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1人당 실험동물수 선진국 10배…"학대는 한국 연구환경의 예견된 문제”

2019.05.15 00:00
박재학 한국동물실험윤리위원회 협동조합 이사장은 최근 복제견 실험 과정에서의 학대 의혹 논란에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윤신영 기자
박재학 한국동물실험윤리위원회 협동조합 이사장은 최근 복제견 실험 과정에서의 학대 의혹 논란에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윤신영 기자

“해외에서는 실험동물 3만~5만 명마다 한 명 꼴로 전임 수의사가 상주하며 실험 과정이 과학적, 윤리적 원칙에 맞게 잘 지켜지고 있는지 관리합니다. 반면 연 33만 마리의 동물을 실험하는 서울대에엔 실험동물 윤리를 담당하는 전임 수의사는 아예 없고, 동물에게 의약품을 처방하는 등 수의사법에 의한 관리 수의사만 1~2명 상주합니다. 한 사람당 선진국의 최대 10배의 실험동물을 관리하는 셈입니다. 실험 윤리가 제대로 지켜지는지 현장을 감시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국내 실험동물 윤리 문제를 선도해 온 박재학 한국동물실험윤리위원회협동조합 이사장(서울대 수의대 교수)은 이달 13일 서울대에서 "동물실험 현장을 관리할 수의사조차 없는 현실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며 “동물 복지 제도는 갖춰져 있지만 관리나 감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장은 2005년 국내 기관 최초로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서울대에 설치하고 2007년 관련법 개정까지 이끌었다. 그는 이번 서울대 실험동물 학대 논란 직전까지도 서울대 동물실험윤리위원장을 맡아오다 이번 사태 이후 물러난 상태다. 


이병천 서울대 수의대 교수 연구실에서 동물실험에 동원된 검색견이 폐사한 문제로 시작된 이번 논란으로 연구계에서는 동물실험 윤리 및 복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동물보호법’으로 실험 동원이 금지된 검역탐지견 예비견으로 국가를 위해 봉사한 메이를 실험에 이용한 것이 타당한지, 만약 예외 조항으로 인정 받아 타당했다 해도 실제로 행해진 실험 과정이 윤리적으로 정당했는지가 핵심 의문점이다. 언론에 공개된 메이의 생전 모습은 많이 허약해져 있어, 오래 제대로 먹이지 못했거나 치료를 받지 못았을 가능성이 시민단체 등에 의해 제기됐다. 


9일 서울대 동물실험윤리위원회가 주축이 된 ‘복제견 동물실험 조사특별위원회’는 “연구자 및 관계자 인터뷰, 실험계획서 등을 바탕으로 판단했을 때, 사육관리사가 메이에게 사료와 물을 주지 않고 적극적 치료를 하지 않는 등 관리에 소극적이었다고 추정할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박 이사장이 보기에, 이 같은 문제는 현장에서 실제로 실험동물을 다루는 과정을 감시하거나 관리할 주체가 없어서다. 그는 “2007년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2008년부터 대학과 병원, 기업 등 동물실험을 하는 기관에는 의무적으로 동물실험윤리위원회가 설치되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며 “미국 ‘실험동물의 관리와 사용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동물실험의 하고자 하는 연구자로부터 실험계획서를 받아 과학적, 윤리적 평가를 하는 동물실험윤리위원회와, 현장의 관리 실태를 감시하는 전임 수의사가 핵심 역할을 하는데, 현재는 무급 봉사직인 위원만 있고 수의사가 없어 현장 관리나 대응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실험동물의 관리와 사용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기관은 동물실험윤리위원회와 함께 전임 수의사가 같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위원회만이 기관 별로 1개씩 설치돼 있는 상태다. 사진제공 박재학
미국 실험동물의 관리와 사용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기관은 동물실험윤리위원회와 함께 전임 수의사가 같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위원회만이 기관 별로 1개씩 설치돼 있는 상태다. 사진제공 박재학

그는 “지금은 한국도 실험동물에 대한 인식이 10여 년 전보다 많이 높아져서 실험 과정에서 학대 등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거나 실험계획서와 다른 실험 절차가 이뤄지면 바로 다른 연구자의 신고가 들어온다”며 “하지만 이 경우에도 동물의 고통을 구제해 주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수의사가 없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와 관련한 그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다. 전임 수의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법제화해 현장의 동물실험을 제대로 관리하고 구제하자는 게 첫째다. 두 번째는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기관별 1개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수준으로는 이제 한국의 동물실험을 감당하기 힘든 만큼 기관 내 복수 설치를 허용하자는 주장이다. 현재 국내의 동물실험윤리위원회는 기관 별로 4~15명의 위원들이 쏟아지는 실험계획서를 검토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박 위원장은 “서울대만 해도 한 해 평균 1400건의 실험계획서를 처리하는데, 재심의를 4~5번씩 하는 계획서도 있어 총 8000건의 계획서를 처리한다”며 “2005년 처음 윤리위를 만들었을 때에 비해 2배 이상 늘었지만 윤리위 규모나 지원은 제자리걸음이다. 종합대학 등 대형 기관에서는 복수의 위원회를 두는 방안을 고려할 때”라고 말했다. 최근 세계는 동물 실험을 줄이도록 대안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보급하는 일에도 위원회가 앞장서는데, 이런 역할을 위해서도 위원회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재학 한국동물실험윤리위원회 협동조합 이사장은 최근 복제견 실험 과정에서의 학대 의혹 논란에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윤신영 기자
박재학 한국동물실험윤리위원회 협동조합 이사장은 최근 복제견 실험 과정에서의 학대 의혹 논란에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윤신영 기자

마지막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주장으로, 이번 사태와도 직접 관련이 있다. 국가 차원의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두자는 주장이다. 그는 “한국은 정부 과제가 많은 나라”라며 “(이번 이병천 교수 건 등) 정부 과제로 기획된 대형 연구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복잡한 심의 과정을 거쳐 결정된 정부 과제의 계획서를 기관의 동물실험윤리위원회가 거부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11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연구자가 30억 연구비를 따왔는데 (기관의) 동물실험윤리위원회가 비윤리적이니 못하게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애초에 국가에서 선정할 때 윤리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 이사장은 “한국은 법제화가 선진국에 비해 늦었지만 빠르게 자리잡아 2017년 기준으로 384개 기관에 동물실험윤리위가 등록돼 있다”며 “이제는 내실을 기해 실험동물 복지를 한 단계 다시 선진화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위원 및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겪은 고충도 털어놨다. 윤리위는 수의사 외에 윤리학자, 법률가, 과학자 등이 폭넓게 참여하고 있고 위원의 3분의 1 이상은 동물실험시행기관과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참여한다. 별도 수당도 없이 오직 동물 보호와 윤리적 연구에 도움을 주려는 사명감으로 참여한다. 하지만 과학자들로부터는 ‘실험을 지연시키고 대단한 권한을 부리는 사람’으로 매도당하고 시민단체로부터는 ‘실험계획서를 쉽게 통과시킨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다. 독립성도 낮아 기관장(대학 총장 등)의 말 한 마디에 위원이 교체되는 일이 다른 대학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동물실험에 이 정도의 노력과 비용은 들여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는 “, 동물실험을 하며 사람들이 이득을 많이 보는데, 동물이 받는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며 “과학자로서 이를 알면서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동물실험을 줄이려는 여러 노력과 별도로 실험 윤리 수준을 높이고 동물 복지를 확립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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