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어느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2019.05.16 13:00
딥마인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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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이세돌 9단은 상대적으로 포석이 약하다고 한다. 이건 정말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이세돌의 라이벌인 중국의 구리 9단이나 커제 9단 정도의 초일류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이지 포석을 원래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구리나 커제와 둘 때면 초반 포석에서 밀리다가 중반에 눈부신 전투로 전세를 만회하고, 여의치 않으면 특유의 판 흔들기로 전세를 뒤집는다. 역으로 말하자면 이런 이세돌 9단이 초반 포석마저 커제만큼 잘한다면 아마 인간계에서는 적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는 모두 동네바둑 6급의 ‘뇌피셜’일 뿐이다.)


수업 중간 쉬는 시간(아마도 2시를 전후한 시각)에 스마트폰으로 이세돌-알파고 1차전 중계를 지켜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바둑은 이미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동네바둑 6급 주제에 초일류기사의 바둑 형세를 판단한다는 게 웃기는 얘기지만 흑을 쥔 이세돌 9단이 버거워 보였다. 반면 알파고의 백돌은 무척 단단해 보였다. 나의 예상은 적어도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의 대마 한둘은 작살을 내고 나머지 돌들도 거세게 몰아붙이는 모습이었다. 내 눈에 들어온 기보는 이세돌 같은 초일류 인간기사 둘이서 두는 바둑 같았다. 전혀 예상 밖의 기보에 나는 거의 넋이 나갔다. 원래 이세돌 9단이 포석은 약하잖아, 뭐 그렇게 속으로 위안을 삼으려고 했지만 내 마음 속 더 깊은 곳에서는 정체모를 공포심이 솟구치고 있었다. ‘이러다 질 수도 있겠구나...’ 

 

10분 정도의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아직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결국 이세돌 9단은 186수만에 돌을 거두었다. (맨 하단 중계영상 참조)이날의 충격은 적어도 열흘 정도 계속되었다.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의 등장에 훨씬 더 많이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1국 기보를 보니 그게 전혀 아니었다. 그렇게 큰소리치던 나도 전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문득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때가 2001년 2월이라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나는 모든 고등교육을 20세기에 끝낸 셈이다. 그런 내가 지금 알파고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2016년의 그 봄날에 나는 아직도 풀지 못한 어려운 숙제를 하나 떠안게 되었다.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세돌 9단. AP/연합뉴스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세돌 9단. AP/연합뉴스

흔히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적 사실 자체가 아니라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 또는 그 방법론이라고들 말한다. 알파고 시대의 도래가 한국형 천재의 관 뚜껑에 못을 박은 것이라면 어떤 과학 법칙이나 원리, 신기한 현상에 대한 설명 등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한국형 천재가 잘하던 일을 이제는 (사실 꽤 오래 전부터) 기계가 훨씬 더 잘한다. 뭔가 궁금한 게 있으면 주변의 똑똑한 사람한테 물어보는 것보다 열심히 검색하는 편이 낫다. 


이런 시대에 과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뭘까? 교양으로 과학을 배운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일까? 대학에서는 왜 교양으로 과학을 가르치려 할까?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우선 교양이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교양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글을 하나 꼽으라면 도정일 교수의 한겨레신문 칼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글에서 도정일은 교양을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탐구와 교육”으로 정의하며, 그 유명한 하버드 대학의 교양교육 보고서를 인용한다. 

 

“교양교육의 목표는 추정된 사실들을 동요시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현상들 밑에 그리고 그 배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폭로하고, 젊은이들의 방향감각을 혼란시켜 그들이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원문 하단 참조)


이는 우리가 평소에 막연하게 알고 있던 ‘교양’의 개념과 사뭇 다르다. 우리에게 교양은 도정일이 위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잡동사니 상식 같은 것”, 또는 어디 가서 아는 척 하기 위한 수단 정도이다. 특히 중고등학교까지 유형별로 정답을 찾는 교육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방향감각을 혼란”시키는 교육이란 형용모순이다. 하버드 보고서에서 인용한 내용의 핵심은 교양교육의 목표가 잡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방법론의 전수라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추정된 사실을 동요시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배후를 폭로하고 방향감각을 혼란시키는 일을 가장 잘 해 온 분야가 바로 과학이다. 이 과정에서 인류가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준 것도 과학적인 방법론이 대표적이다. 과학전공자의 눈으로 보자면 과학교육이야말로 하버드 보고서가 제시한 교양교육의 목표에 가장 적합하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자면 알파고 시대(또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필요한 교양으로서의 과학은 학습과 지식창출의 플랫폼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플랫폼이란 그 위에서 무언가가 작동하기 위한 설비체계, 또는 제반 환경이나 더 넓게는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한국형 천재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다. 남이 정해 놓은 규칙은 잘 따르고 그 속에서 계산은 열심히 잘 하지만 새로운 규칙을 찾거나 만들지는 못한다. 노벨 과학상이 아직 없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알파고 시대에는 지식을 많이 외우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건 기계에 맡겨도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모아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일이다. 


여기서 알파고 시대의 또 다른 특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학문경계가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한 국내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발하라리. 서울시제공
유발하라리. 서울시제공

어느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지금까지는 20대까지 공부한 걸로 평생 먹고 살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이 예순에도 여든에도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뭘 배워야 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경직되어 있는 사람, 마음이 유연하지 않은 사람은 버티기 힘들 것이다. 감정 지능과 마음의 균형 감각이 중요한 이유다

 

20세기에는 대학 4년 동안 배운 걸로 평생 먹고 살 수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새로운 분야가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옛날의 카테고리만으로는 정의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내가 일하는 건국대학교에는 스마트운행체공학과, 줄기세포재생공학과, 사회환경공학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등이 있다. 30년 전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전혀 들어볼 수 없던 이름들이다. 지금 이 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또 새로운 이름의 학과들이 등장할 것이다. 전통적인 학과들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옛날과 다 똑같은 것도 아니다. 내가 연구하는 입자물리학 분야에는 ‘딥 러닝(deep learning)’이라는 제목이 들어가는 논문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통적인 학문구획에 얽매여서는 새로운 문제에 대처할 수가 없다. 필요하다면 전혀 엉뚱한 분야의 전문지식도 갖다 써야 한다. 심지어 없던 지식을 새로 만들어내기도 해야 한다. 


그러니까, 알파고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은 기존의 학문구획을 뛰어넘어 다양한 전문지식을 한데 모아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는 능력이다. 이 과업을 가장 잘 수행했던 사람들이 바로 ‘과학자’들이었다. 이들이 행했던 ‘과학’은 지식창출의 가장 훌륭한 플랫폼이었다. 근대과학을 확립한 뉴턴은 미적분학이라는 ‘새로운 수학’을 만들었다. 실험하는 과학자들은 언제나 세상에 없던 물건들을 만들어낸다.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양자역학은 전례 없이 완전히 새로운 논리 위에 구축된 과학이론이다. 


과학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별로 새롭지 않을 것이다. 여태 그들이 계속 해 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선진국에서는 우리만큼 ‘4차 산업혁명’이라는 호들갑을 떨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본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또는 흔히 하는 말로 선도자(first mover)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의 차이라고나 할까. 

 

2016년 3월 9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과 알파고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이세돌 9단이 186수 만에 백 불계패했다. 딥마인드 유투브 캡쳐
2016년 3월 9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과 알파고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이세돌 9단이 186수 만에 백 불계패했다. 딥마인드 유투브 캡쳐

알파고가 등장하기 전에도 도정일은 이런 점을 간파했는지 자신의 칼럼에서 과학의 방법론을 언급하면서 영국 왕립학회의 모토를 소개하고 있다. 

 

“어느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Nullius in verba).”

 

과학사든 과학의 원리든 나는 항상 첫 수업 때 이 말을 소개한다. 과학과 관련된 지식을 하나 더 얻는 것보다, 남의 말을 쉽게 믿지 않고 항상 스스로 확인하는 자세를 가지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과학의 출발이다. 내가 물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처음 들어갔을 때 고전역학을 가르치던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논문이든 교과서든 자신이 스스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쉽게 믿지 말라. 사회생활에서야 이런 자세를 가지면 “넌 평생 속고만 살았냐?”라는 핀잔을 듣겠지만 과학의 자세를 배우려면 “NIV(Nullius In Verba)”부터 실천해야 한다. 
NIV가 필요한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요즘처럼 복잡하고 험난한 세상에서는 까딱 잘못하면 속고 살기 십상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도 지금처럼 넘쳐나는 정보와 세세한 전문분야의 까다로운 디테일을 다 알 수는 없다. 늘 비판적이고 주체적인 자세를 가지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가짜뉴스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누가 영구기관을 만들었다고 하면 과연 그걸 믿을 사람이 있을까? 21세기 대명천지에 누가 그런 허무맹랑한 소릴 하나 싶겠지만, 무한동력기관을 만들었다는 기사가 버젓이 언론에 실리는 게 21세기의 대한민국이다. 인류의 연료 문제를 해결해 1경5천조 원의 가치가 있다는 5년 전의 그 기사내용이 사실이라면 아마 그 발명의 주인공은 지금쯤 노벨상을 받았을 게다. (물리학상과 평화상을 동시에 줘도 전혀 아깝지 않다.) 웬일인지 여태 아무런 소식이 없다. 아니,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했는데 ‘겨우’ 1경5천조 원밖에 가치가 없을까? 최저임금을 찔끔 올리네 마네 그런 쓸데없는 논쟁 따윈 진작 하지도 않았을 텐데. 이 기사를 보는 누군가는 제도권 과학자들이 자신들만의 아집에 갇혀 재야 발명가의 혁신적인 노력을 무시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혁신과 파괴는 원래 과학자들의 장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재야 발명가와 다른 이유는 기존의 확립된 법칙이나 이론을 거부할 때 그럴만한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동력이니 영구기관이니 하는 말은 그래도 좀 익숙해서 상식이 있는 사람은 쉽게 믿지 않는다. 좀 더 전문적인 용어가 등장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난 2007년 언론에 소개된 이른바 ‘제로존 이론’은 일반인이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다. 당시 하도 논란이 일자 한국물리학회에서 공식적으로 검증해 부정적인 의견을 냈었다. 그럼에도 비교적 최근까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벌총수가 이 이론의 주인공에게 거액을 후원하고 있다는 소문(나같이 가난한 물리학자에게는 그 1/10 정도면 충분하다.)이 나돌기도 했었다. 


아주 최근의 예로 양자통신기술을 들 수 있다. 지난 2017~2018년 중국의 과학자들이 인공위성을 이용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양자통신에 성공했다는 외신뉴스가 있었다. 양자인터넷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이 일련의 실험 중 일부는 양자역학의 얽힘(entanglement)이라는 신비한 현상을 이용했다. 이전까지는 지상 수십 킬로미터에서 성공한 실험을 중국 연구진이 위성을 동원해 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에서도 양자역학을 이용해 정보를 전송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이 이슈였다. 이 뉴스를 국내 언론은 거의 예외 없이 순간적으로 통신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즉, 양자통신을 이용하면 빛보다도 빨리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다수의 언론이 보도했다. 현대물리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보도내용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양자얽힘 덕분에 두 입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한쪽 입자의 양자상태가 다른 쪽 입자의 양자상태에 의해 순식간에 즉각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놀라운 성질을 오독한 탓인 듯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양자역학이 제아무리 날고 기어도 아직까지는 빛보다 빨리 물리적인 신호를 주고받을 수 없다. 누군가는 나쁜 마음을 먹고 국내에 보도된 내용을 악용할지도 모른다. 양자역학의 신비를 이용해 빛보다 빠른 통신이 가능하며 이 기술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차세대 새로운 인터넷을 만들 수 있다고 그럴 듯하게 속여서 국가로부터 거액의 세금을 뜯어가지 않을까? 몇몇 과학자들이 그건 사기라고 하면, 이 사기꾼은 제도권 틀에 박힌 기득권만 추구하는 과학자들이 새로운 국부를 창출할 기회를 날려버린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할 것이다. 지금처럼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NIV를 장착한 플랫폼이 작동하지 않으면 속고 살기 딱 좋은 세상이다. 


교양과학을 가르치면서 무엇보다 나는 내 학생들이 내 수업을 듣고 잘 속지 않는 사회인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 내용은 실제로 첫 시간의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래도 과학이 어려운 건 어쩔 수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다만 생각을 바꾸면 그 어려움을 조금은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자면 먼저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왜 과학은 그리 어려울까?

 

(2016년 3월 9일에 열린 이세돌과 알파고의 1국 중계영상. 영상이 안보이는 분은 동아사이언스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10773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도정일, 대학교육에서 ‘교양’이란 무엇인가, 한겨레신문, 2014.2.20.,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25105.html

-어수웅, AI에 수학·과학 맡기고, 우린 감정지능 과목 만들자, 조선일보, 2017.3.2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21/2017032100223.html

* 원문은 다음과 같다. “On the contrary, the aim of a liberal education is to unsettle presumptions, to defamiliarize the familiar, to reveal what is going on beneath and behind the appearances, to disorient young people and to help them to find ways to re-orient themselves”, Harvard University, Reports of the Task Force on General Education,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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