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이타심의 탄생

2019.07.13 10:41
사람은 세 살이 되면 슬슬 나와 다른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하고 타인의 입장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은 세 살이 되면 슬슬 나와 다른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하고 타인의 입장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은 날때부터 선할까, 아니면 백지로 태어난 후 선함은 오로지 배움과 훈련을 통해서만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일까?

공감에는 크게 두 가지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감정의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다. 문에 손을 쾅 찧은 사진을 보면 그 손이 타인의 손일지라도 내 손이 다 아픈 것 같은 고통이 전해진다. 고통받는 타인의 사진 같은 것을 보면 나의 뇌에서도 고통과 관련된 반응이 관찰되거나, 잔뜩 인상 쓰고 있는 얼굴을 보면 내 표정도 어느정도 함께 일그러지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의식과 상관없이 반사적으로 타인의 감정이 내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것이 1차적 공감이다. 또 다른 예로는 아이들의 경우 하나가 울기 시작하면 얼마 안 있어 다같이 울어버린다. 그 틈에 있으면 어른도 울고 싶어 진다. 이렇게 특히 부적(negative) 감정들은 쉽게 전염되며 우연히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보통 우리가 진짜 ‘공감(empathy)’이라고 부르는 것은 ‘연민의 정(sympathy)’과 가깝다. 어떤 사람의 괴로움을 내 것처럼 함께 느낄 뿐 아니라 여기서 더 나아가 상대가 저런 감정을 느끼는 원인에 대한 ‘이해’가 추가된다. 여기서 나아가 내가 아닌 ‘타인’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나의 이익과 상관없이 도움 행동을 보이는 것을 ‘이타심(altruism)’이라고 부른다.

의외로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고 감정을 함께 잘 느끼는 정도, 즉 감정의 전염이 잘 일어나는 정도는 연민이나 이타심과 큰 관련을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아기 원숭이들도 다른 원숭이들이 울면 이에 영향을 받아 함께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 이후의 대응이 이타적인 방향과는 달라서, 우르르 몰려와 더 이상 큰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울고 있는 원숭이를 몸으로 덮어버리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De Waal 2008).

타인의 불편함이 감정의 전염을 통해 나의 불편함이 되었을 때 타인의 불편함을 제거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이타적인 행동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는 ‘고통받고 있는 타인’을 해체하거나 무시하는 다소 무지막지한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원숭이들과 달리 침팬지들의 경우 같은 상황에서 울고 있는 침팬지를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등 타인의 괴로움을 제거하기 위한 적극적인 도움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문제의 ‘진짜’ 원인을 해결해서 타인의 고통을 줄이려는 것은 다소 고차원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 만 세 살 정도가 되면 조금씩 이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피츠버그대 심리학자 마가리타 스베트로바(Margarita Svetlova)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아이들에게 머리핀이나 담요를 가져오게 유도하는 과제를 한다. 한 조건에서는 물건을 핀으로 고정하거나 담요로 싸는 놀이를 하는 등 단순히 놀이의 필요를 위해 물건이 필요한 상황이었고(놀이 조건) 다른 조건에서는 같이 노는 어른(실험자)이 핀과 담요를 개인적, 정서적인 이유로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정서 조건). 예컨대 실험자가 머리카락에 눈을 자꾸 찔려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추워서 덜덜 떠는 모습을 연기하도록 했다. 마지막 조건에서는 정서 조건과 똑같이 함께 있는 어른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건네 줘야하는 물건이 아이 본인의 물건으로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이타심’ 조건이었다.

그 결과 전반적으로 30개월 아기가 18개월 아기에 비해 모든 조건에서 물건을 더 잘 건네 준 것으로 나타났다. 놀이 조건과 정서 조건에서는 거의 100% 실험자에게 물건을 잘 건네 주었으나 이타심 조건에서는 3번 중 2.5번 정도로 물건을 건네 준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래도 자기 물건을 건네 줄 때에는 다소 망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18개월 아기들에 비해서는 (3번 중 2번 건네 줌) 더 높은 빈도로 이타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아기들이 얼마나 빨리, 자발적으로, 또 물건을 가져다 달라는 직접적인 지시 없이 간접적인 감정 표현만으로도 상대방의 욕구를 파악하고 도움 행동을 보이는지, 즉 얼마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움을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예컨대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만 보고 바로 담요를 건네면 8점 만점, ‘추워’ 같은 말을 듣고 담요를 건네면 7점, ‘나를 따듯하게 해 줄 뭔가가 필요해’라는 말을 듣고 행동에 나서면 6점, ‘담요’라는 말을 들으면 5점, ‘나한테 담요 좀 가져다 줄 수 있니?’라는 말을 듣고 행동에 나서면 1점이었다.


그 결과 18개월 아기들은 놀이 조건에서는 평균 5점 정도, 정서조건과 이타심 조건에서는 약 2.5점 정도의 자발적 도움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30개월 아기들은 놀이 조건에서 6.5점, 정서 조건에서 6점, 이타심 조건에서 4점 정도의 자발적 도움을 보였다.

 

Margarita Svetlova 자료

연구자들은 세 살 정도가 되면서 이타적인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에 대해 ‘자아’의 형성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세 살이 되면 슬슬 나와 다른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하고 타인의 입장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나와 다른 타인의 욕구를 이해하는 능력이 발달하는 것이 이타심 발현의 기반이 되며, 인간의 경우 타인에 대한 이해력이 향상되면서 자연스럽게 이타심도 향상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타인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꼭 이타적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사이코패시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 상태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지만 이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통제하는데 사용하지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쓰지 않는다. 아이들의 경우 30개월이 되면 18개월때보다 ‘내 물건’ 같은 소유에 대한 이해 또한 증가하므로 18개월일 때 보다 되려 자신의 물건을 남에게 주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이해의 향상이 이타심의 발현과 관련을 보인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회적 동물로 타고나서 다른 어떤 동물보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데 열심인 인간의 숙명이 한편으로는 우리를 다른 어떤 동물보다 이타적이기 쉬운 동물로 만들어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고자료
-De Waal, F. B. (2008). Putting the altruism back into altruism: the evolution of empathy. Annu. Rev. Psychol., 59, 279-300.
-Svetlova, M., Nichols, S. R., & Brownell, C. A. (2010). Toddlers’ prosocial behavior: From instrumental to empathic to altruistic helping. Child Development, 81, 1814-1827.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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