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 플라톤의 하늘, 아리스토텔레스의 땅

2019.07.25 18:13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중 살라미스 해전에서 열린 테르모필레 전투의 모습을 그린  영화 ′300′ 캡쳐. 네이버영화 제공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중 살라미스 해전에서 열린 테르모필레 전투의 모습을 그린 영화 '300' 캡쳐. 네이버영화 제공

탈레스가 활동했던 밀레토스에서 에게 해를 건너 동쪽으로 건너가면 지금의 그리스가 나온다. 그리스에서는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을 겪으며 정치적인 부침을 많이 겪었다. 이런 환경에서 살다 보면 바다 건너 사람들이 만물의 아르케가 뭐냐고 따져 묻는 게 배부른 소리로 들릴 법하다. 지정학적인 위치와 정치 환경이 다르면 철학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민주주의도 발달한 아테네에서는 만물의 아르케보다 현실에서 어떻게 처신해 권력을 확보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지가 더 큰 관심사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소위 ‘말빨’, 즉 언술, 변론, 수사 등의 능력이다. 이런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도와줬던 일종의 과외 선생들이 바로 소피스트였다. 소피스트하면 흔히 궤변론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그리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당시 소피스트들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람이 소크라테스였다. 정치의 시대 소피스트로 살았던 소크라테스였던 만큼 그의 관심사는 바다 건너 동네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만물의 아르케가 어떻고 하는 뜬구름 잡는 얘기보다 현실에서 먹고 사는 데에 도움이 되는 주제, 즉 정치학이나 윤리학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를 두고 하늘에서 철학을 땅으로 끄집어 내린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소크라테스는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본인이 직접 남긴 글은 전해지는 게 없다. 다만 자신 못지않게 유명한 제자를 둔 덕에 후대의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와 그의 말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위대한 제자의 이름은 바로 플라톤이다.

나는 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 플라톤의 철학에 대해서는 그저 ‘옆집 아저씨’일 뿐이다. 플라톤 하면 그 유명한 이데아론만 떠오를 뿐 그의 철학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20세기의 유명한 철학자인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 2000년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불과하다” 고 말한 걸 보고 플라톤의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플라톤이 과학의 역사를 논할 때에도 빠지지 않는 것은 주로 《티마이오스》라는 저작 덕분이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해서 플라톤의 우주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플라톤은 앞선 세대의 엠페도클레스가 주창했던 4원소를 정다면체로 설명한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란 흙, 물, 불, 공기이다. 이 넷이 만물의 근본요소라는 얘기이다. 탈레스의 물에 세 개가 추가되었다. 4원소론은 이후 오랫동안 서구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의 작품 중 《천사와 악마》에서는 4원소와 관련된 연쇄살인이 일어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아테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아크로폴리스). 아래로 내려가면 토론의 장이었던 아고라가 있다. 픽사베이 제공
아테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아크로폴리스). 아래로 내려가면 토론의 장이었던 '아고라'가 있다. 픽사베이 제공

한편 정다면체란 모든 면이 똑같은 모양의 정다각형인 입체도형으로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이렇게 다섯 개가 있다. 이 다섯 도형을 플라톤 입체라 부르기도 한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정사면체는 불, 정육면체는 흙, 정팔면체는 공기, 정이십면체는 물, 그리고 정십이면체는 우주 전체에 대응시켰다. 지금 21세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꽤나 황당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실제 《티마이오스》는 이런 내용들로만 가득 차 있어서 아마 일반 독자들에게는 지루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티마이오스》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자연의 대상에 수학적 구조물을 대응시켜 자연을 이해하려 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이런 접근법이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자연과 우주를 신화로 설명하던 시대에 수학적인 도구를 써서 이들을 설명한다는 기획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 플라톤 이전에도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아르케가 수학이라고 말했었고 플라톤이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안 받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수학을 통해 자연을 본격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한 사람은 역시 플라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과학과 관련한 플라톤주의라고 하면 대개는 플라톤의 이런 수학적인 기획을 뜻한다. 그러니까 정사면체가 왜 불과 연결이 되느냐 하는 디테일보다 정사면체를 불과 연결시키려고 했던 그 패러다임 자체가 중요하다. 플라톤의 기획은 먼 훗날 케플러와 갈릴레오, 뉴턴에게까지 이어졌다. 21세기의 과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소립자 세계를 관장하는 표준모형은 SU(3)xSU(2)xU(1) 같은 수학적 군을 기초로 구축돼 있다. 지금도 과학자들은 자연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수학적 구조물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세기의 뛰어난 물리학자였던 유진 위그너는 1960년 “자연과학에서 수학의 터무니없는 유효성”이라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자연을 기술하는 데에 수학이 왜 이렇게 잘 들어맞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얘기이다.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수리물리학자가 한 말이니까 이 언명은 아주 믿을 만하다. 물론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갈릴레오의 말마따나 이 우주가 애초에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덕분에 수많은 후손들이 수학이라는 ‘외계어’로 쓰인 과학을 배우느라 골탕을 많이 먹기도 했지만.

플라톤은 자신이 소크라테스라는 위대한 철학자의 제자였듯이 플라톤도 자기 못지않게 아주 위대한 제자를 두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에 플라톤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아에 들어갔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플라톤의 제자인지라 스승의 이분법적 세계관(이데아계와 현실계)을 꽤 물려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서는 천상계와 지상계가 확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스승과 다른 점도 많았다. 스승이 천상의 이데아에 관심이 많았다면 제자는 땅위의 현실에 관심이 많았다. 스승은 수학을 좋아했던 반면 제자는 감각경험을 중시했다. 게다가 제자는 그런 방면에 재능도 뛰어났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동물을 관찰하고 분류한 결과는 린네가 근대적인 분류체계를 세운 18세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무려 2천 년이 넘는 세월이다. 생물학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 철학, 종교 등 서구의 거의 모든 지성사에 2천 년 가까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나오려면 대략 14세기의 르네상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과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할 수 있는 시점은 갈릴레오와 뉴턴이 활약했던 17세기는 돼야 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적인 차이는 르네상스기의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은 바티칸 시국의 바티칸 박물관 안에 있는 라파엘로의 방(Stanza di Raffaello) 벽에 그려져 있다. 방은 그리 크지 않다. 천정이 돔형이라 벽면은 천정으로 가면서 원형으로 모아진다. 이 그림은 그렇게 휘어진 벽면을 따라 위쪽이 반원형으로 그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활동했던 50여 명의 철학자가 한 폭의 그림에 담겨 있다. 물론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두 사람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나는 수업시간에 이 그림을 보여줄 때가 참 즐겁다. 얘깃거리도 많을뿐더러 학생들이 어디 가서 ‘아는 척’하기 딱 좋은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내가 교양과학을 가르치는 주된 목적이 ‘아는 척’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수업을 열심히 듣다 보면 그런 세속적인 목적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나는 공공연하게 말하는 편이다.
 

라파엘의 프레스코 벽화 중 아테네학당. 위키미디어 제공
라파엘의 프레스코 벽화 중 아테네학당. 위키미디어 제공

인터넷을 뒤져보면 고해상도의 《아테네 학당》 그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마침 내가 지난 2018년 7월에 로마와 바티칸을 방문할 일이 있어 그때 꽤 좋은 카메라와 렌즈로 찍어 온 사진도 있다. 장비가 아무리 좋아봐야 내가 찍은 사진은 뭔가 엉성하고 모자라 보인다. 그래도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현장감이 살아나는 것도 사실이다.

《아테네 학당》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두 사람 중 누가 스승이고 누가 제자인지는 외모만으로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는 듯한 스승과 제자는 그 몸짓에서도 차이가 난다. 그림을 보는 사람 시각에서 왼편(그림 속 등장인물의 위치에서는 오른쪽)에 서 있는 플라톤은 오른손 검지를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반면 오른쪽에 서 있는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오른손을 펴서 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다. 스승과 제자가 추구했던 철학의 핵심을 라파엘로는 각자의 손의 위치로 시각화했다. 스승과 제자는 모두 각자의 왼손에 책도 한권씩 들고 있다. 플라톤이 들고 있는 책은 《티마이오스》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들고 있는 책은 《윤리학》이다. 역시 각자의 관심사를 제대로 반영한 표현이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다른 철학자들도 이런 식으로 표현돼 있다.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위키미디어 제공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위키미디어 제공

라파엘로의 그림은 나 같은 ‘그림 까막눈’이 보기에도 남달랐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갔을 때였다. 다른 여느 작품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히 섬세함과 색감에서) 그림을 보고 이건 대체 누가 그린 걸까 감탄하면서 살펴보니 라파엘로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라파엘로가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 없이 그냥 그림만 잘 그렸다면 이런 걸작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걸작이라는 건 한 분야의 기능적 능력만 뛰어나서는 될 일이 아니다. 바티칸 박물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시스틴 예배당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도 마찬가지다. 미켈란젤로가 그냥 기술적으로 그림만 잘 그린 게 아니다. 자기 나름대로 성경과 신과 인간을 통찰한 엄청난 상상력의 결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나 말 그대로 ‘르네상스적인 인간’들이었던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면서 융합적 사고를 강조하는 지금에도 《아테네 학당》은 많은 가르침을 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후대의 기준으로 물리학, 화학, 천문학, 생물학이라 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큰 자취를 남겼고 그 영향력이 중세 1천 년 또는 그 너머까지 지속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점이라면 그가 자기 시대에 비해서 지나치게 똑똑하고 명석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근대과학이 태동한 역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흙, 물, 불, 공기가 각각 두 가지 성질을 갖고 있어서 이 성질이 바뀌면 4원소가 서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흙은 건조함과 차가움을 갖고 있고 물은 차가움과 습함, 공기는 습함과 따뜻함을, 불은 따뜻함과 건조함을 갖고 있다. 불이 가진 건조함은 흙 또한 갖고 있는 성질이다. 만약에 따뜻함과 건조함을 갖고 있는 불이 차가워지면 차가움과 건조함을 그 성질로 갖고 있는 흙이 된다.

 

이처럼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이 서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은 훗날 연금술의 이론적인 근거로 작용한다. 납이나 구리 같은 흔한 금속으로 금이나 백금 같은 귀금속을 만들겠다는 속된 욕망이 얼마나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헛된 망상으로 이끌었던가 생각해 보면 그 ‘원흉’으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묻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연금술과 결별하고 이제 alchemy가 아닌 chemistry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게 17세기의 일이다. 심지어 뉴턴마저 30년가량 연금술에 매진했다고 한다. 뉴턴을 일러 최초의 근대적인 과학자라기보다 최후의 연금술사였다고 하는 게 빈말이 아니다. 그가 짧은 시간에 고전역학의 기틀을 세웠던 점을 생각하면 그 오랜 세월 별다른 성과 없이 뉴턴을 붙잡았던 연금술에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지금 우리는 현대적인 원자론에 입각해서 100개가 넘는 기본 원소들의 규칙성을 주기율표로 정리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자연에 없는 원소들도 인공적으로 종종 만들어내기도 하니까 만물의 아르케가 서로 바뀔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금술이 전혀 틀린 말이 아니기는 하다. 물론 금이나 백금을 만드는 일은 지금도 쉽지는 않다. 지난 2017년 과학자들은 우주의 중성자별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금이나 백금 같은 무거운 원소들이 합성되는 정황을 포착했다. 최고의 연금술사는 우주에 있었던 셈이다.

 

 

참고자료

-A. 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New York: Free Press, 1985), p.39
-Wigner, E. P. (1960). "The unreasonable effectiveness of mathematics in the natural sciences. Richard Courant lecture in mathematical sciences delivered at New York University, May 11, 1959". Communications on Pure and Applied Mathematics. 13: 1-14.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