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슈퍼우먼, 결국 입을 다물다

2019.06.15 06:00
이미지 확대하기고난과 역경에도 혼자서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은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다. 픽사베이
고난과 역경에도 혼자서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은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다. 픽사베이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들 한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불평불만 하지 않으며 밝고 긍정적으로, 씩씩하게 이겨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압박이 지나치면 우울증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메릴랜드대 재스민 에이브럼스 교수는 250명의 흑인 여성을 대상으로 얼마나 ‘슈퍼 우먼’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는지 물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면 안 되고 빨리 훌훌 털어내야 하고 그러면서 능력도 출중하고 독립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잘 돌보기까지 하는 이른바 완벽하게 강인한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등의 사고방식이 연구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이런 슈퍼 우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였다. 우선 이들은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주의를 주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일과 인간관계처럼 해결해야 하는 일이 태산인 상황에서도 뭔가 지치는데 왜 지치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거나 이 정도로 힘들어하면 안 된다고, ‘불평’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 예다. 도움을 구하는 것도 약하다는 신호이므로 도움을 잘 구하지 않고 혼자 끙끙거리는 편이기도 했다.

이들은 속으로는 화가나고 슬퍼도 겉으로는 전혀 표를 내지 않고 멀쩡한 척 하는 편이었다. 계속해서 멀쩡한 척 자신마저 속이려 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힘들어 하는 자아를 숨기고 애써 강인한 자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아가 분리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을 지나치게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미 한계까지 힘든 상태임에도 계속해서 더 많은 일을 맡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일까지 대신하려는 등 분명 본인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임에도 타인을 우선적으로 돌보는 경향을 보였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강인한 사람으로 봐주는지, 얼마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여성으로 봐라봐 주는지에 따라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는 편이었다.

힘든 티를 낸다든가 도움을 구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 전반적으로 강인한 이미지에 맞지 않는 모든 행동을 적극적으로 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렇게 슈퍼우먼에 대한 강박이 심한 사람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내팽게치는 경향은 심한 우울증과도 관련을 보였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처럼 강인한 사람이 되려고 지나치게 애쓰다 보면, 외롭고 슬퍼지고 그러면서 울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연구자들은 슈퍼우먼에 대한 강박, 즉 어떤 고난과 역경을 겪더라도 티를 내면 안 되고 혼자서 잘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은 마음의 소리를 죽이고 자신의 입을 닫는 셀프 사일런싱(self-silencing)을 초래한다고 설명한다. 이들에게 있어 힘들다는 것은 곧 ‘약한 인간’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힘들다는 느낌이 들면 아예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눈을 돌려 힘들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거나 인식하더라도 무시해버린다. 자신의 감정에 입마개를 씌워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알람’이다. 감정은 나의 몸과 마음이 현재 위태롭다거나 아니면 별 문제가 없다는 정보 전달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런데 감정을 억눌러버리면 우리 안에 내재된 알람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예컨데 집에 불이 났다면 화재 경보기가 울리고 이를 통해 화재를 미리 진압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면 마음 속 경보기가 고장나는 셈인 것이다. 다 타버리기 전까지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도, 따라서 미리 대처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는 건 원래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기 때문에 완벽히 강인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사회가 특히 여성들에게 강인한 존재가 되라고 심한 압박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욱 행복하고 건강한 여성 이상의 강인하고 완벽한 존재가 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씩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내가 망가져 버리면 아무 의미 없을테니 말이다.

-Abrams, J. A., Hill, A., & Maxwell, M. (2019). Underneath the mask of the Strong Black Woman schema: Disentangling influences of strength and self-silencing on depressive symptoms among US Black women. Sex Roles, 80, 517-526.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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