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미생물은 약물도 '꿀꺽'

2019.06.14 09:13
이미지 확대하기인간의 소화에 도움을 주는 장내미생물이 약물도 섭취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엔테로코커스 페칼리스는 파킨슨병 치료제인 레보도파를 섭취해 도파민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이언스 제공
인간의 소화에 도움을 주는 장내미생물이 약물도 섭취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엔테로코커스 페칼리스는 파킨슨병 치료제인 레보도파를 섭취해 도파민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이언스 제공

장내 미생물은 인체의 소화를 대신 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런 장내 미생물이 병 치료를 위해 먹은 약물도 섭취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약물에도 장내미생물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에밀리 발스커스 미국 하버드대 화학 및 화학생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장내 미생물이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약물을 섭취할 수 있으며, 부작용을 일으키는 물질을 생산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를 이달 13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생산하는 뇌의 신경세포가 죽으며 발생한다. 신체가 떨리거나 근육이 강직되고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파킨슨병 치료제인 레보도파는 도파민을 뇌에 전달해 파킨슨병의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이다. 레보도파는 장내에서 흡수돼 뇌로 전달된다. 도파민과 달리 혈액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고 뇌에서 효소에 의해 도파민으로 변해 인위적으로 도파민의 양을 늘려준다.

 

하지만 뇌에 도달하는 레보도파는 섭취량의 최대 5%에 불과한 게 문제다. 장내에도 있는 레보도파 분해 효소가 약물이 뇌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효소의 작용을 막는 약물인 카비도파를 개발해 레보도파의 전달률을 높였다. 하지만 도달률은 여전히 환자마다 차이가 크다는 게 문제였다. 레보도파의 부작용인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이상운동증과 약의 효과가 그때그때 다른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레보도파를 중간에 채간 도둑으로 장내 미생물을 지목했다. 연구팀은 레보도파와 유사한 아미노산인 타이로신을 분해하는 미생물 효소에 주목했다. 분석 결과 우유나 김치에 있는 균류인 락토바실러스 브레비스가 타이로신과 레보도파를 모두 분해하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인간 몸속 미생물의 유전정보를 총망라하는 인간 미생물체 프로젝트(HMP)를 활용해 락토바실러스 브레비스와 비슷한 효소를 만들어내는 DNA를 가진 장내 미생물을 추적했다. 그 결과 엔테로코커스 페칼리스가 레보도파를 섭취해 도파민으로 변환해주는 미생물로 드러났다. 장내미생물이 약물을 중간에서 섭취한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 미생물은 인간 효소와 동일한 일을 하지만 이를 막는 카비도파가 미생물 세포에 침투할 수 없어 카비도파가 듣질 않는다고 연구팀은 추측했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엔테로코커스 페칼리스의 효소를 억제하는 분자를 개발했다. 연구에 참여한 바유 렉들 하버드대 화학 및 화학생물학과 박사과정생은 “박테리아를 죽이지 않고 대사만 없애준다”며 “새로운 약물 개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여기서 나아가 장내에 발생한 도파민에서 약물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물질도 미생물이 만들어낼 수 있는지 조사했다. 연구팀은 인간 분변에서 추출한 균주에 도파민만 공급함으로써 적자생존을 유도했다. 그 결과 ‘에게르텔라 렌타’라는 박테리아가 도파민을 소비해 살아남아 메타타이라민 아미노산을 생성하는 것을 밝혀냈다. 렉들 박사과정생은 “이와 같은 화학 반응은 실험실에서 만들 수 없다”며 “메타타이라민의 부산물이 약물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지만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발스커스 교수는 “이 연구는 여러 장내 미생물이 레보도파를 복용하는 환자들의 효능과 부작용을 조절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미생물의 간섭은 레보도파와 파킨슨병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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