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촌평] ‘연구소 6시면 불꺼진다’는 담론이 불편한 이유

2019.07.15 15:00
 

12년 전 미국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를 방문했다. 구글의 미래 혁신 전략, 핵심 기술력이 녹아든 검색의 현주소와 미래 등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구글은 혁신기업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검색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전세계 인터넷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취재를 다녀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글은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발표했다. 안드로이드는 현재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운영체제다. 

 

당시 언론들은 구글의 혁신과 근무 환경을 집중 조명했다. 출퇴근은 자유롭고 노트북만 들고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카페테리아는 훌륭했으며 모든 직원들이 무료로 언제든 간식을 먹을 수 있게 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심지어 헬스장과 수영장까지 갖춰 직원들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경우 힐링하거나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 일하는 문화의 틀도 깼고, 그 결과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추켜세웠다. 

 

해묵은 옛 이야기를 꺼낸 건 구글의 대단함을 새삼 들추고 싶어서는 아니다. 취재 당시 만났던 구글 직원들에게 들었던 그들의 삶이 현재 출연연구기관 주52시간 근무제도 논란과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취재 당시 구글 연구개발(R&D) 직원들에게 출퇴근이 자유로운데 어떻게 협업이나 근무가 원활하게 이뤄지냐고 물었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밤을 새기도 합니다.” “굳이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할 필요가 없죠. 맡은 일을 정해진 시간까지 완료하고 매니저에게 제때 보고하면 됩니다.” “연구실에 앉아 있다고 해서 성과가 제대로 나오는 건 아닙니다.” 돌아온 답은 단순했다. 

 

7월부터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52시간제 시행을 1년간 유예했던 21개 특례제외업종 가운데 근무자 수가 300인 이상인 사업장 1047곳에서 주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됐다. 연구개발 분야도 이번 적용 대상에 포함되면서 정부 출연연구기관 17개 기관이 노사 합의에 따라 52시간 근로제를 본격 시행했다. 기관 및 업무 특성 등에 따라 선택적 근로시간제나 재량근무제 등이 도입됐다. 

 

그러자 근무환경까지 혁신한 구글을 추켜세우던 언론을 비롯한 오피니언 리더들은 태도를 싹 바꿨다. 과학기술 무한경쟁 시대에 주52시간 근로제로 저녁 6시에 연구소 불이 꺼진다며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고 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경쟁기업이나 경쟁국은 신기술 확보에 가속페달을 밟는데 우리 기업 연구소들은 저녁이면 불이 꺼지는 상황이라며 R&D 분야만큼은 예외로 하자고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저녁 6시면 불꺼지는 연구소’ 담론을 주도하는 논리는 명확하다. 국가경쟁력이 약화되고 미래 먹거리가 불투명해진다는 논리다. 한발 더 나아가 주52시간 근로제 자체가 잘못됐다는 뉘앙스도 읽힌다. 

 

그러나 국가경쟁력과 연구개발 성과 혁신, 미래성장 동력이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주52시간 제도 시행 이전에는 이렇다 할 연구개발 성과가 나왔는지 따져볼 일이다. 반대로 주52시간 제도를 적용하지 않고 불철주야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으면 한국의 미래를 밝혀줄 연구성과가 나오는지도 의문이다. 

 

더군다나 새 정부 들어 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장 강조되는 핵심 키워드는 ‘기초연구’, ‘창의적, 도전적인 연구’다. 개발과 성장이 화두였던 과거 빠르게 선진국을 추격하자는 논리에서 벗어나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창의적인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익숙하다. 

 

기업인 구글과 공공 출연연구기관은 사정이 다를 수 있으나 연구개발이라는 본질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도전적인 R&D가 혁신을 일으킨다는 게 본질이다. 그런 점에서 외국 혁신기업의 창의성을 높이는 근무환경에 대해서는 추켜세우면서 국내 출연연구기관의 52시간 근로제 적용으로 국가의 앞날이 어둡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다.   

 

“연구과제를 맡은 연구자들은 어떡해든 정해진 기한 내에 성과를 내야 합니다. 주52시간 근로제 도입과 관계없이 말입니다. 후속 연구비를 받아내려면 어쩔 수 없지요. 저녁 6시 컴퓨터와 불을 끄더라도 밤을 새워 연구결과보고서를 작성할 일도 생길 겁니다. 그런데 연구실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하면 우수한 연구성과가 나올까요.” 최근 만난 한 출연연구기관장의 말이다. 

 

연구성과의 우수성이 연구시간에 비례하는 시대는 지났다. 국가 미래 먹거리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에서 나온다면 더욱 그렇다. 몇 년 뒤에도 국가경쟁력 혁신의 미래가 어둡다고 주52시간 근로제 탓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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