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과학 지식을 접하는
가장 똑똑한 방법!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좋은 일은 우연이고 나쁜 일은 내 탓인가

2019년 06월 08일 12:43
이미지 확대하기외부 자극을 받아들일 때 각자의 ′필터′를 통해 소화해낸다. 긍정적인 정서도 마찬가지다.게티이미지제공
외부 자극을 받아들일 때 각자의 '필터'를 통해 소화해낸다. 긍정적인 정서도 마찬가지다. 게티이미지제공

나쁜 일이 생기면 그 나쁜 일 자체가 우리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한 번 일어난 일을 수도 없이 ‘곱씹기(rumination)’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영구적으로 반복 호출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어떤 사건과 정서의 존재 자체 못지 않게 그에 대한 ‘반응’이 정신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외부 세계의 자극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내면화하기보다 각자의 ‘필터’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소화해낸다. 이런 차이가 똑같이 충격적인 일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결과를 경험하는 데 일조한다. 이렇게 내가 주체적으로 나의 감정들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느끼고 해석할 것인지 조정하는 과정을 정서 조절(mood regulation)이라고 한다. 


보통 정서 조절이라고 하면 슬픔, 화, 좌절 등의 부정적인 정서를 쉽게 떠올리지만 인간의 정서 세계는 다양하다. ‘평온함’ 같은 각성 수준이 낮은 긍정적 정서부터 기쁨, 신남 같은 에너지 수준이 높은 긍정적 정서, 사랑과 감사 같은 사회적 정서 등 다양한 것들이 존재한다. 시몬스대 심리학과 그레고리 펠드만 교수에 따르면 부정적 정서 못지 않게 이러한 긍정적 정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정신 건강 상태가 달라진다(Feldman et al., 2008).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보이는 긍정적 정서 조절에는 성공, 연애처럼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거나 자신의 장점을 떠올려 보거나 삶에서 감사한 점들을 떠올리는 방식이 있다. 특히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기분이 들뜨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 이런 긍정적 정서 조절을 자주 쓴다고 한다. 


중요한 시험이나 발표를 앞 두고 있을 때 과거에 비슷한 일을 잘 해냈던 경험을 떠올려보는 것이나, 힘들 때 나를 도와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고 느끼는 등이 한 예다. 나쁜 일에 대한 곱씹기가 부정적 정서를 끝 없이 연장해주는 것처럼, ‘좋은 일’을 곱씹기 함으로써 긍정적 정서를 연장하는 방법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울증상이 심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와 같은 긍정적 정서 조절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쁨을 끌어올리기는 커녕 우울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기쁜 일이 생겨도 이를 별 것 아닌 일이라며 긍정적인 정서의 길이와 강도를 가라앉히는(dampening)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약 400명의 사람들에게 평소 기분이 좋거나 행복하다고 느낄 때, 얼마나 자주 ‘아 행복해~’하고 느끼는지, 얼마나 행복한 감정을 온전히 느끼려고 애쓰는지, 얼마나 기쁨을 음미하는지(음미하기)에 대해 물었다. 또한 반대로 행복할 때 얼마나 쉽게 불안해지는지, 얼마나 빨리 즐거움을 끊어내려고 애쓰는지(가라앉히기)에 대해 물었다. 


가라앉히기 관련 문항들은 다음과 같았다. ‘이걸로 좋은 운은 다 끝났어’, ‘나는 기분 좋게 여유 부릴 자격이 없어’, ’지금은 행복하지만 언제든지 다시 나빠질 수 있어’, ‘이전에도 좋아하다가 금새 실망했잖아’, ‘이 기쁨도 곧 끝날거야. 영원한 행복이란 없어’, ‘나한테 이런 좋은 일이 생길리가 없잖아.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기분이 좋으니까 일에 집중을 못하겠어’, ‘사람들이 내가 잘난척 하는 줄 알거야’.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기분이 좋다가도 금새 시무룩해진다고. 나 역시 이 문항들을 따라서 쓰다보니 괜히 같이 시무룩해졌다. 

 

연구자들은 어떤 사람들이 긍정적 정서 늘리기와 줄이기에 열심인지 살펴봤다. 그 결과 자존감이 건강하지 않고 우울증상이 심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즐거움 가라앉히기를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존감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긍정적 정서를 나태나는 일도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리하면 자존감이 건강하지 않고 우울증상이 심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긍정적 정서를 잘 음미하려 하지 않고 빨리 끊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상이 심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나쁜 일에 주의를 더 주고 더 빠르게 반응할뿐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일에는 주의를 ‘덜’ 주는 현상도 나타난다고 한다. 의식적으로든 비의식적으로든 우울증상이 적은 사람들에 비해 즐거운 일에 신경을 덜 쓰고 반응도 덜 한다는 것이다. 


보통 기분이 좋아지면 즐거웠던 기억을 더 잘 떠올리는 편인데 우울증 환자들은 반대로 즐거웠던 일을 ‘덜’ 떠올리는 경향도 나타난다고 한다. 또 과거의 즐거웠던 일을 떠올려도 지금의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이렇게 괴로운 일이 많은 것 뿐 아니라 ‘즐거운 일이 없어진다는 것’이 우울증 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의견이다. 나쁜 일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즐거운 일을 유지하고 늘리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크게 두 가지의 설명이 있다고 한다. 우선 자존감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기쁜 일이 발생하면 단순히 기뻐하기보다 복잡한 사고방식에 돌입한다고 한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이런 기쁨을 누리는 것은 뭔가 잘못 됐거나, 나의 착각일 뿐이거나, 어차피 운이 좋아서 한 번 잘 된 것뿐이고 따라서 나는 내가 진짜 잘 한 것처럼 여기에 만족하고 기뻐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들이 한 예다. 


크게 기뻐하고 나면 이후에 혹시 더 크게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다시 좋은 일을 겪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재의 기쁨을 지키는 것보다 (발생할지 안 할지 불확실한) 미래의 부정적 정서 예방을 위해 ‘현상 유지’를 택한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감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좋은 일이 하나라도 생긴 것은 참 대단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노력하면 다 잘 될 거라는 말은 환상에 불과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게 더 많은 세상에서 잘 되는 일보다 잘 안 되는 게 더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나라도 잘 되었다면 그게 참 멋진 일인 게 아닌지. 


또 불행은 자연재해처럼 나의 행위와 상관 없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이상한 양육자를 만났다든지 건강이 좋지 않다든지 좋지 않은 경제 사정 등 생각보다 나를 굳이 ‘탓’할 필요가 있는 불행은 많지 않다. 좋은 일은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쁜 일은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딘가 논리적이지 않은 것 같다.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마치 자연재해처럼 갑자기 생기는 일이라면, 돌을 맞을 때는 고통스럽더라도 떡을 받았을 땐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참고자료

-Feldman, G. C., Joormann, J., & Johnson, S. L. (2008). Responses to positive affect: A self-report measure of rumination and dampening. Cognitive Therapy and Research, 32, 507-525.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관련 태그 뉴스

동아사이언스 SNS로
최신 소식을 받아 보세요!

  • 과학동아
    과학동아페이스북 과학동아카카오스토리 과학동아트위터
  • 과학동아천문대
    과학동아천문대페이스북
  • 어과동TV
    어과동TV페이스북
관련 태그 뉴스

동아사이언스 SNS로
최신 소식을 받아 보세요!

  • 과학동아
    과학동아페이스북 과학동아카카오스토리 과학동아트위터
  • 과학동아천문대
    과학동아천문대페이스북
  • 어과동TV
    어과동TV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