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없는 '마법의 물질’을 설계한다

2019.06.28 18:41
파동에너지극한제어연구단 구성원들이 대전 유성구 한국기계연구원에 위치한 연구실 건물에서 포즈를 취했다. 세상에 없는 물성을 지니는 메타물질을 설계하고 있다. 사진 제공 홍덕선 작가
파동에너지극한제어연구단 구성원들이 대전 유성구 한국기계연구원에 위치한 연구실 건물에서 포즈를 취했다. 세상에 없는 물성을 지니는 메타물질을 설계하고 있다. 사진 제공 홍덕선 작가

주사위 모양의 말랑말랑한 물체를 누른다고 해보자. 아래로 납작해지면서 옆으로 볼록 튀어나올 것이다. 고무도, 찰흙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철이나 콘크리트도 다 이런 현상을 보인다. 반대는 어떨까. 누르면 홀쭉해지고 당기면 두꺼워지는 마법 같은 물질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학주 파동에너지극한제어연구단장(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연에는 없지만, 물리학과 기계공학의 힘을 빌면 만들 수 있다. 여러 특성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조절하면 자연에 없는 특성을 지닌 물질이 태어날 수 있다. ‘메타물질’이다.

 

메타물질은 생각보다 일상에 가까이 와 있다. 지난해 8월, 주사바늘을 쓰지 않고도 약물을 피부 안쪽에 전달할 수 있는 패치형 기술이 국내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주삿바늘의 공포에서 해방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평도 나왔다. ‘나노마이크로 DNA 니들 패치’라는 이름의 이 기술의 핵심 기술 중 하나는 나노 구조를 제작하는 기술을 응용해 만든 미세한 돌기였다. 이 돌기를 표면에 가득 세운 얇은 패치를 피부에 붙이면, 피부 안쪽의 수분에 의해 돌기가 녹으면서 안에 있던 약물을 정확히 원하는 곳에 전달한다. 돌기 길이가 1㎜가 채 되지 않는 데다 털처럼 가늘어 붙여도 아픈 느낌이나 출혈이 없다. 적은 약물을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보낸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기술을 개발한 정준호 한국기계연구원 나노융합기계연구본부장은 연구소기업 ‘에이디엠 바이오사이언스’를 지난해 7월 창업해 제품 개발에 돌입했다.

 

통증 없는 약물 전달로 이미 유명세를 탔지만, 사실 이 기술에는 언론에 별로 소개되지 않은 ‘킬러 기술’이 하나 더 숨어 있다. 약물전달 속도를 높이기 위한 초음파 기술이다. 이 단장은 “초음파로 가열하는 기술을 더하면 약물 전달 속도를 기존의 3배 이상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메타물질로 만든 렌즈(메타렌즈)가 쓰인다.

 

초음파는 짧은 시간에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횟수로 진동을 하는 소리다. 일종의 파동이다. 바다에서 치는 파도가 배를 밀듯, 파동에는 에너지가 있다. 초음파 역시 에너지를 갖고 있어서, 피부에 쐬면 열 에너지로 바뀌며 피부의 온도를 높일 수 있다. 온도가 올라가면 약물의 흡수율도 높아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피부 표면에 초음파를 가하면 표면이 주로 가열돼, 약물이 들어간 표면 아래 ‘진피층’에는 열이 별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껏 약물을 통증없이 넣었는데, 피부 표면만 뜨거워지고 정작 약물의 흡수 효율은 높아지지 않는 단점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연구단은 메타렌즈를 써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초음파를 표면이 아닌 피부의 원하는 층에 모이게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다. 마치 볼록렌즈를 이용해 빛을 한 곳에 모으는 것과 비슷하다. 이 기술로 표피는 온도가 오르지 않고 진피만 가열해 약물 흡수 속도를 높인다.

 

연구단의 정현준 박사(왼쪽)과 원세정 박사가 마이크로LED를 효율적으로 옮길 수 있는 메타물질 응용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메타물질은 특이한 물성을 구현해 기존 기술이나 재료로는 할 수 없던 일들을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사진 제공 홍덕선 작가
연구단의 정현준 박사(왼쪽)와 원세정 박사가 마이크로LED를 효율적으로 옮길 수 있는 메타물질 응용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메타물질은 특이한 물성을 구현해 기존 기술이나 재료로는 할 수 없던 일들을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사진 제공 홍덕선 작가

소리 구부리고 빛 흡수하고 낯선 특성 구현하는 ‘메타물질’

 

초음파만이 아니다. 빛(가시광선), 적외선 등 파동의 성질을 갖는 다양한 존재라면 다 응용할 수 있다. 이 단장은 특히 ‘설계’를 통해 메타물질 또는 메타구조를 만들고 있다. 건축가, 또는 디자이너가 일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도시를 생각해 보자. 아파트단지를 만들면 고층건물이 여럿 들어서며 주변에 부는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바다에 방파제를 설치하면 파도의 주기와 방향, 세기 등이 변한다. 마찬가지로 수백㎚대의 파장을 지니는 빛(가시광선)이 반사하고 굴절하는 특징을 바꾸려면 그 정도 크기의 미세한 구조물을 재료 표면에 미세하게 만들면 된다. 이 단장은 “구조물의 형상과 크기, 배치, 간격 등을 잘 설계하면 원하는 물질의 성질을 구현할 수 있다”며 “들어온 파를 모두 흡수하거나 투과를 반대로 되게 하는 등의 새로운 특성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쉽지는 않다. 작은 구조물을 재료나 물체 표면에 만드는 일 자체가 일단 고난의 연속이다. 이것을 직접 만드는 기술을 지닌 곳도 세계적으로 드물다. 원하는 특성을 내는 구조물을 설계하는 일도 어렵다. 이 단장은 “전기적 성질과 자기적 성질을 설명하는 복잡한 물리학 방정식(맥스웰방정식)을 이용해 계산을 하는데, 하나의 조건을 바꾸면 다른 조건도 바뀌는 등 매우 난해하다. 때로는 문제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슈퍼컴퓨터를 동원해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출범한 파동에너지극한제어연구단은, 이런 어려움을 뚫고 메타물질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응용으로 연결하는 성과를 여럿 만들어 냈다. 포스텍 노준석 교수와 서울대, LG디스플레이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빛을 조절하는 거울대칭 금나노입자’도 그 중 하나다.  지난해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표지논문을 장식했다. 가시광선과 근적외선에서 빛을 90% 이상 흡수하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복잡한 무늬를 나노 구조로 합성해 이를 이용해 빛의 회전 특성(편광)을 변화시키는 기술이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자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탄소 한 층으로 구성된 단원자층 소재인 ‘그래핀’을 이용해 투명하면서도 전파(마이크로파)를 흡수할 수 있는 메타구조체도 개발했다. 이 단장이 실제로 보여준 샘플을 보니 투명한 재료 표면에 희미하게 미확인비행물체(UFO)를 떠올리게 하는 마름모 꼴의 비트맵 무늬가 보였다. 눈에는 단순히 그림을 희미하게 그린 무늬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최적화시켜 설계한 미세한 메타구조가 인쇄돼 있어 8~12GHz(기가헤르츠)의 주파수를 갖는 X밴드 모든 영역의 마이크로파의 반사도를 크게 낮췄다. X밴드 마이크로파는 레이더 등에 널리 쓰이는 마이크로파다. 이 단장은 “기존의 스텔스 전투기의 경우 레이더 마이크로파를 흡수하는 도료를 표면에 칠하고 전투기 구조를 반사를 줄이도록 설계해 스텔스를 구현했는데, 조종석 등의 투명한 영역에는 적용하지 못했다”며 ‘이런 곳에 단순히 이 구조를 붙여서 스텔스를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단 연구원 및 직원들과 대화중인 이학주 단장(가운데). 사진 제공 홍덕선 작가
연구단 연구원 및 직원들과 대화중인 이학주 단장(가운데). 사진 제공 홍덕선 작가

군, 산업현장 등에 필요한 특성 다양하게 구현

 

이 단장은 “메타물질은 군에서 응용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말했다. 빛이나 소리, 열에서 발생하는 적외선 등은 전투기나 잠수함 등에서 적에게 탐지되기 쉬운 요소다. 이 때문에 최신예 전투기는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마이크로파에 스텔스를, 잠수함은 소리에 대한 스텔스를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항공기 배기구의 열처럼 기존의 기술로는 없앨 수 없는 것도 많다. 조형희 연세대 교수팀은 연구단과 함께 적외선과 레이더 모두에서 스텔스 기능을 발휘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기술은 실제로 한국 국군에 의해 2030년대까지 항공기와 함정 등에 실용화될 전망이다.

 

마이크로발광다이오드(마이크로LED)를 매우 높은 효율로 전사하는 공정을 개발하는 것도 이 단장의 최근 관심사다. 마이크로LED는 텔레비전 등 디스플레이에 많이 쓰인다. 140인치 대형 디스플레이에는 2500만 개가 들어간다. 이 디스플레이를 만들려면 반도체 웨이퍼 위에 있는 마이크로LED를 디스플레이 회로에 넣는 공정이 필요하다. 현재 세계 최고 기술이 1초에 7개 정도를 옮긴다. 2500만 개의 마이크로 LED를 옮기려면 6주가 걸린다. 제작 시간 대부분을 LED를 옮기는 데 써야 하는 것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 단장은 “이 경우 마이크로 LED 전체의 소자 값이 1억 원인데 이를 회로에 옮기는 비용이 7000만 원 든다”며 “이 과정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마치 도장처럼 한꺼번에 여러 개의 마이크로LED를 위에서 ‘찍어서’ 원하는 부위에 옮기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원세정 박사(오른쪽)와 정현준 박사가 마이크로LED를 전사하는 장비를 운영하며 마이크로LED를 확대해 보고 있다. 메타물질은 다양한 곳에 생각하지 못했던 효용을 창출하고 있다. 사진제공 홍덕선 작가
원세정 박사(오른쪽)와 정현준 박사가 마이크로LED를 전사하는 장비를 운영하며 마이크로LED를 확대해 보고 있다. 메타물질은 다양한 곳에 생각하지 못했던 효용을 창출하고 있다. 사진제공 홍덕선 작가

 

가장 어려운 부분은 LED 디스플레이가 빨강 초록 파랑 세 가지 LED를 이용하는데 세 LED가 높낮이가 달라 한꺼번에 잡아 옮기기 어렵다는 점이다. 평평한 기기로 세 LED를 찍어서 옮기는데, 키가 큰 쪽에 맞추면 낮은 LED가 찍혀 올라가지 않아 화소가 빠진다. 키 낮은 LED에 맞추면 키 큰 LED가 눌려 부서진다. 이 단장과 김재현 기계연 나노응용역학연구실장팀은 길이는 늘어나지만 힘은 더 증가하지 않는 특이한 특성을 지닌 메타물질을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위에서 키가 다른 두개의 LED를 동시에 집기 위해 접근할 경우, 키 큰 LED에 닿은 부분에는 힘이 가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키 작은 LED를 향하는 부분의 길이는 길어져 결국 두 LED를 모두 안전하게 집을 수 있게 된다. 이 단장팀은 현재 이 기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해 가며 최적화하는 중이다.

 

이 단장은 세계의 메타물질 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연구 성과를 내는 한편 이를 응용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원천기술을 개발하면서 일부는 기술창업으로, 일부는 기술이전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미 나노마이크로 DNA 니들패치와 메타물질 그래핀을 연구하는 연구팀이 기업 두 곳을 창업했고, 마이크로 LED 전사 기술이나 초음파 응용, 수중 흡음기술 등을 추가로 올해 내에 설립할 계획도 세웠다.

 

원천기술은 세상에 유례없는 메타물질 설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메타물질의 구조와 성능, 응용 등을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누구라도 관심을 갖는 물질을 검색해 찾아보고 원하는 메타물질 데이터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했다. 없을 경우 설계와 해석을 그 안에서 할 수도 있다. 메타물질 공학설계플랫폼(EDPM)이라고 이름 붙인 이 시스템은 그 동안 직관에 의존해 설계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구현할 수밖에 없던 메타물질 개발 과정을 혁신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단장은 “원천기술이 응용으로 넘어가려면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큰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를 숙원사업으로 정해 돌파해야 한다”며 “EDPM은 목표를 정하고 원하는 물성을 설계를 통해 구현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숙원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체계적 설계, 계획적 접근으로 메타물질 연구를 과학화합니다” 

 

이학주 파동에너지극한제어연구단장. 사진제공 홍덕선 작가
이학주 파동에너지극한제어연구단장. 사진제공 홍덕선 작가

이학주 파동에너지극한제어연구단장의 집무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슬로건인 ‘극한을 넘어서(Beyond the limit)’였다. 스포츠스타의 방에서였다면 인체의 한계를 넘어선 자아성취나 무한한 노력을 떠올렸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단장은 나노를 전공한 기계공학자이나 물리학자다. 그는 “‘메타’의 여러 뜻 가운데 하나가 ‘넘어서’”라며 “이 말에 메타물질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의 목표와 자부심이 동시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슬로건은 언뜻 나노세계의 도래를 예고했던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말 “바닥에는 많은 공간이 있다(There’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를 떠오르게 했다. 둘 다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한 한계 너머에서 새로운 것을 상상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파인만은 나노라는 신세계에 영감을 줬고, 이 단장은 메타물질이라는 낯선 물질의 세계를 탐색하고 있다.

 

언뜻 추상적인 목표를 탐색하는 것 같지만, 이 단장은 철저한 설계자이자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연구에 접근하고 있다. 그는 메타물질과 메타구조를 ‘설계’하듯, 그는 2014년부터 9년 동안 이어질 연구단의 활동도 대단히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실현하고 있었다. 그는 “원천기술의 응용을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그에 걸맞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하향식(탑다운) 방식을 고민했다”며 “실제로 응용할 수 있는 지식을 창출하고 비즈니스(사업)과 과학이 함께 만나게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매년 6만 5000개의 제품을 만들고 있는 미국 기업 3M을 오래 연구했다며 예로 들었다. 그는 “원래 미국 미네소타의 광산기기 회사였던 3M은 46개의 코어(핵심) 기술을 정해놓고 시대나 환경이 변하면 거기에 맞춰 조금씩 변화하며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며 “과거 OHP 기기와 필름을 만들어 팔던 회사도 3M이고 오늘날 간판이나 텔레비전 등의 액정(LCD) 디스플레이에서 빛을 밝게 반사하는 기술로 돈을 버는 회사도 3M이다. 빛을 밝게 반사하는 기술이라는 코어기술을 두고 응용하며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하향식 설계 외에도 “여러 기능을 갖는 메타물질를 개발한다”, “실제로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 “광대역 주파수에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손실이 적어야 한다” 등 기술적 난제 해결을 위한 5가지 과제를 정해 실천 중이다. 모두 ‘쓸모있는’ 기술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그는 “유명 학술지에 뛰어난 물성을 지닌 메타물질이 보고됐지만, 보면 수율이 2~3%대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며 “이것도 의미 있는 연구지만, 우리 연구단은 그보다는 현실에 응용되는 데 필요한 과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메타물질은 1967년에 처음 아이디어가 나왔고 1989년에 이론이 체계화됐는데 전세계적으로 본격적으로 응용된 사례가 없다. 아직은”이라며 웃었다. 아직이라는 말에서 곧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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