산화 및 관능적 특성에 미치는 영향’은 초록에서 “중첩중력에너지를 조사한 우엉차의 생리화학적, 항산화적, 감각적 특성을 조사했다”고 밝히고 있다. 


오상룡 명예교수가 1저자로 참여한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지의 2011년 논문 ‘중첩중력에너지가 방사선 조사된 밀과 대두의 판별 특성에 미치는 영향’은 초록에서 ‘중접에너지가 방사선 조사식품의 판별 특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자 밀과 대두를 시료에 감마선을 조사한 뒤, 중첩중력에너지로 처리한 시료의 발광특성과 발아율 변화를 처리 직후와 6개월 저장 후 비교했다”고 밝히고 있다. 오혜지, 오상룡 교수의 2016년 논문 ‘차의 품질과 비물질에너지’ 역시 중첩중력에너지를 다루고 있다.


세 편의 논문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저자인 오상룡 명예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스스로를 "식품비물질에너지학 명예교수"라고 지칭하며 “차를 통해 각성의 경지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경북대 평생교육원분원 차도과정을 16년간 운영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식품분석학을 강의하면서 물질의 에너지보다 비물질에너지의 중요성을 알게 돼 비물질에너지의 과학적 설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오혜지 교수는 그가 운영하는 평생교육원분원에서 바리스타 강연을 했다.

철회된 ′기생충학 연구′ 논문 캡쳐.
철회된 '기생충학 연구' 논문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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