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는 비록 실패했지만 너는 다를 거야"

2019.06.29 06:00
타인에 대한 악담이 자신을 방어하려는 심리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타인에 대한 악담이 자신을 방어하려는 심리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얼마 전 우연히 어떤 한인 커뮤니티에서 한 여자분이 일단 미국으로 온 다음 일자리를 찾고 싶다고 한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렇구나 힘들겠다’ 정도의 감상이었는데 충격적이었던 것은 '꿈도 꾸지 말고 영어나 배워라. 집안 일이나 잘 해라' 같은 댓글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던 것이었다. 어렵긴 하겠지만 저렇게까지 말할 건 아닌데 혹시 대상이 여성이기 때문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냥 미국 생활을 즐기라"면서 "주위에 일한다고 '까부는' 형수들 때문에 부부싸움 하는 가정이 많다"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아직도 어떤 사람에게는 남성이 하는 도전은 ‘야망’이지만 여성이 하는 도전은 그냥 ‘까부는 일'에 불과한가보다.

혹 자신의 처절한 경험담이라고 해도 "어렵고 험난한 길이고 나는 못했지만, 너는 나와 다르니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정도로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더 옳은 말이기도 하다. 100명 중 한 명만 되는 가능성이 낮은 일이라고 해도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한 명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일반적으로 자존감의 기반이 탄탄하지 못할수록 실패에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일이 잘 안 되었을 때 쿨하게 이를 인정하기보다 내가 못 한 게 아니라 애초에 그 일이 불가능한 종류의 것이라거나, 아니면 별로 매달릴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고 하는 등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 합리화에 나선다. 흔히 무엇 하나에 자아 의탁을 심하게 한 나머지 그것의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내가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을 때 생기는 일이다.

자아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너도 못 할 거라고 포기하라고 악담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들도 못하면, 보라고 나만 못 한 게 아니라고 내 탓이 아니라 그 일이 이상한 거라고 좀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기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꿈도 쉽게 꺾을 수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렇게 ‘다른 사람들도 못 했어. 너도 못 할 걸’ 같은 용기를 꺾는 말이 실제 당사자의 성과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스위스 프리부르대 베모 부에첼 교수는 사람들에게 과제를 하면서 진행 상황에 대해 파트너와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다. 먼저 과제를 경험한 사람이 과제를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에게 ‘나는 해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못 하더라’고 하거나 ‘나도 했고 다른 사람들도 하더라’ 라고 이야기했을 때 이야기를 들은 사람의 성과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오만한 태도로 아마 특별히 잘나지 않은 너네들은 못 할 거라는 메시지를 준 사람과 함께 있었을 때, 그렇지 않았을 때에 비해 사람들의 끈기와 성과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반대로 겸손하게 나도 했으니까 너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성과가 향상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자기고양을 위해 타인을 깔아뭉개는 시선을 보내는 사람은 사람의 용기를 꺾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성과가 더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가와 억압의 악영향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여성에게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선뜻 응원해주는 이들보다 기를 꺾으려 드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일까?

누가 내게 “너는 안 될 걸", "너도 못할 걸”이라고 할 때, 자신의 실패를 합리하기 위해서이거나 또는 성공했을 경우 자신의 대단함을 과시하기 위해서, 즉 결국 자기 고양감을 느끼기 위해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자. 그들의 자존감 문제는 결코 내 문제가 아니므로, 그런 의도에 휘말려 피해를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 굳이 나에게 잘 안 될 거라는 악담을 하는 이유는 나의 성공이 본인에게 있어 자존감의 위협이 되기 때문이라는 점도 기억해보자. 내가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일수록 나의 성공 가능성은 높은 것일지도 모른다.

-Buechel, B., Mechtenberg, L., & Petersen, J. (2018). If I can do it, so can you! Peer effects on perseverance.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 Organization, 155, 301-314.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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