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창출에 참여한 소수 과학자들이 출연연 흔들어"

2019.07.24 15:43
출연연구기관에서 직무교육을 받고 있는 청년들. NST 제공.
출연연구기관에서 직무교육을 받고 있는 청년들. NST 제공.

“정부출연연구소가 정부 정책에 활용되며 휘둘리고 있습니다. 출연금 법을 만들어 출연금이 연구에 제대로 활용되게 하고 공무원들도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노환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는 이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연구자 중심의 출연연 연구환경 조성 과제’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출연연이 정부 정책과 공무원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 교수는 “과학기술은 모든 발전의 근원으로 정당과 정치에 상관없이 발전해야 한다”며 “하지만 정권 따라 너무 많은 변동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 선거캠프에 참석한 일부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공약이 국정과제가 되고 이들 과학자들은 보직으로 임명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며 “문제는 정권 초기에 나오는 새로운 사업들에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주로 이용되는 것이 출연연이라는 게 지적이다. 노 교수는 “정권 초기에는 국정과제에 우선 정부 기관들을 동원해 뛰어들게 만든다”며 “정권이 바뀌면 정작 중복 연구가 많다면서 축소 중단 시키고 거기서 나오는 재원으로 새로운 사업에 다시 중복투자하는 패턴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무원들도 여기 휘둘리면서 출연연이 흔들리게 된다는 지적이다. 노 교수는 “공무원들이 유능함을 산하기관을 장악하는 것으로 증명한다”며 “정책이행 지시가 내려오면 다루기 가장 쉬운 곳이 출연금을 지급하는 출연연”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출연연을 옥죄는 ‘성과주의예산제도(PBS)’와 같은 제도들도 행정 편의상 사라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노 교수는 “PBS는 정권 차원에서 폐지하라고 해도 공무원들은 미온적이다. 출연연을 다스리는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라며 “줄세우기식 기관평가와 예산편성권도 출연연을 옥죄고 있다”고 말했다.

 

출연연은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 자금계획에 있어 정부 승인이나 회계감사를 면제하도록 의도한 유연한 자금인 출연금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공무원이 출연연 자금을 유연하게 활용하면서 출연연이 망가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 교수는 “국립대학은 법률이 정해져 있어 그런 시도를 할 수 없지만 출연연은 공무원이 자금을 유연하게 할 수 있다”며 “공무원이 예산을 편성하면서 설익은 정책을 내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예산을 깎겠다는 식으로 출연연을 협박하며 새로운 정책 실험 무대로 출연연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출연금만을 위한 법을 만들 것을 주문했다. 출연금은 관련 법이 없어 보조금 관리법을 따르다 보니 본래 취지와 달리 실제로는 정부의 계획 승인과 감사를 다 받는 행정논리로 간다는 지적이다. 노 교수는 “연구자 A, B, C 중 A가 연구를 잘한다면 A를 집중 투자해 세계적으로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예산을 나눠주는 행정논리로 가면서 이러한 일은 불가능하다”고 예를 들었다. 그는 “과제가 어려워 결과가 나오기 힘들면 예산을 올려줄 수도 있다”며 “하지만 잘 못했으니 깎는다는 행정논리가 출연금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환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가 이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연구자 중심의 출연연 연구환경 조성 과제’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노환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가 이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연구자 중심의 출연연 연구환경 조성 과제’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출연연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육성만을 담당하고 주무부처가 활용하는 제도도 구축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세계김치연구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 다른 부처가 주 부처인 출연연이 과기부에 속해 있다”며 “과학기술의 육성을 아는 공무원이 담당하라고 육성은 과기부가 하고 활용은 다른 사업부처가 하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가 부처 이기주의로 출연연을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과기정통부가 실적을 내려고 육성이 아닌 활용을 해 버린다. 출연연을 산하에 들고 타 부처에서 사용하게 배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환경부가 아닌 과기정통부가 미세먼지 등 공공 R&D를 직접 투자한다”고 지적했다.

 

공무원들이 철학을 가져줄 것을 주문했다. 노 교수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선택과 집중이 왜 중요한지 출연연은 왜 회계적 유연성을 강조한지에 대해 과학기술계 공무원이 답을 외우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확한 윤리체계를 만들어달라고도 했다. 그는 “정부가 창업을 강조하면서도 오전에는 교수로 비영리 연구를 추진하다가 오후에는 대표로 영리활동을 하는 모순적인 상황은 방치하고 있다” 연구자의 권한과 책무가 무엇인지 창업하는 교수가 지켜야 할 윤리는 무엇인지를 정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끝으로 정책을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각론으로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지금까지 공약은 과학기술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역할만 해왔다”며 “정책에는 원론이 아닌 윤리체계를 정하고 법안을 마련하는 각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기주의와 관료주의에 의해 망가지는 과학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정책의 맥락을 이해하고 고민과 합의를 통해 변화를 추구하면서 윤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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