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아의 닥터스]“北도 당뇨병은 사회문제, 남북 윈윈모델 찾아야"

2019.06.17 12:00
이미지 확대하기김신곤 교수가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김신곤 교수가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조남한 국제당뇨병연맹(IDF) 회장(아주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을 비롯한 한국과 중국 의사, 의료관계자 5명이 지난 5월 3일부터 7일까지 북한 평양 과학기술전당에서 열린 ‘평양당뇨병의학과학토론회’를 다녀왔다. 매년 열리는 이 행사는 북한의 당뇨병 전문가 200명이 모이는 북한 내 최대 당뇨병 학술대회다. 

 

당뇨 전문가인 김신곤 고려대 안암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이번 행사에 참여한 세 명의 한국 측 인사 중 한 명이다. 김 교수는 이번 행사에서 ‘아시아인에게 당뇨병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강연했다. 이달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진료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당시 경험을 잊을 수 없다”면서 "지금은 정치적으로 갈라진 냉혹한 현실이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서로 힘을 합쳐 ‘한반도 당뇨병 관리모델’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평향 학술대회에 참가한 계기는 무엇인가 

이미지 확대하기국제당뇨병연맹(IDF) 대표단이 북한 평양 류경안과병원을 방문한 모습. 서 있는 남성들 중 가장 오른쪽부터 조남한 IDF 회장, 이문규 2019 부산 IDF 학술대회 조직위원장, 김신곤 고대안암병원 교수, 리눙지 IDF WPR 회장이다. 김신곤 교수 제공
국제당뇨병연맹(IDF) 대표단이 북한 평양 류경안과병원을 방문한 모습. 서 있는 남성들 중 가장 오른쪽부터 조남한 IDF 회장, 이문규 2019 부산 IDF 학술대회 조직위원장, 김신곤 고대안암병원 교수, 리눙지 IDF WPR 회장이다. 김신곤 교수 제공

북미 대회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안타깝게도 최근 방북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에서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보니 우연히 IDF 대표단 자격으로 북한에 들어갈 기회를 얻게 됐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두고 있는 IDF는 1950년에 설립된 비영리 단체다. 당뇨병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을 높이고 당뇨병의 관리와 치료법 개발을 목적으로 운영되며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원하는 전 세계 168개국 당뇨병협회가 회원으로 할동하고 있다. 


북한에도 우리 대한당뇨병학회처럼 조선병원협회 옆에 당뇨병위원회가 있다. 이곳에서 매년 한 번씩 ‘평양당뇨병의학과학토론회’를 열고 있다. 북한에서는 학술대회를 토론회라 부른다. 북한당뇨병위원회가 중국에 있는 IDF 서태평양지역(WPR)을 통해 초청장을 보냈다. 그래서 참가하게 됐고, 북측에서는 우리 방북 일정에 맞춰 학술대회를 준비했다고 한다.

 

올해 행사에는 IDF 회장인 조남한 아주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IDF 2019 부산학술대회 조직위원장인 이문규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IDF WPR 회장인 리눙지 중국 베이징대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중국 인슐린회사 관계자 등 총 다섯 명이 참가했다. 

 

북한당뇨병위원회가 우리를 초대한 이유는 비록 남북관계는 경색돼 있어도 당뇨병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북간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 내분비내과 의학자들은 2014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IDF WPR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년에 한 번 정도 IDF나 IDF WPR, 중국 일대일로프로젝트 학술대회에 2~3명 정도씩 참가하고 있다. 

 

북한에서 가장 큰 당뇨병 연구기관인 최경태내분비연구소의 신봉철 소장과, 동료 연구자들이 주로 온다. 2014년 당시 IDF WPR 회장이 현재 IDF 회장인 조남한 교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처음 봤을 때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는데 지금은 학술대회에서 여러 번 마주치다 보니 서로 신뢰가 쌓이고 있다.

 

-학술대회에서 강연을 했다고 들었다. 주로 어떤 내용이었나 

 

참석자들은 대부분 최경태내분비연구소, 평양의학대학처럼 북한 곳곳에서 온 당뇨병 전문가들로 보인다. 이번 행사에 한국과 중국 대표들은 주로 전 세계 당뇨병 발생률과 심각성, 아시아 당뇨병 위기와 대응, 당뇨병을 치료하는 새 방법, 아시아인의 당뇨병 병인 등 당뇨병 관련 최신 연구 성과를 소개했다. 각자 30~40분씩 맡은 주제를 강연했다.

 

북한 전문가들도 5명이 각자 10분씩 발표를 했다. 주로 북한의 당뇨병 현황이나 당뇨병 환자를 장기간 추적 조사한 결과, 당뇨병 합병증과 유전자 다양성을 소개했다. 의학적으로 아주 높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북한에서도 전문가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앞으로 남북한 관계가 나아지면 공동 연구를 통해 글로벌 학계에서 좋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에서도 당뇨병은 심각한 사회문제인가

 

이미지 확대하기북한 내 당뇨병 발생률(%). 김신곤 교수 제공
북한 내 당뇨병 발생률(%). 김신곤 교수 제공

북한에서도 최근 당뇨병 발생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신봉철 조선병원협회 당뇨병위원회 위원장이 이번 학술대회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5년 20세 이상 성인의 당뇨발생률은 4.56%에서 2018년 4.82%로 늘었다. 이는 2000년대에 비해 급격한 증가세라고 했다. 북한에서 평양을 포함한 9개 지역에서 20~79세 대상 무작위로 샘플을 뽑아 당뇨병 발생률을 조사한 결과인데, 비교적 정확한 편이라고 북한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북한의 당뇨병 발생 패턴은 1980년대의 한국 상황과 비슷하다. 과거 ‘부유한 사람만 걸리는 병’이라는 별명처럼 북한에서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발병률이 높다. 그래서 당뇨병 환자들은 농촌(27%)보다는 평양 같은 도시(74%)에 많이 몰려 있다.

 

과거 한국이나 지금의 북한에서 부유한 사람에게 당뇨병 발병률이 높은 이유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 매우 가난했다가 갑자기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식생활이 변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인슐린을 만들어내는 기관인 췌장이 비교적 부실하다. 그런데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 과거보다 식사량이 늘어나면서 췌장에 무리가 가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30년간 한국에서는 당뇨병 발생률이 8배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는 3배 정도 증가한 것과 비교된다. 당뇨병에 취약한 유전적인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이런 지표는 한편으로는 한국의 당뇨병 예방 정책이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환자 중심의 교육이나 예방에 집중하기보다는 의사가 주도하는 투약과 치료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절을 겪은터라 당뇨병 발생률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20세 이상 평양시민 중 당뇨병 환자는 9%에 이른다. 앞으로 북한이 경제적으로 윤택해질수록 당뇨병이 급증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우리의 실패를 북한이 답습하지 않도록 남북이 함께 힘을 모아 ‘한반도 당뇨병 관리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에서는 당뇨병을 어떻게 대응하는가

 

한국을 비롯한 의료 선진국과 북한이 당뇨병을 대응하는 방법은 많이 다르다. 어쩌면 북한에서 당뇨병을 대응하는 방법은 선진국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부분 서방 국가에서는 당뇨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북한이나 쿠바처럼 사회주의 국가는 이보다는 예방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입원환자 병상이 150개나 될 정도로 규모가 큰 최경태내분비연구소의 임무 중 하나는 당뇨병 환자를 진단, 치료하고 당뇨병에 대해 연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주요 활동은 5년 또는 10년 주기로 국가 당뇨병 예방 정책을 운영하는 것이다. 또 북한에서는 의사들이 특정 지역을 맡아 담당하는 주치의제를 실시하고 있다. 의사 한 명당 130가구를 책임지고 예방 접종이나 진료, 보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예방정책이나 주치의제만으로는 당뇨병 발생률을 줄일 수 없다. 당뇨병을 발견하고, 병의 진행 상황에 맞게 치료하는 일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하지만 북한의 의료 현실은 당뇨병에 걸린 환자의 합병증을 검사하는 장비와 치료약제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환자들은 손끝에서 핏방울을 내 혈당수치를 재는 혈당측정기를 각자 하나씩 갖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지역 병의원에도 없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서 당뇨병 환자에게 처방하는 치료제 ‘메트포르폴민’와 ‘설폰요소제’는 약 30년 전에 개발된 것이다. 10년 전쯤 개발한 약은 매우 귀하다. 경제 제재의 여파로 약제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탓이다.

 

이런 이유로 한약이나 천연물신약을 이용한 고려의학(한의학)으로 당뇨병을 치료하는 일이 많다. 의사들은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 약초를 찾아 약으로 만들어 논문을 내기도 한다. 국내였다면 세포 실험이나 동물실험을 통해 천연물 신약의 효과를 확인하지만 북한에서는 사람에 직접 써보고 치료효과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 당뇨병 문제 해결하려면

이미지 확대하기김신곤 교수는 질환을 찾아내는 AI를 도입하면 한국 의사가 직접 가지 않고도 북한에서 건강검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며 망막병증을 진단하는 AI를 예로 들었다. 국내에서도 최근 분당서울대병원과 서울 시립보라매병원 연구진이 개발한 AI로 망막 안저 사진(왼쪽)으로부터 망막 질환을 찾는 데 성공했다(오른쪽).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김신곤 교수는 질환을 찾아내는 AI를 도입하면 한국 의사가 직접 가지 않고도 북한에서 건강검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며 망막병증을 진단하는 AI를 예로 들었다. 국내에서도 최근 분당서울대병원과 서울 시립보라매병원 연구진이 개발한 AI로 망막 안저 사진(왼쪽)으로부터 망막 질환을 찾는 데 성공했다(오른쪽).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현재로서는 한국인이 북한에 가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진료나 치료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눈의 망막 이미지만을 보고 당뇨병 합병증인 망막병증을 진단하는 인공지능(AI)을 의료기기로 허가했다. 최근 속속 개발되고 있는 진단 AI, 원격의료 기술을 활용하면 사람이 직접 가지 않고도 건강검진 등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본다. 물론 한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북한과 협력이 가능해지면 어떤 연구를 기대하나

 

먼저 서로의 장점을 모으고 단점을 보완해 당뇨병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남한은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의료 기술과 수많은 연구 성과를 갖고 있다. 북한은 예방의학과 주치의제라는 좋은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를 결합하면 ‘한반도 당뇨병 관리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성공한다면 한반도에서 당뇨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것을 넘어, 북한과 상황이 비슷한 개도국이 경제가 발전하는 시기에 이 모델을 적용하도록 수출도 가능할 것 같다. 

 

북한에서 다양한 천연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도 활용할 수 있다. 최근 개발된 당뇨병치료제인 SGLT-2 억제제도 사과나무 껍질로부터 약리성분을 추출한 천연물 기반 약물이다. 북한 의학자들이 개발한 약물들이 왜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지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그 성분만 추출해 효율적이고도 인체에 안전한 신약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반도는 당뇨병뿐 아니라 전 의학분야에 걸쳐 지구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중요한 연구실이 될 수 있다. 남북한 사람들은 유전적으로는 매우 가깝지만 근 70년 동안 교류가 없었고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 환경이 유전자 발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도 유전정보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을 때 유전자 발현이 어떻게 다른지 연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무척 소규모다. 한반도에서는 유전적으로 가까운 한 민족에게 수 대에 걸친 환경 변화가 건강상태 또는 질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대규모로 연구할 수 있다.
 
올해 IDF 학술대회는 12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조직위원회는 북한 의료진 50명을 초청했다. IDF 학술대회는 전세계 170여 개 국가에서 1만3000명 이상이 참여한다. 평창 올림픽에 북한 대표단이 참여했던 것처럼 정세와 관계 없이 ‘당뇨병 올림픽’에 오기를 희망한다. 앞서 가을에는 평양에서 IDF 전문가들이 북한 당뇨병 전문가 50여 명을 대상으로 집중 교육을 할 예정이다. 이처럼 한국과 북한 의학자들이 협력하는 통로가 많아져 ‘한반도형 당뇨병 모델’을 꿈만 꾸는 것이 아닌, 실제로 이룰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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