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현실, 신약개발, 바이오매스···세계 1등 기술개발 주춧돌 놓다

2019.05.31 03:00

작년까지 SCI급 논문 1398편 발표 

국내외 1262개 특허출원, 585개 등록

기술이전 69건, 사업화 11건 성과 

김정규 실감교류인체감응솔루션연구단 연구원이 자체개발한 골무 모양의 도구와 HMD를 착용하고 허공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손끝을 정확히 인식해 입체 그림으로 보여준다. 사진제공 남윤중
김정규 실감교류인체감응솔루션연구단 연구원이 자체개발한 골무 모양의 도구와 HMD를 착용하고 허공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손끝을 정확히 인식해 입체 그림으로 보여준다. 사진제공 남윤중

머리에 쓰고 가상현실(VR)을 보는 장치인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속 영상은 그냥 현실 속 방의 모습이었다. 손에 쥔 도구를 이용해 ‘공’을 던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테이블 위로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공이 날아가 부딪치더니 구르고 튀었다. 상자로 테이블을 막으니 구르던 공이 상자 앞에 멈췄다. 실제와 가상현실 영상이 혼합돼 있는데, 가상의 공과 실제 테이블이 만드는 조화가 정교해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이 영상은 현실세계와 VR 등 가상공간을 통합해 몰입도를 높여 주는 ‘공존현실’ 기술을 연구하는 실감교류인체감응솔루션연구단의 신기술을 이용해 만든 혼합현실(MR)이다. 레이저를 레이더처럼 써서 주변 지형지물을 확인하는 3차원 스캐닝 기술인 ‘라이다(LIDAR)’를 사용해 실제 방을 재현한 가상공간을 만들고, 여기에 현실세계 영상을 정밀하게 결합시켜 MR를 구현했다. 1m 공간에서 오차가 픽셀 5개(2~3㎝에 해당) 이내일 정도로 정교하다.

 

연구단이 개발한 다른 기술을 응용하면, 이런 가상공간에 여러 다른 사람이 동시에 들어와 함께 물건을 쌓거나 도구를 전해 주는 등 협업이나 교육도 가능하다. 올해 7월 열리는 컴퓨터 그래픽 분야 최대 국제학회인 ‘시그래프 2019’에서 차세대 유망 기술로 선정됐다. 연구단의 유범재 단장은 “가상현실과 증강현실(AR)을 넘어서서 그 안에서 현실의 사람이 공존하고 실감 나게 교류하는 ‘공존현실’을 최초로 구현했다”고 말했다.

 

글로벌프론티어사업단 1기 단장을 이끈 세 수장들. 왼쪽부터 유범재 실감교류인체감응솔루션연구단장, 김성훈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장, 장용근 차세대바이오매스연구단장. 사진제공 남윤중, 남승준,
글로벌프론티어사업단 1기 단장을 이끈 세 수장들. 왼쪽부터 유범재 실감교류인체감응솔루션연구단장, 김성훈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장, 장용근 차세대바이오매스연구단장. 사진제공 남윤중, 남승준,

한국 과학을 ‘선진국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꾸자는 목표로 기획된 최초의 국가 주도 원천기술 개발 사업인 ‘글로벌 프론티어 사업’이 올해 첫 ‘졸업자’를 배출한다. 정보기술(IT)과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환경기술(ET) 등 미래전략 분야에서 선정된 연구단에 최대 9년간 매년 100억 원 내외를 지원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의 사업으로,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됐다. 다양한 기관과의 협력 연구를 통해 해당 분야의 국내 역량 전체를 키우는 요람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이번에 사업이 종료되는 세 연구단은 각각 IT(실감교류인체감응솔루션연구단)와 BT, ET 분야를 대표하는 연구단이다. BT인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은 9년간 집단지성으로 신약 개발에 필요한 약물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실제 후보약물을 개발해 왔다. 특히 여러 단백질합성효소(ARS)의 기능을 자세히 밝혀 이를 이용해 질환을 치료하거나 진단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ARS의 신약 표적(타깃) 가능성은 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 드러그 디스커버리’를 통해서도 발표돼 제약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연구단의 플랫폼은 의료용 약물 표적과 물질을 공장처럼 빠르게 찾아낸다고 해 ‘타깃 팩토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구단의 특별한 연구개발 과정은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하다는 평가를 받아, 지난해 9월 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가 특집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연구단의 김성훈 단장은 “국내 제약업계는 최근 많은 도약과 업적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은 혁신 신약 개발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특히 약물 표적을 발굴하기 위한 기초과학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하다”며 “기초연구가 중개연구, 임상연구를 거쳐 최종적으로 신약 개발까지 이어지도록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을 이어주는 ‘허브’ 역할을 하자는 목표로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기존 신약 후보물질 개발 기간을 평균 6년에서 절반으로 줄였고, 지난 9년 동안 신약과 진단 파이프라인이 10개 이상 진행되는 성과를 올렸다.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 연구 장면. 사진제공 남승준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 연구 장면. 사진제공 남승준

ET 분야 기술을 개발해 온 차세대바이오매스연구단 역시 올해 글로벌 프론티어 사업을 졸업한다. 연구단은 미세조류를 이용한 바이오연료와 바이오소재를 산업화하기 위한 원천기술을 개발해 왔다. 미세조류와 식물성 기름에서 바이오항공유 생산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는 새로운 촉매와 공정을 개발했다. 또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잔사물에 미생물 공정을 도입해 모유 올리고당인 ‘퓨코시락토오스’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미세조류 오일을 원료로 하는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글리세롤을 이용해 다양한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기술도 완성했다. 유전자 교정기술인 크리스퍼를 이용해 미세조류의 성장과 지질합성을 극대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바이오항공유 생산을 극대화할 수 있는 촉매도 개발했다.

 

특히 미세조류 바이오매스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유력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옥수수 등 식량을 쓰는 1세대와 나무를 쓰는 2세대에 비해, 식량 고갈 및 산림 황폐화 문제가 없고 배양 속도도 육상식물보다 수십 배나 빨라 친환경 바이오연료 생산에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연구단의 장용근 단장은 “미세조류 바이오매스는 1세대와 2세대보다 저렴하다”며 “현재까지 달성한 연구단의 기술 수준은 세계 최고 대비 97%로, 바이오매스 분야에서 가장 앞서는 나라인 미국과 대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세 연구단은 2018년까지 8년 동안 총 1398편의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을 발표하고 1262개의 국내외 특허를 출원해 585개를 등록했다. 기술 이전은 69건, 사업화는 11건 달성했다. 연구단의 한 연구자는 “숫자로 보는 성과도 크지만, 관련 분야 인력을 키워 곳곳에서 활약하게 한 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성과였다”며 “연구단을 거쳐 간 많은 인재들이 해당 분야를 발전시키는 훌륭한 밑천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세대바이오매스연구단에서 미세조류를 이용한 바이오연료 및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사진제공 남윤중
차세대바이오매스연구단에서 미세조류를 이용한 바이오연료 및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사진제공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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